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심과 열심 Jan 07. 2024

서른다섯, 《데미안》을 읽다

하나의 세계를 깨뜨린다는 것

《데미안》은 작년에 가장 마지막에 산 책이자, 올해 처음으로 완독한 책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는 〈구본창의 항해〉 전시를 보고 나서다. “한국 현대사진의 서막을 열었다”라고 평가받는 구본창 작가님의 작품이 방대하면서도 연대기별로 일목요연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전시를 보는 내내 마음이 벅찼다. 자신에게 주어진 알을 깨려고 부단히 노력해온 한 사람의 인생 여정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시의 시작점엔 아래와 같은 《데미안》 속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마치 구본창 작가님이 스스로 건네는 독백처럼 느껴져서, 전시를 보는 내내 이 문장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래서 전시를 본 후 서점에 들러 《데미안》을 샀다.      


포근한 햇살 아래, 공원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서른다섯이 되고 편해진 건 다른 사람의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된 것.


데미안을 읽어본 적 있나요?

얼마 전 회의 시간에도 《데미안》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고전 중의 고전이기에 당연히 이 책을 읽은 줄 알았고, 아는 척 답도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책을 펼치니 내용이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다. 나는 이 책을 한 번도 읽지 않은 거였다!     


워낙 유명한 책이기에 줄거리를 스포하자면 이렇다. 책을 진짜로 읽었는지 한번 점검해보자.     


유복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싱클레어는 저지르지도 않은 도둑질을 했다고 말함으로써 악독한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하게도 환하고 서늘한, 모든 걸 꿰뚫고 있는 듯한 데미안이 다가와 그 친구에게서 벗어나도록 도와준다. 싱클레어는 그 후에도 여러 방황을 하지만 자신에게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에 깊이 몰입하며 다시 데미안을 만나게 되고 차츰 단단해진다. 전쟁이 발발한 후 싱클레어는 입대하고, 어느 날 마치 환상처럼 데미안에게서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관한 마지막 조언을 듣는다.


모든 사람은 자연이 던진 돌이다

《데미안》에는 워낙 회자되는 유명한 문장이 많지만, 아래 문장이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싶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122쪽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건넨 쪽지에 적혀 있는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도 좋았지만 아래 두 문장에서 공통으로 나오는 ‘자연이 던진 돌’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모든 사람은 인간이 되기를 기원하며 자연이 던진 돌이다. 그리고 사람은 모두 유래가 같다. 어머니가 같다. 우리 모두는 같은 협곡에서 나온다. 똑같이 심연으로부터 비롯된 시도이며 투척이지만 각자가 자기 나름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풀이를 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기 자신뿐이다. -11쪽
나는 자연이 던진 돌이었다. 불확실함 속으로, 어쩌면 새로운 것으로, 어쩌면 무(無)로 던져졌다. 그리고 측량할 길 없이 깊은 곳으로부터의 이 던져짐이 남김없이 이루어지게 하고, 그 뜻을 마음속에서 느끼고 그것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만이 나의 직분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169~170쪽


돌은 갈아지고 깨질지언정 소멸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든 도달하게 된다. ‘자연이 던진 돌’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불안하고 두려워도 구르고 구르면 결국은 원하는 곳에 닿게 된다고.  


하나의 세계를 깨뜨린다는 건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마지막으로 들려준 이야기는 이렇다.      


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그렇게 거칠게 말을 타거나 기차를 타고 달려오지 못해. 그럴 때 넌 너 자신 안으로 귀 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걸. 알아듣겠니? -218쪽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가 끝내 전하고 싶었던 말도 '마음의 목소리'를 들으며 살자는 게 아니었을까? 적어도 그렇게 자신에게 귀 기울이며 계속 나아가보자고.


나는 이 책을 전영애 교수님의 번역본으로 읽었다. 전영애 교수님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최정상급 괴테 연구자”이시다. 책의 맨 뒤에 담긴 전영애 교수님의 작품 해설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전영애 교수님께서 이 책을 처음 번역하신 1997년에 쓰셨던 글 아래에, 23년이 흐른 뒤 2020년에 새로 쓰신 글이 이렇게 덧붙여 있었다.


“교정본을 내면서 참으로 오래전에 한 번역을 별로 고치지 못했고 오래전에 쓴 이 후기 역시 거의 고치지 못했다. 원문 자체는 물론 번역에도 한 시기의 치열함이 담겨 있어 훗날의 교정이란 불가능했던 것 같다. 예전에 교정을 보아 주었던 어린이들, 중고생들, 대학생들만 그 사이 든든한 사회인으로 우뚝 성장했다. 오래 이 책을 읽어 온 이들도 그랬으리라 생각하고 앞으로 읽을 이들도 그러기를 바란다. 다시 읽거나 새롭게 읽는 어른들은 여린 젊은 사람들의, 또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 주시리라.”
-230~231쪽


“번역에도 한 시기의 치열함이 담겨 있어 훗날의 교정이 불가능했다”라는 말씀이 존경스러우면서도 뭉클했다. 하나의 세계를 깨뜨린다는 건 결국 이런 게 아닐까. 이후에 다시 돌아봐도 후회가 일지 않도록 온 마음을 다해, 그 순간을 대하는 것 말이다.


올해 나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내가 만약 혼란의 시기를 보내던 20대 때 이 책을 읽었다면, 모든 문장을 ‘표지’로 삼아 인생의 어떤 큰 변화의 계기를 만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절박하기에 지금보다는 더 뾰족하게 읽지 않았을까 싶다. 서른다섯이 된 나는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데미안》을 읽었다. 다시 격동의 사건을 만난 후 이 책을 읽으면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서른에서 서른다섯이 된 지금까지 정말 빠르게 시간이 흘러왔다고 느낀다. 마흔이라는 시간도 동일한 속도로 곧 찾아오겠지 싶다. 새해가 되어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는 ‘정면 돌파’다. 올해는 일에서든 일상에서든 머뭇거리는 시간은 되도록 줄이고 마음에서 찾은 답이라면, 그 결과가 어떻든 ‘직진’, ‘정면 돌파!’ 하고 싶다. 


구본창 작가님의 전시를 거의 한 달 전에 봤는데, 수많은 작품 중에서 아래 작품이 마음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았다.      


ⓒ 구본창

‘자화상’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1972년 친구에게 부탁해 남해 바닷가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는 자신의 뒷모습을 촬영하셨다고 한다. 언젠가 꼭 저 바다 너머 세상으로 향할 것이라는 다짐을 품고서. 이렇게 하나의 세계를 깨뜨린 사람이 이미 현실에 존재한다.     


자네도 비밀 의식을 가지고 있군. 자네는 틀림없이 나한테 이야기하지 않은 꿈을 꿀 거야. 알 생각은 없네. 그러나 말해 두겠는데, 그것을, 그 꿈들을 그대로 살게, 그것을 유희하게, 그것에 제단을 세워 주게! 그것은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길이야. 우리가, 자네와 나 그리고 몇몇 다른 사람들이 세계를 한번 새롭게 개혁할지 그러지 못할지야 두고 봐야지. 그러나 저 안쪽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는 그것을 날마다 새롭게 해야 하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야. (…) 어쩌면 그 꿈들은 자네가 무서워하는 종류겠지. 무서워하지 말게! 그것들은 자네가 지닌 최상의 것이야. (…) 아무것도 무서워해서는 안 되고 영혼이 우리 마음속에서 소망하는 그 무엇도 금지되었다고 해서는 안 되지. -148쪽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가 두려우신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