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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Oct 15. 2020

미안했던거 취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너그러워  .....  질 줄 알았다. 


예전에 나에게 뾰족하게 굴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무뎌지거나, 나에게 서운한 말을 던졌던 사람들에게도 "뭐 그럴수 있지" 정도로 감싸안는것 말이다. 그렇게 색이 바래고 부드러워진 커다란 소쿠리를 양팔에 안고, 속상했던 일도 아팠던 말도 툭툭 던져넣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입꼬리를 올리며, 


"이것봐! 지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지? 다 잊혀졌지?" 


할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 경우는 남들이 나에게 했던 말이나 행동은 크게 나를 거슬리게 하지 않는데, 누군가와 불편한 대화를 해야 했을때 내가 너무 섣불리 "미안하다" 라고 말한게 두고 두고 마음에 걸린다. 누구와 일대일로 마주보고 묵직한 이야기를 하는것, 그 이야기가 나와 그 사람이 결부된 찝찝한 대화라면 더더욱 그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내 성격탓에, 나는 늘 일찌감치 "백기"를 들었다. 


"아 미안해!" 

"내가 그러는게 아니었는데."


차라리 그렇게 말하고 그 자리를 마무리하는게, 일분 일초라도 그 불편한 자리를 끝낼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양심에 걸리는게 하나도 없이 미안하다고 얘기했던것은 아니었을게다. 따지고 보면 진짜로 내가 미안한 점도 있었으게고, 둘 다 비슷하게 잘못했을수도 있었겠지. 강심장도 아니고, 흥분한 상태에서 조리있게 또박또박 말할 자신도 없어서 내 나름대로는 "미안하다" 라고 선수치는게 쿨하게 상황을 종결시키는 길이라 생각했던것 같다. 아니 때로는 그런 생각이 머리에서 제대로 돌아가기도 전에, 그런 자리에 앉아 있으면 머리가 하얘져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하다보니 그 말이, 


"미안해" 였던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나이가 이만큼 들고 나서 가끔씩,
"아! 내가 그때 미안하다고 하는게 아니었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거다. 갑자기 떠오른 잊고 있었던 내 경솔한 "미안해!"가 유난히 머리 한구석에서 떨쳐지지 않는 날이 가끔 찾아오는 거다. 


그때 내가 괜히 여러번 미안하다고 말했던것 같애.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미안한 일도 아니었는데, 왜 나만 미안하다고 했을까. 내가 미안하다고 하고나서, 그 사람도 미안하다고 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했던가 안했던가 그때 내가 너무 쉽게 미안하다고 말한것 같애... 등등 


이렇게 갑자기 한번씩, 

그간 "미안해"라고 쉽게 말해버리던 댓가를 치르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이제와서 다시 당사자를 찾아가, 그때 내가 했던 "미안해"는 취소! 라고 말할수도 없고,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니 더 약이 오르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나는 "미안하다"고 말한 이상 그 시점엔 명백히 패자가 된 기분이라고 할까. 시간을 돌려 다시 그 테이블에 둘이 마주한다면 절~대로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지 않을거라고 심통맞은 얼굴을 한다. 


한참, 그렇게 약 올라 하다가, 

나이 들면 온화해지고 너그러워진다는거 '이거 다 뻥이었구나'.

오히려 실수로 과거에 온화한척 했던것도 나이들면 다 생생하게 기억나서 까칠해지는구나.라고 마무리. 




커버이미지 by Karim MANJR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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