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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하는사람 May 26. 2024

내 작은 허리디스크와 나

또 다치고 말았습니다.

엊그제 24일, 허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무리한다는 의식은 없었는데 무리가 되었나 봅니다. 핸드스탠딩 연습을 하느라 거꾸로 도약을 몇 차례 했는데 영 좋지 않은 느낌이 허리에서 났고, 병원을 갈 때까지는 걸어갈 만한 상태였으나 치료를 받고 집에서 쉬면서 상처가 안에서 부었는지, 점점 더 아파지기 시작해 아예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있던 수업을 한 시간 전에 급히 취소를 했고 금요일, 일요일 회사도 빠졌습니다. 이제는 복대와 함께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허리는 조금도 숙일 수 없습니다.


고등학생 때 처음 허리가 아팠습니다. 일 년에 서너 번씩은 앉아 있어도 서 있어도 누워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 허리 통증을 앓았습니다. 그때마다 선생님께 조퇴를 요청했지만, 제대로 받아들여진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허리 통증을 앓는 많은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겉보기엔 말짱해 보이는 데다가 평소에는 남들처럼 잘 활동할 수 있기에 누가 봐도 꾀병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허리가 아프다는 걸 당시에는 축복처럼 여겼습니다. 군대를 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단체 생활과 수직적 조직 문화에 반발심이 있던 저는 어떻게든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았고, 별로 좋지 않은 허리를, 누가 봐도 나쁜 허리로 만들어서 군대를 빼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위와 같은 자세로 학교에 있는 시간 내내 머물렀습니다.)


그 결과 저는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아 신체 등급 4급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할 수 있게 되었고, 복무지도 강원도 산골짜기 박물관이라 대한민국 대다수의 남자들보다 편한 2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허리디스크로 얻을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이득이었습니다.


디스크가 삐져나와 신경을 누르는, 다리 저림 혹은 다리 마비 증상은 시나브로 없어졌지만(시간에 지남에 따라 보통 자연회복 한다고 합니다), 5,60대 수준의 척추관 협착 상태가 되었으며, (왜 통증이 계속되는지 제대로 설명해 주는 의사 한 분이 없었지만, 제가 이해하기로는) 약해진 4,5번 척추 근처의 근육, 인대 등등이 약한 자극에도 쉽게 상처 입기 쉬운 상태가 되었습니다. 만성 허리 통증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요가를 시작한 지 1년 차에는 오히려 허리 상태가 좋았습니다. 만성 허리 통증을 앓고 있는 분들은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허리 아프다고 말하기가 입이 아파요. 말해봤자 꾀병 아니면 징징거림이 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아픈 수준을 항상 달고 다니다가, 정말 아플 때에만 아프다고 말하게 됩니다. 어느 정도의 통증은 디폴트값이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는 태어나서 이렇게 허리가 아프지 않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몸이 가벼웠습니다. 보통 장요근, 햄스트링 등이 허리 통증의 원인이 된다고 하는데, 그런 근육들이 스트레칭을 통해 풀리면서, 그리고 몸을 지탱해 주는 코어, 다리 근육 등이 발달하면서 최적의 신체 조건이 달성되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요가 신도가 되었고, 요가를 만병통치약으로 숭배했습니다. 그러다 우르드바 다누라사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르드바 다누라사나, 거꾸로 된 활 자세


지금 생각하면 다리의 힘도, 어깨, 가슴의 유연성도 부족해서 조심해야 되는 것이 맞았지만, 그때 제가 그런 것들을 알 리가 없습니다. 무리하게 동작을 흉내 내려고 하다 보니 요추의 압박이 알게 모르게 많이 갔고, 그런 허리 상태로 F45라는 곳에서 준비운동 없이 버피테스트를 하다가 어느 순간에 다리에 힘이 풀리고, 허리의 어느 부분이 잘못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집까지는 간신히 도착했는데, 통증이 점점 불어나더니 누워서 일어날 수조차 없어져 버렸습니다. 앰뷸런스를 불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정도로 119에 전화하는 것이 괜찮은 일일까, 근데 부르지 않으면 날이 새도록 이대로 누워만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택시라도 불러야 하나, 근데 택시에 내가 앉을 수 있을까, 이러다 점점 더 악화되는 거 아닌가, 하반신 마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정형외과가 아니라 응급실을 가야 하는 걸까, 한참을 방바닥에서 버티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민폐 같아 119에 도움 요청은 하지 못했고, 간신히 모로 눕는 데까지 성공한 후, 바닥과 옆에 있는 옷장을 붙잡고 다리에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처럼 하체를 들어 올리고, 옷장과 이어진 벽을 잡고 간신히 상체도 들어 올리고, 겉옷을 챙겨 입고 현관까지 도달하는 데 삼십 분이 넘게 소요됐습니다. 병원까지 보통 걸음으로 10분 거리였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했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걷는 내내 넘어질까 봐 두려워하며 한 발 한 발 간신히 내디뎠던 것만 생각납니다. 병원에 도착해서야, 이건 앰뷸런스를 부르는 게 맞았다고 후회했던 게 생각납니다.


동네 병원에서는 스테로이드성 진통제를 주며, 쉬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말밖에 해주지 않았습니다. 수술을 할 게 아니면 다른 치료 방법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진통제를 먹으며, 그럼에도 하나도 가라앉지 않는 통증을 데리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유튜브를 찾아보며 허리에 좋다는 운동, 허리 통증 솔루션 어쩌고 하는 스타트업의 원격 진료, 칼슘-마그네슘 영양제, 홍삼 액기스, 프로폴리스, 척추 교정기와 경추 베개 등등 뭐라도 도움이 되겠지 싶은 것은 모두 시도했습니다. 다시 불편함 없이 요가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세 달은 걸린 것 같습니다.


요가 강사를 해야겠다 마음먹고, 직장을 드디어 그만둔 시기였기 때문에 좌절감이 대단했습니다. 무릎 부상으로 양아치의 길을 걸은 정대만처럼, 나이라도 어렸으면 엇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먹고 살 수단이 필요했고, 실업 급여의 수급 기간은 얼마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방황할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자꾸만 가라앉으려 하는 마음을 수면 위로 꺼내 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자아비판은 과거의 선택부터 하나씩 타고 올라가, 고등학생 때 그렇게 앉지 말 걸, 대학생 때 치료를 알아볼 걸, 처음 요가로 다쳤을 때 요가에 흥미를 잃어버릴 걸, 부상의 기미가 있을 때 미리 치료할 걸, 여러 병원을 다니며 치료 방법을 찾아볼 걸, 요가 자세에 욕심내지 말 걸, 다니던 직장 그냥 다닐걸!!! 요가는 취미로 할걸!!! 플랜 B를 만들며 살 걸!!! 하며 현재의 선택까지 모두 후회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집에서 하는 것도 없이, 나아질 거란 확신도 없는 몸뚱이를 붙잡고서 오전에는 산책을 갔다가 저녁에는 게으르게 집에서 늘어지고, 또 그 모습을 스스로 경멸하고.

다행히 몸이 회복되며 마음도 서서히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이때의 부상 이후로, 제 생에 잠시나마 존재하던 ‘고통 없는 허리의 시기’는 사라졌습니다.


몇 번의 크고 작은 허리 부상을 지나며, 더 좋은 치료 방법이 있는 걸 알게 되었고, 조금 더 믿을 만한 병원도 찾았습니다. 이번에 다친 허리는 얼마나 빠른 시일 내에 회복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걸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당장 수요일부터 오래 다닌 요가원의 마지막 수업이 있고, 6월부터는 새 요가원들에 출근해야 합니다. 이 일정에 제 몸이 따라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크게 다치면 몸을 소중히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것 외에는 모두 단점입니다.


제가 허리가 안 좋은 만큼, 요가를 안내할 때 올바르고 안전한 허리 사용법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하지만, 내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이렇다 저렇다 안내할 자격이 있나 반성하게 되네요. 요가로 건강한 허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어불성설이 아닌가 걱정도 됩니다. 이러한 걱정들도 지금의 몸이 안 좋기 때문이겠죠. 마음과 몸은 분리될 수 없고,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타요가라는 것도 결국, 마음 수련만으로 마음을 다잡는 것에 한계를 느낀 사람들이 시도한 몸의 수련이었습니다. 몸을 빨리 회복하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안내하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모두 안전하게 요가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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