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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과 열심 Feb 20. 2024

개를 키우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들이 내게 가르쳐준 여러 겹의 세상

1000만 반려인 시대라고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두껍고 짧은 쇠줄에 묶여 오도 가도 못하며, 반짝반짝 빛나던 두 눈이 공허한 눈빛으로 바뀌어가는 개들을 자주 만난다. 버림을 받았는지 탈출했는지 모르는 떠돌이 개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광경도 빈번하게 마주한다.

      

나 또한 반려동물을 키운다. 나의 네 마리의 개들은 한층 입체적인 세상을 내게 보여주었다. 한 겹 두 겹 희미하게 보이던 세상이 이들을 만나 세 겹 네 겹으로 확장되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2차원이던 세상이 3차원으로 넓어진 것 같기도 하다. 개를 키우면 어떤 것들이 보이는지, 이들에게서 사랑받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① 하루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개를 키우기 전에는 반복되는 하루가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온 세상을 킁킁대며 무사히 배변할 때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 의미 없이 리셋되는 하루하루가 아니라 연결되고 쌓아지는 하루, 그럼으로 인해 점차 나아지는 소중한 하루로 기억된다.

     

② 일상을 움직이게 해준다

기운이 쏙 빠진 날에도 산책을 해야 하기에 아이들과 터덜터덜 문밖을 나선다. 얼마 전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가 정신 차려보니 아이들이 오히려 나를 끌고 가고 있었다. 마치 방향을 잃은 내 삶을 아이들이 이끌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③ 계절을 느끼게 해준다

계속 앉아서 일하는 나는 아이들 덕분에 광합성을 한다. 포근한 햇살을 만끽하고, 자연의 변화를 세밀하게 눈에 담으며 날씨와 계절을 감각한다. 이제는 비가 오는 것도 눈을 맞는 것도 괜찮다. 날이 궂으면 그런대로 아이들과 함께한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테니까.      


④ 다른 생명체의 소리를 듣게 해준다

어제 저녁 엄마와 함께 마트에 가는 길에 새끼 고양이가 죽어 있는 것 같은 형체를 보았다. 차를 댈 곳이 없어 마트에 주차한 후 다시 그 길을 복기해서 걸어갔다. 흰무늬가 있는 검은 털의 고양이가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었는데, 자세히 보니 검은 봉지 안에 들어 있는 떡볶이가 터져 밖으로 나온 거였다. 흰 털로 보이던 건 하얀색 떡이었고, 흥건한 피로 느껴지던 건 떡볶이 국물이었다. 엄마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짙게 내쉬었다.

임신한 길고양이와 떠돌이 개, 무리 지어 추위를 이겨내는 새…. 아이들을 키우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생명체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⑤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끊임없이 알려준다

얼마 전 엄마가 또 한 번 여행을 가셨고, 마감을 하루 앞둔 날 수정 파일을 기다리다 보니 생각보다 퇴근이 늦어졌다. 헐레벌떡 회사 주차장에 내려가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생각을 하니 너무 미안해서 꽉 막힌 고속도로 안에서 내내 울었다. 도착하자마자 목에 사원증을 건 채로 아이들을 향해 뛰어갔다. 그렇게 한 명 한 명과 인사하는데 아이들은 내게 다가와 내 얼굴을 핥아줬다. “괜찮아” 하고 다정한 위로를 건네면서.      


아이들을 반려하면서 계속 깨닫는 건 개들의 이해심은 참 넓고 깊다는 거다. 이 멋진 존재들이 나를 사랑해준다는 사실이 벅찰 때가 많다. 그 사랑이 무용하지 않도록 더 나은 사람이 되자고 다짐한다.


⑥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크게 확실하게 잘한 일이 있다면, 그건 소라를 1미터의 삶에서 해방시켜준 거다. 더 이상 쇠줄에 묶여 있는 개가 아니라 매일 산책하는 개로, 사랑받는 개로 변화시켰다. 이렇게 난 한 생명의 삶을 구원해주었고, 그 생명체는 이제 나라는 존재를 이끌어주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이롭게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알게 된다면 좋겠다. 반려동물과 보호자는 서로를 살리며, 아끼며, 진한 우정을 함께 쌓아나간다.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고 싶었는데, 정작 나를 보호해주고 있던 건 너희들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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