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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Oct 16. 2020

하루의 시작

주방에서 뒷마당이 있는 데크(deck)로 나가는 커다란 유리문 앞은, 내가 온종일 자주 지나치는 곳이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요즘같은 때에는, 아침에 일어나 주방에 오면 아직 동이 트기 전이다. 

서서 뒷마당을 바라보면 정확히 마주보이는 곳에서 해가 뜬다. 

해가 떠오르기 전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세상빛을 매일 놓치지 않고 함께 시작한다. 


아직 캄캄한 하늘이든 오렌지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하늘이든, 

어김없이 같은 자리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하늘과 땅과 해와 구름을 바라본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그렇게 바라보며, 날짜도 가늠하고 절기도 가늠한다. 

그 하늘빛 끝으로 눈에 보일듯 말듯 연두빛이 느껴지면 봄이고, 

바쁘게 갈길을 재촉하는 철새들을 만나면 

어느새 옷깃을 여며야 할 만큼 기온이 차가워졌음을 알수 있다. 


날짜와 절기를 조그만 글자가 가득한 달력속에서가 아니라 

나무와 꽃과 하늘과 해의 도움으로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건 그리 오래지 않았다.

늘 한 자리에 서 있는 나무는 새순으로, 잎으로, 꽃으로, 열매로 나에게 계절을 알려주었고,

해는 자리를 조금씩 바꾸어 가며 떠 오르고 저물었지만,

그걸 알아챌 마음의 여유조차 없던 세월이 있었다. 

그 시간 속의 나는 그럴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로 

늘 종종걸음을 걷고, 조급해했으며, 창 밖은 자주 내다보지 못했다. 


쌀쌀해진 날씨지만 오늘 아침엔 창을 좀 열었다. 

들숨과 함께 폐부 깊숙이 들이닥친 찬 기운으로 시작한 오늘 하루는 

여유롭되, 더욱 정성껏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커버이미지 by Martin Kníž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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