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기술을 개발하는가?
이번 CES 2023에는 혁신이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미래학자 윌리엄 깁슨의 말처럼 "혁신은 다양한 분야에 고루 퍼져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농슬라(농업+테슬라)라 불리는 존 디어(John Deere)다.
이미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 되었지만, 존 디어는 농기계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해서 자율주행을 하며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농약을 뿌린다. 그것도 씨를 뿌린 곳에만 물을 주고 잡초만 찾아서 정확하게 농약을 뿌린다. 덕분에 농약 사용량을 60~70%나 줄일 수 있으며 이는 사람들에게 덜 해롭고 환경을 덜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식량 생산을 늘려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매우 의미가 있다.
그래서, 수많은 언론이 존 디어에 주목하고 여러 곳에서 언급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존 디어는 그렇게 새롭지 않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해마다 새로운 기능이 탑재된 제품이나 솔루션을 소개하고는 있지만, 존 디어는 2020년부터 계속 CES에 참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내 주목을 끄는 것이 있었다. 바로 전시관 벽면에 표시되어 있었던 (키노트에서도 언급되었던) Real Purpose/Tech/Impact 라는 문구였다.
존 디어는 진짜 목적(Real Purpose)에 맞는 찐기술(Real Tech)를 이용하여 농업뿐만 아니라 인류와 지구 전체에 실질적인 영향(Real Impact)를 끼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시물들이 이 말을 입증해주고 있었다.
일반 승용차에서는 당장에 적용하기 어려운 자율주행 기술을 농기계에 적용(Real Tech)함으로써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Real Purpose)하고, 씨앗의 파종도 자동으로 하고 물을 주거나 농약을 뿌리는 것도 지능적으로 함(Real Tech)으로써 물 사용량도 줄이고 농약 사용량도 줄이겠다는 것(Real Purpose)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환경도 보호하며 식량의 생산량도 증가시킴으로써 더욱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Real Impact)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동안 자율주행이니 메타버스니 5G니 하면서 꿈과 환상만 심어주고 제대로 서비스는 되지 않는 기술들만 보다가 레알 찐 기술과 활용 사례를 보니 정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테크 기업들은 유동성 잔치 속에서 첨단 기술로 자신들을 포장하며 멋 부리기에 한창일 때, 존 디어는 묵묵히 진짜 목적을 해결하기 위한 찐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고 이제는 인류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9월 30일, 테슬라는 2족 보행 휴머노이드 로봇인 옵티머스를 공개했다. 2021년 8월 테슬라 AI Day 때 소개된 테슬라봇(Tesla Bot)을 1년만에 공개한 것이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살펴 보았는데, 이런.. 이건 뭐 20년 전에 소개된 휴보 로봇 수준이었다. 게다가 한 대는 2족 보행도 하지 못해 거치대에 메달아 놓은채 단순히 손 움직이는 것만 보여줬다. 실망 그 이상이었다.
이에 비해 현대차가 인수한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2족 및 4족 보행 로봇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공중제비를 돌거나 백덤블링은 하는 것은 기본이고 장애물이나 경사로가 있는 곳을 마음대로 뛰어다니기도 한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테슬라는 옵티머스를 이용해서 공장에서 일을 시킬 수도 있고 가정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관련된 카메라 비전 기술 등을 소개했다. 하지만, 이 기술들 역시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기술들일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정확히 언제 정확히 어떤 용도로 이 로봇들을 사용할 수 있느냐인데, 이에 대해서는 두 회사 모두 한 마디도 말을하지 못한다. 명확한 목적(Real Purpose) 없이 로봇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마존이나 구글은 훨씬 더 실용적인 로봇 기술을 개발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구글의 에브리데이 로봇 프로젝트인데, 구글은 재활용품을 분리수거 하거나 테이블을 정리하는 등 특정한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아마존은 아스트로나 라브라도처럼 보안(방범)이나 쇼핑, 실내 물건 배송에 특화된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테슬라봇이나 보스턴 다이내믹스 로봇처럼 2족 혹은 4족 보행을 위한 기술을 개발할 필요도 없으며 로봇이 수행해야 할 기능들이 매우 제한적이다 보니 로봇 가격도 현실적이거나 현실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구글 로봇은 아직 판매하지도 않으며 7 자유도의 로봇팔이 있어 가격이 비쌀 수 있다.)
물론, 테이블을 정리하고 물건을 전달하고 여닫이 문을 여닫는 등의 단편적인 목적을 위해 거금을 들여 로봇을 도입하는 것 역시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혈압약과 물을 가져다 주는 로봇이 매우 필요할 수 있으며 어던 사람에게는 방바닥이나 테이블에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제자리에 가져도 놓는 로봇이 매우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적어도 사람처럼 걸어다니거나 동물처럼 뛰어다니며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로봇보다는 말이다.
사실 이번 CES 2023의 아마존 부스에서 아마존이 투자하고 있는 Labrador의 Retriever 로봇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데, 독거노인이나 장애인들에게 냉장고에 들어 있는 물건을 꺼내 전달해주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것이야 말로 진정한 기술(Real Tech)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어떻게 수익화를 하느냐일텐데, 1000달러 수준의 아스트로의 가격이나 이를 통해 보안 서비스, 쇼핑 중개,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B2C 시장보다 B2B 시장에서 용처를 찾는다면 상용화는 더 빨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앞으로 실질적인 목적을 위한 기술(Real-Purpose Tech)에 관심을 가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