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엄마가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셨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아이들 산책과 돌봄을 혼자서 전담하고 있다. 날이 추운데 고생할 나를 내내 걱정하던 엄마에게 그냥 하면 되니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는데, 우당탕탕 허둥지둥대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요며칠 내게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당연히 아이들이었다. 아침 7시에 차를 끌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두 마리씩 두 번 산책을 하고, 돌아와서 밥을 먹이고, 집을 정돈해주고, 간식까지 주고 나온다. 그 후 집에 다시 복귀해서 재택근무를 하고 일을 하다가 4시가 되기 전에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넘어갔다.
오후 산책을 해주고 아침과 똑같이 반복한 뒤, 문단속을 하고 집에 와서 못다 한 일을 마저 했다. 일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줄어들었기에 밥도 일하면서 대충 빠르게 먹었다. 재택과 유연 근무가 가능한 회사에 다니는 게 다행이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늘 먹는 속도가 더딘 사랑이에게 “얼른 먹어야 언니가 일하러 갈 수 있어”라고 말하며 사료를 손에 올려 일일이 먹이고 있는데, 문득 육아를 하고 있는 동료의 말이 떠올랐다. 회사에 출근하러 오기까지 그 과정이 무척 길다고 했었다. 아이를 키우는 육아에 비할 건 아니지만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려면 나를 감내해야 한다는 걸, 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걸 깊이 깨달았다.
미팅이 몇 건 예정되어 있기도 했고 눈이 온다고도 해서 사실 엄청 긴장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루 일과를 시작한 월요일에는 은근히 신경을 써서인지 체하기도 했다. 그런데 바쁜 마음과는 달리 막상 아이들과 산책하고 나면 그 과정이 무척 즐거워서 종종거리던 마음들이 하나씩 녹아내렸다. 특히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를 볼 때면 나도 덩달아 웃고 있었다.
엊그제는 미팅이 예상보다 늦어져서 회사에서 5시 반에 나와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렸는데도 아이들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저녁 6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이미 사방이 어두워졌기에 산책은 무리라고 생각해 가까운 곳에 데려가 배변만 뉘었다. 아이들도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지 바로바로 잘해주었다. 산책을 더 하자고 보채지도 않았다. 아이들 덕분에 한결 편안하게 다시 일상도 지키게 되었다. 줄넘기도 점심과 저녁에 틈틈이 했다.
회사에서 늦게 온 날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라고 말해줬다. 내일 아침에는 더 길게 산책해주겠다고 약속했고 지켰다. 아침 산책을 끝내고, 걱정하고 있을 엄마에게 아이들 사진을 보내드렸다. 잠시 후 엄마에게서 답변이 왔다. “딸, 미안하고 고마워 사랑해”라고.
그 메시지를 읽고 한참을 먹먹해 있었다. 엄마와 나는 다른 나라에 있어도 이렇게 연결되어 있구나 싶어서.
어제는 점심부터 눈이 와서 아이들과 함께 눈을 맞았다. 아이들은 비처럼 쏟아지는 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냥 좋아했다. 아이들의 젖은 옷을 하나하나 닦아주다가 ‘아이들 덕분에 오늘도 잘 살고 있구나, 살아 있구나’ 하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