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을 구해내고 싶어서
편집자가 된 후로 물질적인 변화가 생겼다면… 책이 많아졌다. 아니 가득해졌다!
내가 편집한 책, 동료들이 만든 책, 기획 제안을 위한 책, 편집 참고용 책, 작가님들께 선물 받은 책, 개인적으로 산 책이… 자꾸만 쌓인다. 내 방을 집어삼킬 만큼.
내가 제일 못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정리’다. 정리를 잘해보려고 정리 주제의 책을 사서 읽다가 도중에 다른 책으로 갈아타고, 결국 읽지 못한 채 책만 남고, 정리는 하나도 안 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집 곳곳에 책이 쌓여 있다고 하는데, 지금 내 방은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책 무더기에 압도당하고 있다.
그런데 쉽게 버릴 수도 없다. 대다수가 제대로 안 읽은 책이기 때문이다. 책은 ‘내 욕망의 피사체’이기에 해결되지 못한 욕망들은 고스란히 책으로 쌓인다. 가끔 내가 안고 있는 책들의 제목을 훑어볼 때면 내게 해소되지 못한 욕구가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깜짝놀란다.
이 브런치 공간을 빌미로 '책 파먹기' 프로젝트를 단행하려고 한다. 냉장고를 파먹듯 가지고 있는 책들을 읽어, 그 책들에서 배우고 느낀 점을 기록하고, 비워내는 거다. 이렇게 다룬 책들은 기증하든 팔든 처분하려고 한다.
편집자라는 일을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지만, 이 직업이 꽤 마음에 든다. 다른 회사에서 나온 책들을 기웃거리는 것도, 회의에서 온통 책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다. 관심사가 비슷한 멋진 동료들과 진지하게 책 만드는 고민과 일상을 나누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책을 만들며 성장하는 내가 좋다.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고 알리는 과정에서 오롯이 그 주제에 빠져 많은 걸 경험하고 축적하게 된다. 또 사회에 키워드를 제시하기도 하고, 작가님들을 발굴하기도 하며, 작가님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좋다. 매년 그해를 돌아볼 수 있는 결과물이 실물로 꼬박꼬박 쌓이는 것도, 서점에서 내가 만든 책들을 만나는 것도, 그 책이 누군가에게 닿은 후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좋다.
이 공간엔 일 때문에 읽은 책도, 강연을 들었던 책도, 개인적인 변화를 이끌어준 책도, 동료들이 만든 책도, 어쩌면 내가 만든 책 이야기도 담길 예정이다. 기회가 된다면 책 만드는 직업에서 느낀 소소한 깨달음에 관해서도 쓸 수 있겠다.
이제 열심히 읽고, 쓸 일만 남았다. 올해 연말에 되돌아봤을 때 지금 이 공간이 결국 내 방을 구해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 가지 바람이 더 있다면, ‘나라는 사람의 서가’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기록 보관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