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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과 열심 Apr 24. 2024

하루를 대하는 태도

오늘을 사는 일은 내일을 위한 기도다

운동할 때, 운전할 때, 아이들과 산책할 때면 〈정희진의 공부〉라는 팟캐스트 듣고 있다. 정희진 선생님의 전공 분야인 여성학뿐만 아니라 책, 영화, 정치 이야기까지 생각할 지점을 툭툭 건드려주기에 요즘 아껴 듣는 콘텐츠다.

얼마 전 출근길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 영화를 소개하는 편을 듣고 있었는데,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는 한 문장을 만났다. 씨네21 김혜리 기자님이 이 영화를 보고 쓴 한 줄 평이었다.      


“오늘을 사는 일이 내일을 위한 기도임을 아는 영화다.”    

 

출근길 내내 이 말이 묘하게 마음에 남아서 회사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휴대폰에 빠르게 적어두었다. 회사에 와서 커피를 내리면서도 이 생각에 머물러 있었는데, 내가 절대 친해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한 분이 옆에 오셨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분께 용기를 내어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처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분도 내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주셨다. 오늘을 사는 일이 내일을 위한 기도이니까. 조금이라도 복된 하루를, 미래에 좋은 문을 여는 하루를 만들어 나가자고 다짐했다.


삭제하고 싶은 하루

얼마 전 감당하기 힘든 하루가 있었다. 내가 맡은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늘 안에는 반드시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새소년의 〈난춘亂春〉 음악을 들으며 출근했는데, 이 노래의 중반과 끝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그날 아침 내 목표는 오늘을 얼른 끝내버리고 내일로 건너가는 거였다. 이렇게 힘든 하루의 끝에는 제법 이른 시간일지라도 일찍 자려고 한다. 빠르게 다음 날로 넘어가 새로운 하루로 리셋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지워간다.      


‘시간 여행자’처럼 사는 하루

영화 〈어바웃 타임〉을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이런 장면이 있었나 싶게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다. 주인공 집안의 남자들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저마다 이 특별한 능력을 발전시켜간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 아들에게 자신이 평생에 걸쳐 찾은 행복 공식을 알려준다. ‘같은 하루를 두 번 살아보는 거’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하루를 산 후, 거의 똑같은 하루를 다시 살아보면, 긴장과 걱정 때문에 처음엔 볼 수 없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두 번째부터는 제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아버지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영화의 끝 무렵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제 난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다. 단 하루조차도. 그저 내가 이날을 위해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나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완전하고 즐겁게 매일 지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우린 우리 인생의 하루하루를 항상 함께 시간 여행을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뿐이다.”    


다만 매 순간이 영화 같을 뿐

영화가 전해준 메시지 같은 하루를 어제 보냈다. 오전에 재택근무를 하다가 오후에 회사로 넘어가야지 했는데, 긴장하고 있던 여러 일들이 끝난 여파였는지 도저히 오후에 일을 할 수 없을 거 같았다. 오후 반차를 신청하고 점심시간에 잠깐 눈을 붙였다. 그렇게 일어나니 최근에 내 마음 상태를 가장 걱정해주는 한 분의 문자가 와 있었고, 바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는 차로 달려서 전화 통화를 끝낸 지 1시간도 채 안 되었을 때 직접 뵙게 되었다.

그렇게 예정에 없던 즐거운 시간을 잔뜩 보내고 집에 오는 길 출구를 착각했다. 전혀 다른 방향의 고속도로로 진입해 있었고 톨게이트 비용을 내고 돌고 돌아 집에 오는데, 어둡고 비는 내리고 낯선 길 한복판에 있는데 차 안에서는 달콤한 노래가 흐르는 이 모든 게 영화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르고, 그날 우연히 누구를 만나게 될지, 어떤 모험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 어떤 상황에 있든 마음이 안정되고 시야도 넓어진다.      


기적을 바라는 삶

10년 만에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 정말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오늘을 사는 일이 분명 내일을 위한 기도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오늘을 조금은 더 가뿐하게 기쁘게 살아낼 수 있다는 것. 그러다 보면 진짜로 기적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기적’과 관련된 한 문장을 찾았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과는 조금 다른 결의 기적이지만, 막연한 기적이 정말로 누군가에겐 현실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오래 기억하고 싶다.      


“나는 소설을 쓴다는 행위 자체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소설을 쓰고 거의 이것만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건 나에게는 참으로 감사한 일이고,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실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인생의 어느 시점에 파격적인 행운이 없었다면 이런 건 도저히 달성하지 못했겠지요. 솔직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행운이라기보다 거의 기적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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