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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Oct 20. 2020

다 알면서 왜 그래

(이제야 결혼 십년차에 접어들어 가는 중년 부부이지만요) 


연애 3년을 포함해서 결혼 3년차쯤 되었을 무렵, 이제야 우리 둘이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너무 늦은 일인지 아니면 남들의 비해 빠른 일인지는 모르겠다. 어쨋든 그 무렵부터, 우리가 하는 말이 다른 부연설명이나 오해 없이도 적절하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기분이 들었다.


같은 언어, 같은 지역의 말을 쓰더라도 살아온 환경이나 교육받은 배경에 따라서, 그리고 성격이나 생활습관에 따라서 언어는 천차만별 다른 색과 뉘앙스를 갖는다. 액센트는 다만 한국사람의 '영어'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남편에게서 그 사람 가정환경에 따른 액센트를, 나와는 다른 공대출신의 액센트를, 나보다 몇년더 외국생활을 한 액센트를, 그리고 더불어 나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종류의 경험을 하며 살아온 삽십몇년간의 삶에서 묻어나는 액센트를 들으며, 나의 언어속에서 화합되지 못하고 있다고 여러번 생각해왔었다. 


아마 나의 거침없는 화법과 자주 사용하는 남들이 잘 쓰지 않는 단어들, 게다가 내 스스로 얹어놓은 뉘앙스가 가득 풍기는 단어들, 그리고 행간의 의미들 때문에 남편은 내 언어를 이해하는데 나보다 더 힘든 시간을 갖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내가 지칭하는 그렇고 그런 불특정한 단어들을 남편이 기가막히게 알아채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나', 그 말을 이해하는 '남편'이, 그 말을 이해한 남편에게 다시 대답을 하는 '나'는 꽤나 편안한 의사소통을 무리없이 진행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게되었다. 


"왜 이렇게 내 말을 못알아 들어." 

라는 말을 여러번하며 다툰적이 있었던것 같다. 그럴때면 서로 왜 같은 말을 이렇게 다르게 받아들이는지 이해할수 없었다. 서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 하늘 아래에서는 명백히 나의 언어가 정상 이었던 것이다. 


이제 "아"하면 "어" 하는 마당에,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불만과 핑계는 없을테니, 

앞으로는 다른 종류의 다툼을 해야겠지. 


"당신 다 알면서 진짜 왜 그래." 이런. 



커버이미지 Photo by Cody Enge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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