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삼성전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삼성 개발자 컨퍼런스, SDC 2022를 개최했습니다. 이 행사에서 삼성전자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요, 최근 몇 년간 반복적으로 해 오던 지속가능한 일상(Everyday Sustainability)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스마트싱스와 빅스비에 대한 이야기, 삼성 TV Plus, 보안 등이었습니다. 한종희 부회장은 이런 내용들을 행사 마지막에 "캄테크(Calm Technology)"라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캄테크라는 말은 마크 와이저(Mark Weiser)와 존 실리 브라운(John Seely Brown)에 의해 1995년에 만들어진 말입니다. 마크 와이저 박사는 유비퀴터스 컴퓨팅(Ubiquitous Computing)이라는 개념을 소개한 분으로 유명한데요, 동료였던 존 실리 브라운이 이 개념을 캄 컴퓨팅으로 발전시킨 것입니다. 사실 그 당시 정확한 표현은 캄 컴퓨팅(Calm Computing)이었고, 이 용어가 일반화 되면서 캄 테크놀로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편의상 캄테크라고 줄여서 쓰기도 합니다.
그럼 캄 컴퓨팅이나 캄 테크는 무엇일까요? 한종희 부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We will make our life easier, seamless, and frictionless. This is our vision for Calm Technology." 즉, 삼성전자의 비전인 캄테크는 우리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만들고 끊김없이 만들고 불편함 없는 것으로 만드는 기술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만 듣고 캄 테크가 무엇인지 이해가 가시나요? 안타깝지만 제 생각에는 용어에 대한 추가 설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원래 캄테크 혹은 캄 컴퓨팅은 마크 와이저 박사가 개발한 유비퀴터스 컴퓨팅의 진화 단계를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먼저 유비퀴터스 컴퓨팅은 언제 어디서나 컴퓨팅 파워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합니다. 즉, 우리 주변(background or ambient)이 다양한 형태의 컴퓨터로 가득 차 있어서 어디서나 컴퓨팅 파워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양한 형태의 컴퓨터라는 것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아닌 다양한 장치들이 컴퓨터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네트워크(인터넷)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동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TV가 그냥 TV가 아니라 스마트 TV가 되는 것이구요, 냉장고가 스마트 냉장고가 되는 식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개별 기기에 특화된 컴퓨팅 기능을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컴퓨터 장치들이 컴퓨터로 인식되지 않게 됩니다. 첫번째는 반도체 기술의 발전 때문인데요, 반도체 기술이 발전하다보니 컴퓨터가 작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리적으로 잘 인식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정신적인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인데요, 스마트 냉장고를 쓰다 보면 그냥 냉장고처럼 인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마트한 기능들이 냉장고의 주요 기능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서 그냥 냉장고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개념이 사라지는 컴퓨팅(disappearing computing)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컴퓨터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들을 컴퓨터로 인식하지 않게 된다는 측면도 있겠지만,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컴퓨터가 너무 작아져서 어딘가에 숨겨지게 되구요 냉장고에서 컴퓨터의 기능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보이지 않는 컴퓨팅(invisible computing)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컴퓨터가 보이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들을 사용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결국 이들을 직관적인 방식으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들이 필요한데요,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음성 명령입니다.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인공지능 스피커 같은 것들이죠. 따라서, 보이지 않는 컴퓨팅 시대에는 사용자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시끄럽게 떠들어야 합니다.
자 슬슬 답이 보이죠. 시끄러운 것은 우리의 일상을 방해합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컴퓨팅이 더 진화하면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컴퓨터들이 알아서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일들을 해 줍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게 배경으로 사라져 있다가 필요할 때 짜잔 하고 등장해서 필요로 하는 일을 해 주고 다시 조용하게 사라집니다. 이것을 바로 캄 컴퓨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소개하겠지만, 이걸 앰비언트 컴퓨팅 혹은 앰비언트 인텔리전스라고 합니다.
컴퓨팅 분야에서 사용되던 캄 컴퓨팅의 개념은 다른 분야에서도 널리 사용됩니다. 즉, 평소에는 보이지 않지만 필요할 때는 나타나서 알아서 필요한 일을 해주고 다시 조용히 사라집니다. 사람이 직접 조작을 하지 않지만 사람이 필요로 하거나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죠. 이런 개념이 바로 캄 테크입니다.
캄테크의 대표적인 사례로 휘파람 주전자를 이야기합니다. 주전자를 불에 올려놓고 물을 끌이는 경우 휘파람 주전자는 물이 끓을 때 즈음에 삐~~ 하는 소리를 내 줍니다. 소리를 통해서 물이 끓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죠. LED 수도꼭지도 있습니다. 물의 온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건데요,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에 LED 빛이 보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적당한 온도일 때는 녹색으로 보이고, 뜨거울 때는 빨강, 차가울 때는 파랑 이런 식이죠. 출근할 때 자동으로 불이 켜지는 현관의 센서등이나 건물의 자동문도 대표적인 캄테크의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개념을 집(Home)에 적용하겠다는 것이 삼성전자가 생각하는 캄 테크인 것입니다. 즉, 센서등이나 아파트의 주차 차단기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필요한 일들이 제공되는 홈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삼성전자의 제품이나 인터페이스 기술을 이용해서 말입니다.
사실, 이런 움직임은 전혀 새롭거나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삼성전자를 이를 위해 작년부터 스마트싱스 중심으로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구요, 연말에는 소비자 가전 부문과 인터넷 모바일 부문을 결합하여 디바이스 경험(DX) 본부를 만드는 등 조직 개편 작업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이제부터는 디바이스보다는 디바이스를 이용한 고객 경험을 개선하는데 집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고객 경험을 개선하기 위한 개념을 강조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삼성 제품들을 누구나 쉽게 쓸 수 있게 하겠다거나 그 제품들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먼저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겠다거나 더 나아가 제공되는 서비스가 개인 맞춤형으로 제공되게 하겠다 같은 것들이죠. 이를 직관적인 사용성(intuitive), 선제성(proactive), 그리고 개인 맞춤형(personalized)라고 하는데요, 아마존이 말하는 앰비언트 컴퓨팅의 핵심 특성입니다.
아마존의 앰비언트 인텔리전스
그런데, 삼성전자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합니다. 공급자 관점에서 캄테크를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끊김없는 서비스(seamless)를 제공하겠다 혹은 마찰을 줄이겠다(frictionless) 등이죠. 물론, 아마존도 방해하는 것이 없는(distriction-free)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마존은 철저하게 사용자 관점입니다. 두 회사는 거의 동일한 기술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들이 서로 다르게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