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심과 열심 Feb 13. 2024

세상은 개로 연결되어 있다

제목에 ‘도그’가 들어가는 두 편의 영화를 보고

작년 연말부터 틈나는 대로, 기회가 생기는 대로 영화관에 자주 간다. 올해에는 우연히 ‘개’가 등장하는 영화들이 많이 개봉했고, 아예 제목에 ‘도그’라는 단어가 박힌 영화 두 편을 보았다. 〈도그데이즈〉와 〈도그맨〉이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처럼 이 영화들에서 개는 이야기의 핵심 소재이자 주인공으로 나온다. 많은 개가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두 영화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도그데이즈〉는 설 연휴에 개봉한 것에 걸맞게 따뜻하게 유쾌하게 볼 수 있는 가족 영화였고, 〈도그맨〉은 〈레옹〉을 만든 뤽 베송 감독이 만든 작품으로 감정의 농도가 짙은 예술 영화처럼 느껴졌다.  

영화가 건네는 감정의 무게가 어떤지에 상관없이 두 편의 영화를 보며 모두 울었다. 어느덧 나는 개가 등장하는 콘텐츠를 볼 때면 그 이야기가 사실이든 허구이든지에 상관없이 눈물샘이 툭 터지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한 경험들로 공감하는 영역이 커졌기 때문일까.


개로 연결된 배우들

〈도그데이즈〉는 퇴사한 동료였던 친구가 시사회에 당첨되었다며 보여줬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배우들의 첫 시사회 무대 인사까지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궁금했던 건 대배우들이 그것도 엄청 많이 출연한다는 사실이었다.

윤여정 배우님을 비롯해서 유해진, 김윤진, 김서형, 다니엘 헤니 등의 대배우들이 등장한다. 윤여정 배우님은 오래 인연을 맺어온 김덕민 조감독님이 감독으로 데뷔하는 영화라 출연하셨다고 하는데, 다른 배우들이 출연한 이유는 ‘개가 등장하는 이야기여서이지 않을까’라고 추측해보았다. 이 배우들 모두 오랫동안 개를 키우고 있음을 미디어를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사를 찾아보니 이 영화는 김윤진 배우가 여행할 때 비행기에서 봤던 원작의 판권을 직접 구입해 공동제작자로 참여했다고 한다. 김윤진 배우는 펫로스 증후군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중 반려견 꼬미를 만나 극복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서형 배우는 영화 속에서 수의사로 등장하는데, 개를 대하고 다루는 동작들이 무척 자연스러웠고 개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뚝뚝 묻어났다. 개를 싫어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유해진 배우가 ‘차장님’이라는 개를 만나 변화하는 과정도, 다니엘 헤니와 물 흐르듯 편안하게 연기하는 ‘스팅’이라 불리는 리트리버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보는 것도 좋았다.      


모든 걸 다 꿰뚫는 존재

〈도그맨〉은 동료가 내가 보면 좋을 거라고 추천해준 영화이기도 했고 영화를 소개하는 한 줄 문구로 인해 꼭 보고 싶었다.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라는 글귀였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이고 또 어떻게 이야기로 전개되는지가 무척 궁금했다.

영화에는 사람에게 처절히 버림받은 한 남자가 개에게서 ‘구원’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구원을 받았다고 이야기하기에는 긍정적인 결말은 아니지만, 외로운 그의 삶엔 늘 개가 함께해 있었기에 구원과도 같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거의 1인극처럼 홀로(물론 개들과 함께) 영화를 이끌어가는 케일럽 랜드리 존스 배우의 명연기가 놀라웠다. ‘버려진 개들’과 ‘버려진 사람’이 서로를 굳건히 믿으며 함께 공존해나가는 이야기가 내게 커다란 감정의 파동을 몰고 왔다. 개봉관이 많지 않아 밤늦은 시각 집에서 먼 곳에서 영화를 봤는데, 눈물을 많이 쏟았고 영화 속에서 빠져나오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렸다.

영화에 등장하는 120마리의 개들은 주인공의 모든 걸 이해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주는 ‘만능 해결사’ 역할을 한다. 당연히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나는 그 상황이 이해되었다. 개들을 키우며 이들이 얼마나 내 마음을 꿰뚫고 있는지, 내 언어를 이해하는지,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교감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개가 선물해준 소속감

소라를 만난 지 어느덧 6년이 넘었다. 그리고 소라의 아이들까지 키우면서 이제 내게 ‘개’라는 존재는 없는 게 전혀 상상조차 되지 않을 만큼 무한한 영역으로 일상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아이들로 인해 나라는 사람의 소속감과 안식처가 달라졌음을 느낄 때도 많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당근마켓 거래를 하려고 동네에서 처음 만나는 분이 있었는데 산책 겸 개 두 마리를 함께 데리고 나오셨다. 개가 나에게 다가오려고 하자 “죄송해요”라고 바로 말씀하시는 보호자분께 “괜찮아요. 저도 개 키우는 사람이라서요”라고 자연스럽게 말했다.

얼마 전 작년에 함께 책을 만들었던 작가님의 북토크 장소에서도 임시 보호하는 개가 있었는데, 개가 있음을 먼저 양해 구하시는 책방 대표님께, 작가님은 나를 가리키시며 “우리 모두 애견인”이라고 이야기해주셨다.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벅찼다.


나도 나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순간이 잦다. 책 만드는 사람이라는 직업적 정의 말고도 애견인, 반려인, 보호자라는 일상적 정의가 주는 소속감과 안정감이 크다. 지금은 거의 활동하고 있진 않지만 회사에서 ‘개모임’에 참여한 적도 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면 ‘개 이야기’는 가장 편한 안식처 같은 주제다.

명절을 앞두고 연휴 때 가족들과 함께 먹을 커피 원두를 사러 회사 근처를 걷는데, 그동안 꼭 들어가보고 싶었던 강아지 용품을 파는 가게 문이 열려 있어서 이끌리듯 들어갔다. 작은 가게였고 사장님이 혼자 계셨기에 내향적인 평소의 나였다면 용기가 나지 않았을 거 같다. 그런데 네 마리의 보호자인 나는 이제는 그런 조심스러움보다 호기심이 먼저 든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어떤 물건이 있을까 하고 눈을 반짝이게 된다. 강아지 옷을 보는 내게 사장님께서는 하나하나 친절히 설명해주셨다. 그 옆엔 ‘생강이’라는 개가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물건을 사지는 않았지만, 가게 문을 나오는데 가게의 그 따스한 분위기가 내게 오롯이 전해진 거 같았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기분 좋은 온기가 채워졌다.


씩씩하개, 즐겁개, 행복하개

연휴 내내 아이들과 산책할 수 있어서 기뻤다. 연휴 마지막 날인 어제 아이들과 오후 산책을 하는데 곧 올해 첫 책을 마감해야 하고, 여러 긴장되는 일정을 앞두고 있지만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날씨도 제법 포근해져서 옷차림도 가벼워졌고 그래서인지 발걸음도 가뿐했다. 그렇게 또 힘을 내서 새로운 한 주를 잘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았다. 아이들이 건네준 다정하고 투명한 사랑으로 ‘씩씩하개’, ‘즐겁개’, ‘행복하개’ 살자고 마음에 주문을 걸었다.

개들이 긍정적인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게 된 미디어의 변화가 반갑다. 그보다 더 기쁜 건 ‘개’라는 대상이 세대와 성별을 불문하고 누구나 무해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도그맨〉을 소개하는 한 줄 문구를 이렇게 살짝 바꾸고 싶다.      


‘사랑이 필요한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라고.     



GOD을 뒤집으면 DOG가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당탕탕 육아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