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요리에 비해 본질에 집중한 요리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님!
요즘 넷플릭에서 방영되고 있는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 인기다. SNS를 통해 이 프로를 인지하고 "재밌나 한 번 보자"라고 했다가 처음 공개된 4편을 연속으로 봤다는 평가가 많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프로를 보는 내내, 내가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번째는 기획력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요리 경연 프로가 있어서 뭐 더 새로운 구조의 프로를 만들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 프로는 내 예상을 완전히 깨버렸다.
내가 '와우' 했던 부분은 일반인 참여자들끼리의 경연이 아니라, 일반인과 흔히 업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대결 구도를 만든 것이다.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요리 수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정확히 짚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수보다 노래를 더 잘 부르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요리도 유명 요리사보다 더 요리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고 이들을 서로 붙여보면 어떨까?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정확히 공략한 것이다. 게다가 20명의 유명 쉐프 및 전문 요리사들과 SNS에서 유명한 숨은 고수들을 거의 모두 섭외했다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구조를 마치 옳음(백)과 그름(흑) 혹은 백수저와 흑(흙)수저의 대비되는 구조로 만들고 시청자들로 하여금 잘 알고 있는 백수저들과 나와 비슷할 것 같은 흑수저들 사이에서 갈등하며 응원을 하고 결과를 지켜보게 만들었다는 점도 놀라웠다.
이 프로가 마음에 들었던 두 번째 이유는 속도감이다. 최근에는 다른 프로들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찾을 수 있는데, 일반인 참가자 80명 중에서 20명을 선발하는 과정(1라운드: 흑수저 결정전)이나 이렇게 선발된 20명과 20명의 전문 요리사와의 매칭(2라운드: 1VS1 흑백 대전)을 보여주는 속도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모든 참가자 및 모든 경연을 비슷한 수준으로 보여줬다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었을 텐데, 건너뜀의 미학이 궁금함과 지루함 사이의 균형을 적절하게 유지시켜줬다.
정말 최근에 본 프로 중에 최고라 할 정도였는데, 오늘 보니 한식대첩의 우승자와 젊은 신인 한식 쉐프의 경연이 SNS 상에 많이 언급되는 거 같다. 그런데, 본질을 놓친데다 자신들의 주장과 이율배반적인 이야기만 하는 거 같아서 내 생각을 써보고자 한다.
위 사진은 어제 오늘 SNS에서 많이 언급되는 경연 부분이다. 왼쪽의 흰색 복장을 하신 분은 과거 "한식대첩"이라는 요리 경연 프로의 우승자로 잘 알려진 이영숙 장인이다. 그리고 오른쪽에 검은색 복장을 하신 분은 장사천재 조사장이라는 닉네임으로 출연한 조서형 셰프다.
2라운드 1 vs 1 흑백 대전은 이처럼 백수저와 흑수저의 대결로 이루어지는데, 특정 요리 재료(주재료)를 가지고 경연을 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평가 방식인데, 백종원과 안성재 셰프가 눈을 가리고 오직 맛으로만 평가를 하게 된다. 즉, 경기의 룰은 주재료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도 맛있게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것이다.
이 경연의 주재료는 우둔살이었다. 우둔살은 소의 엉덩이살로 기름기가 적어 맛이 없지만, 차진 느낌을 제공해서 요리하기가 까다로운 부위다. 그래서 흔히 다양한 양념으로 버무린 육회나 육전을 만들 때 사용한다. 이런 재료를 가지고 이영숙 장인은 미소 곰탕을 만들고 조서형 셰프는 전립투골이라는 요리를 만든다. 요리 자체 및 조리법에 대해서는 넷플릭스의 영상을 참고하기 바란다.
사진으로 보이는 것처럼, 미소곰탕은 그냥 (곰탕보다는) 설렁탕처럼 심플하다. 거기에 미나리를 감싼 우둔살 구이가 들어가 있다. 미나리와 소고기를 써서 미소라는 이름이 붙은거 같기도 하고, 한 입 먹으면 스르르 미소가 퍼질거 같아서 미소라는 이름이 붙은 것 같다. 맛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너무 심플하다.
반면, 조서형 셰프의 전립투골은 너무 화려했다. 물론, 맛없는 부위인 우둔살의 맛을 살리기 위해 미트볼 형태로 만들었고 생선과 우둔살 다짐을 함께 구워 색다른 식감을 제공하려고도 했으며 샤브샤브처럼 우려낸 국물과 함께 먹을 수 있게 했다. 게다가 다양한 야채로 균형감도 맞추었다. 얼핏 보면 미소곰탕과도 비슷한 어프로치를 취한 것이다.
하지만, 사진으로만 보더라도 왠지 미소곰탕이 더 깊은 맛을 낼 것처럼 보이고 전립투골은 우리가 흔히 먹는 샤브샤브와 비슷할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두 평가자의 평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요리의 일부를 한 숟갈씩 맛보고 난 후의 평가는 이영숙 장인의 2:0 승이다.
TV로 이 경연을 보면서도 이건 이영숙 장인이 승리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면만으로도 미소곰탕은 깊은 맛을 보여줄 것 같은 반면, 전립투골은 그냥 인스타용 요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결과가 그랬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안 그래도 본질은 무시한 채 겉만 화려한 것들이 더 주목받고 인정받는 세태가 싫었는데, 음식의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마저 화려한 것이 선택된다면 겉으로 드러낼 것이 별로 없는 나에게는 큰 실망감을 안겨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평가자들은 나의 기대에 부합하는 결과를 선사했다.
어제 오늘 많은 사람들이 이 두분의 경연 결과를 SNS에 공유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인 것 같다. 겉모습보다는 내면 혹은 내실이 더 중요하다고 말을 하면서도 결국은 겉모습을 선택하는 요즘의 세태를 블라인드 테스트라는 구조를 이용해서 과감히 깨뜨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 내실을 다지기 위해 고생한 나에게도 언젠가 기회가 찾아오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재밌는 부분은 평가를 마친 후 실제 요리를 보면서 평가자들도 놀라는 부분이었다. 자신들의 평가와 요리의 모습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경연 후 조서형 셰프도 비슷한 말을 한다. 자신이 10년을 넘게 공부한 노하우를 담았지만, 덜어냄의 미학을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과유불급이라고 말했지만, 화려함보다는 본질에 더 집중해야 했다는 반성의 의미를 다르게 표현했으리라.
하지만, 나에게는 이거 외에도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이 경연의 본질은 요리의 화려함과 내실이 아니라 "경기의 규칙"을 얼마나 충실히 따랐냐 그러지 못했냐 하는 것이다. 경연에서 승리한 이영숙 장인은 경기의 규칙이 주재료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데 집중한 반면, 조서형 셰프는 이런 노력도 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도 집중을 했다. 경기의 룰을 정확히 이해했다면 꾸미는 부분은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시청자나 방송국 사람들을 의식했던 것 같다.
내가 이 부분, 즉 경기의 룰을 강조하는 이유는 최근 사람들이 룰을 무시한 채 열심히만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기 때문이다. 즉, 공식적으로 제시된 규칙은 무시한 채 자신만의 생각으로 (때로는 의도적으로 규칙을 왜곡하면서까지) 결과를 만들고, 그 결과가 인정받지 않으면 실력도 없는 것들이 이상하게 평가를 했다며 투덜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기 때문이다. 지들이 잘못 해놓고 남탓만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조금 확대 해석한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런 관점에서 와닿는 부분도 커서 한마디 덧붙여 보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2라운드의 평가 방식에 대해 미리 공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연 당일날 룰을 공개하는 바람에 이런 사단이 났다는 이야기도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