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오븐을 공짜로 준다고? 에이 설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공짜로 주지는 않지만, 거의 공짜로 주는 거나 다름이 없는 조건으로 준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것도 삼성전자가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제가 2015년부터 작년 초까지 비주기적으로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의 비즈니스 전략을 자문했었는데요, 그 첫번째 결과물이 빛을 보게 되었네요. 바로 "비스포크 오븐 큐커"입니다.
비스포크(BESPOKE)라는 브랜드는 잘 아시죠. 최근 삼성이 열심히 마케팅을 하는 브랜드인데요, BE(되다)+SPOKE(말하다), 말하는 대로 해주는 고객 맞춤형 가전을 가리키는 브랜드입니다. 아직까지는 색상과 인테리어 맞춤형 정도로만 출시가 되고 있는데요, 조금씩 디지털 이용 경험과 맞물리면서 진정한 고객 맞춤형 가전으로 거듭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큐커는 스마트 오븐입니다. 위에 링크한 삼성 뉴스룸에도 잘 설명되어 있지만, 품질(Quality)와 빠름(Quick)의 Q와 조리기구(Cooker)가 결합해서 탄생한 말입니다. 음식을 빨리 조리해 주지만, 일반 간편식과는 다른 차원의 품질을 제공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말입니다. 지정된 8개의 제휴몰에서 구입한 간편식에 인쇄된 바코드만 인식시키면 간단히 버튼 클릭 한번으로 최적의 상태로 조리를 해주구요, 서로 다른 조리법이 필요한 4가지 요리를 한번에 조리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 편안하겠죠.
실제로 저는 샘플을 개발할 때 스테이크를 먹어본 적이 있는데, 1-2분 사이에 정말 맛있는 스테이크가 만들어지더라구요.. 오븐의 한쪽에서는 고기를 굽고, 다른 한쪽에서는 야채를 익히는 것을 동시에 진행하기 때문에 번거롭지도 않았구요..
이런 제품의 가격이 얼마일까요? 공짜 아니냐구요? 당연히 공짜가 아닙니다. 일시불로 구매시 59만원입니다. 22리터짜리 오븐이 59만원이면 솔직히 그렇게 싼 가격은 아닙니다. 하지만, 앞에 설명한 기능이나 편리함을 생각하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스마트 오븐을 삼성전자가 사실상 공짜로 주겠다고 합니다. 요즘 날씨가 더워서 삼성 직원들이 더위를 먹은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숨겨진 전략과 비즈니스 모델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략의 상당수는 제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했고, 제한된 범위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저도 관련된 내용의 자문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아래 제가 2019년 말에 출간한 책이 보이는데요, 책 제목이 "냉장고를 공짜로 드립니다"입니다. 부제가 "사물인터넷에서 시작되는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변화" 이구요.. "어 똑같은 이야기네!!"라는 생각이 드시지 않나요?
그렇다면 냉장고를 혹은 오븐을 어떻게 공짜로 줄 수 있는 걸까요? 그리고 정말 공짜일까요? 일단 답부터 말하면 엄밀히는 공짜가 아닙니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거의 공짜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마트 오븐인 큐커를 구입하는 방법은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존처럼 59만원을 내고 일시불로 구매하는 것입니다. 이건 뭐 기존과 다를 바가 없겠죠. 또 다른 방법은 삼성카드로 5만원에 구입을 하고 24개월 혹은 30개월 동안 매달 일정한 금액, 즉 39,000원 혹은 35,000원씩 8개의 제휴몰에서 식품을 구매하는 것입니다. 대상 제휴몰이라면 어디에서 무엇을 사든 상관 없습니다. 매달 정해진 금액 이상만 구매하면 됩니다. 만약 이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다른 구독 서비스들처럼 정해진 조건에 따른 위약금을 내야 합니다.
그럼 자세한 설명을 위해 24개월짜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매달 39,000원씩 24개월간 구매를 한다면 총 936,000원을 사용하게 됩니다. 오븐 구매시 5만원을 결제해야 하니까 총 986,000원을 쓰는 셈입니다. 그런데, 오븐 가격이 59만원이니까 실제로 식품 구입에는 396,000원을 쓴 셈입니다. 오븐을 정가에 구매했다고 가정하면 간편식은 정가의 40% 정도의 가격에 구매하게 되는 셈입니다. 반대로 간편식을 정가에 구매했다고 가정한다면, 오븐은 약 8.5%의 가격에 구매하게 되는 셈입니다.
즉석식품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한달에 두어번만 즉석식품을 드시는 분들이라면 어떻게 보더라도 구매자에게는 득이 되는 조건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누가 손해를 볼까요? 일단은 삼성전자 및 식품제조사들이 모두 손해를 봅니다. 정확한 액수나 비율은 알 수 없지만, 오븐 가격에서 5만원을 뺀 549,000원의 손해를 삼성전자와 식품제조사들이 나눠 갖게 되는 거죠.
그럼 왜 이런 손해보는 장사를 하려고 할까요? 답은 고객 락인에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고객들을 디바이스 기반의 서비스 플랫폼에 가둬두게 되면 고객들은 계속해서 해당 식품제조사들의 간편식을 이용하게 될 것이고, 해당 회사들의 장기적으로 더 큰 매출 및 수익을 얻어낼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고객들을 확보해서 안정적인 매출을 얻어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추가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통상적인 마케팅비용이 가격의 30% 내외인 점을 감안한다면, 전체 가격(936,000+590,000)의 30%인 457,800원을 아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븐 가격의 약 77%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즉, 처음에는 어느 정도의 마케팅 비용이 필요하겠지만 (오히려 더 필요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케팅 비용을 그대로 굳게 할 수 있다면 해볼만한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씀드릴 수 없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까지 감안한다면, 비록 처음에는 손해를 볼 수 있지만, 삼성전자와 식품 제휴사들은 절대 손해를 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손해를 보게 될까요? 바로 경쟁 식품사들이 될 것입니다. 간편식 구매자들이 8개 제휴사로 이동함으로써 경쟁 식품사의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들은 그만큼 더 마케팅을 열심히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전략을 2014년부터 열심히 떠들고 다녔는데요, 다들 관심은 가지면서도 이게 가능하겠느냐며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달랐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판매량에 있어서도 기존 제품과는 비교가 안 되는 놀라운 실적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판매 첫주에는 물량이 딸리기까지 했다는 군요. 이 제품이 성공한다면, 앞으로는 이런 제품들처럼 스마트 디바이스를 공짜로 주는 서비스들이 많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