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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여행자 Jul 02. 2021

그놈에 원수 같은 돈, 돈 때문이야.

나는 왜 엄마를 떠났나. 06


※ 다소 거친 표현이나 욕설이 섞일 수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새아빠와 엄마의 부부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내가 안고 있던 불안은 견딜 수 없이 커져갔다.

 

 세상에 부부싸움 한번 안 해 본 부부가 존재하던가?

사소한 언쟁이라도 부부싸움에 포함된다면 그 범위는  넓어지겠지만.


 새아빠와 엄마의 부부싸움은 누구 한쪽이 죽어야 끝날 듯이 맹렬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적막을 견디고 터져버린 화산처럼 마그마를 뿜어내는 기세로 싸워댔다.

 정말이지 서로를 죽여버리고 싶어서 안하는 모습이었다.


 두 분이 한번 부부싸움을 하면 그 여파는 일주일 밤낮을 파고들어 집안을 냉기로 얼어붙게 만들었다. 의 여왕도 울고 갈 만큼 차가운 칼바람이 여름에도 불었다.





 "그놈에 돈! 돈 얘기 좀 그만해!! 지긋지긋해 죽겠어. 당신이라는 여자 징글징글해 니기미 시팔!!"


 " 징그러? 징그러? 누가 징그러운데, 내가 왜 이렇게 미친년 널뛰듯 지랄하고 사는데! 나도 돈 얘기 안 하고 싶어. 새끼들만 아니면 죽어버리고 싶다고!!!!!!!"


 " 하루 종일 소처럼 일한다. 이런 니기미! 내가 일하는 기계야? 정말 미치겠다, 미치겠어!"


 " 당신만 일해? 밖에서 널뛰듯 몸땡이 돌리고 와서 또 집에서는 밥하고 빨래하고. 내 몸뚱이가 열개라도 되는 줄 알아? 미치겠는 사람은 나야. 나 같은 년이나 이러고 살지 요즘 어떤 미친년이 이러고 살아! 아이고 서방복 없는 년은 자식복도 없다더니.

 그래, 이 인간아! 나이 차이 얼마 나지도 않는 새끼한테 엄마 소리 들어가며 살아야 하는 내 심정을 알아?

 당신이 퍽이나 알겠다 퍽이나!"


 엄마는 새아빠가 한마디 하면 열 마디를 줄줄이 뱉으며 날뛰기 일쑤였다. 자기 분에 못 이겨 소리 지르는 걸로는 부족했는지 아빠를 향해 발길질하고 뾰족하게 세운 손가락으로 아빠의 몸을 쥐어뜯기도 했다.




 

 새아빠와 엄마가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집안의 분위기는 불이 타오르듯 후끈거렸고 그걸 지켜보는 우리는 울부짖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어린 자매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울거나 움츠린 몸으로 방에 처박혀 있는 것뿐이었다.

 

  그때 느꼈던 공포, 무기력, 슬픔과 같은 감정들은 어느새부턴가 마비되어 서서히 내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수없이 되풀이되는 부모님의 부부싸움에도 더 이상 지 못했다.

 '제발 그만 싸우시라고. 너무 무섭다고. 집에 들어오기 두렵다고. 나도 버틸 수 없을 만큼 힘들다고....'

  속으로만 수백, 수천번 되뇌고 말았다.


 내 몸과 마음은 메말라갔다. 마치 햇빛과 수분 없이 말라 죽 어가는 식물처럼......

 생기 없이 공허한 눈을 하고 다녔다.

 주변 친구들의 방황이나 일탈도 그저 남일럼 느껴졌다. 그 어느 곳에도 섞이고 싶지 않은 회색 인간이 되어갔나 보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부부싸움이 한창이었다. 싸움이 일상이었기에 평소와 마찬가지로 힘없는 몸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이윽고 우레와 같은 무시무시한 엄마의 비명이 들려왔고 새아빠도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엄마가 주방으로 달려가 칼을 꺼내서 거실로 달려갔다. 다 같이 죽자며.

  

 " 이렇게 살아서 뭐해! 그냥 다 같이 죽어버리자고!!!"

 엄마의 절규에 가까운 비명소리에 심장이 쪼개지는 것 같은 고통과 절망이 또다시 밀려왔다.


 " 당신, 이게 무슨 짓이야! 애들도 있는데 창피하지도 않아?!"

 새아빠는 고함을 지르며 엄마에게 달려들어 칼을 빼앗았다. 엄마는 순순히 칼을 내주고 주저앉아 흐느껴 우는 것으로 상황은 끝나버렸다. 새아빠는 쾅 소리 나게 현관문을 닫고 어디론가 나가버렸고 거실에는 눈물 젖은 얼굴로 주저앉은 엄마가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모든 것의 시작이 과연 돈 때문이었을까?

어른들의 세계와 돈이라는 게 뭔지 잘 모를 시기에 그저 '돈이 없으면 사는 게 힘든 거구나, 돈 때문에 싸우는구나'와 같은 단순한 생각을 하며 살았다.

 현실은 내가 좋아하는 공포 영화보다 무서웠고 진저리 날 만큼 반복되었지만 벗어날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도 고통스러운 삶을 원하지 않았겠지만 모두가 어두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가끔 엄마가 화장을 하며 켜놓은 아침 드라마의 콩가루 집안을 보면서 '저 집구석에 비하면 우리 집은 괜찮은 건가, 다들 서로 물어뜯고 싸우며 사는 거지, 그래도 행복할 수 있는 거겠지? 이런 게 인생이라는 건가'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어느 철학가의 명언처럼 내가 보고 느끼는 가정환경이 전부라고 믿게 됐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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