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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여행자 Jul 01. 2021

남동생의 탄생과 동시에 찬밥 신세로 전락하다.

나는 왜 엄마를 떠났나. 05

 

 남동생의 탄생으로 가정의 불화가 안개 걷히듯 물러났다. 나보다 7살이나 어린 데다가 이부동생이어서 여동생과는 다른 벽이 있었다. 게다가 새아빠를 닮아서인지 힘쓰는데 재미 들린 꼬마 장사였다.


 드디어 우리 집안에도 볕이 드는 건가.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까운 착각이었다는 것은 시간이 더 지나자 드러났다.


 남동생이 태어나고 아빠와 엄마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났다. 항상 무표정하거나 화가 나있는 두 분의 얼굴이 웃고 있을 때는 남동생의 재롱을 볼 때뿐이었다.




 

 존재감이 거의 없던 우리에 비해 남동생의 존재감은 실로 대단했다. 새아빠같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무뚝뚝하고 거친 사람이 남동생을 볼 때는 딴 사람으로 탈바꿈했으니.

 어쩌면 속은 의외로 부드러운데 우리에게는 그 마음을 주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새아빠의 무관심과 냉정함에 마음이 다칠 때면 '새아빠니까. 우리랑 피 한 방울도 안 섞인 아저씨가 우리를 키워주느라 고생하니까. 그 이상을 바라면 안 되겠지'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는 그때서야 알았다. 새아빠도 호탕하게 웃을 줄 아는 어른이라는 걸. 새아빠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서 알짱

거리고 말을 걸어도 내게는 다정한 눈빛 한번 보여준 적이 없던 아빠....

 세상에는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구나.

 아빠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사랑이나 위로 따위가 아니었다.



 

 애초에 우리 자매와 남동생이 같은 선상에 서있다는 건 불가능했다. 나와 여동생은 돌아가신 친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남동생은 새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피가 반만 섞인 셈이었다.


 남동생이 태어난 후 찬밥신세가 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빠와 엄마는 의붓오빠와 의붓언니, 나와 여동생을 집에 두고 남동생과 셋이서 산으로 들로 놀러 다녔다.

 오빠와 언니는 어차피 고등학생 이어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았고, 나와 여동생은 스스로 할 것 다 하고 부모님의 손이 필요하지 않을 나이라는 핑계였지만 마음이 허전했다.




 

 그때는 부모님에게 화나는 감정이 들기보다는 외톨이가 된 기분을 느꼈고 내가 기댈 곳은 책이었다. 관심이나 사랑은 커녕 안전하지 않은 집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공포나 판타지 류의 허구성이 짙은 성격의 책을 읽는 거였다.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관망하는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내 인생이 힘들다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행복하다고 주문처럼 늘 외웠다.

'난 행복한 아이야. 지금은 어둠 속에 있지만 언젠가는 나도 자유롭고 밝은 곳으로 나갈 거야. 나는 잘될 거야. 지금도 행복하니까 괜찮아'


 그렇게 행복한 척 나 자신을 속이면서 삶을 지탱하는 연습을 했다. 그런 내 생각이 설령 꾸며낸 거짓이어도 상관없었다. 관심받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불쌍한 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대신에 내 얼굴에는 표정이 사라져 갔다. 내 머리는 세뇌로 마비시킬 수 있었지만 표정만은 어쩔 수 없었다.

 공허한 눈과 무표정. 한 소녀가 지닌 얼굴은 그 아이의 내면 때문에 나이에 맞지 않게, 영혼이 없었다.



 

 잠잠해 보이던 일상은 곧 깨져버리고 말았다. 엄마와 아빠의 부부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우리는 전쟁터에 버려진 아이들처럼 공포에 떨며 지내야 했다.

 불안함, 모멸감, 비참함,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내 몸과 마음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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