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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Nov 08. 2020

집을 사랑하는 일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소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 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을 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 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오베라는 이름의 사나이> 중에서.  


 아래층 마루바닥엔 우리집에 놀러왔던 손님이 의자를 끄는 바람에 길게 긁힌 자국을 냈다. 아이들에게도 늘 조심을 시켰는데 가족도 아니고 손님이 만든 자국이니 그저 마음만 쓰렸다. 긁힌 자국을 잘 안보이게하는 비슷한 색깔의 마커를 사다가 여러번 발라두었더니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그렇더라도 아래층에 내려오면 내 눈에는 제일 먼저 그 자국이 보여, 괜실히 가서 발가락으로 비비적 거렸다. 집에 있는 창문하나는 삼분의 일 정도만 열리고는 창틀에 끼어서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남편과 내가 아무리 힘을 써도, 세월이 지나며 집 구조가 이리저리 움직여진 탓인지 그 창문은 열리지가 않았지만, 창문을 삼분의 일만 열고도 환기를 시키고 유리창청소를 할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거실 천장에 있는 환기용 팬은 높이 달려 있어서 청소하기가 쉽지 않은데, 집에 있는 사다리, 테이블, 스툴을 어떤 조합으로 쌓아야 그 높이에 다달을수 있는지 여러번의 시도 끝에 알게 되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팬의 먼지를 쓸어내릴때는 늘 같은 순서로 물건들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선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마지막에서 두번째 계단은 카페트가 조금 찢어져있다. 키우는 강아지가 어릴때 밤낮으로 카페트를 긁어대서 남긴 상처였다. 강아지는 이제 나이가 들어 뛰어다니거나 물어뜯는일을 하지 않지만, 그 찢겨나간 카페트 조각을 보면 눈만뜨면 장난을 치던 강아지 어린시절이 눈앞에 선하다. 


아이방 한중간 어디쯤을 밟으면 유난히 삐걱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낮에는 잘 들리지 않는 소리이다가도, 한밤중에 아무 생각없이 밟았다가는 머리털이 쭈뼛 서는 소리였다. 잠투정을 하는 아이를 새벽에 가서 토닥토닥 간신히 재우고 걸어가다가 그 소리를 내면 안된다는 것 쯤은 알게 되었다. 비몽사몽한 상태더라도 삐걱 소리가 나는 쪽을 잘 피해서 걸어나갔다. 남편과 내가 리모델링한 주방은 겉보기엔 그럴듯 해보여도 사실 우리 눈에만 보이는 옥의 티가 몇군데 있다. 조리대 뒤 타일은 예쁘게 정렬되어 붙였지만, 벽 끝의 모서리부분은 삐뚤빼뚤함을 고백한다. 그렇지만 그 모서리부분은 전자렌지라던가 밥솥으로 감쪽같이 가려두었다. 


구석진 캐비넷 안쪽 문에는 아이가 어릴때 그려놓은 낙서자국이 있는데, 잘 열지 않는 문이다 보니 칠을 다시하려다가 늘 잊어버린다. 아주 오랜만에 삼겹살을 구워먹으려고 후라이팬을 찾다가, 샤브샤브를 해먹으려고 전골냄비를 찾다가 낙서를 발견하고는, 이거 칠해야되는데 라고 중얼거리지만 다음에 그 문을 열때까지 까맣게 잊고 있다. 아침에 가장 해가 잘 드는 창가와 한낮에 해가 잘 드는 바로 그 곳에 화분들을 두고 물을 준다. 화분들이 한줄로 서있지 않은 이유는, 빛이 드는 길이 일직선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은 며칠만 화분에 물을 주다보면 알수 있다. 거실 한켠에 있는 의자는 창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다. 중앙을 향하는 거실 전체의 조화를 생각해볼때 의문이 드는 배치이지만, 그곳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봐야 저녁노을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우리 가족은 알고 있다. 



이 집에서 삼십대에서 사십대가 되고,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이들이 학교갈 나이가 되고, 태어난지 두달 만에 우리집에 왔던 강아지가 10살이 넘었다. 세월은 사람과 동물뿐 아니라 우리 집으로도 흘러 지나갔다. 처음에는 새집같았지만 흰머리가 군데군데 생기기 시작하는 남편과 나처럼 집도 여기저기에 흰머리가 생기는듯 했다. 집에는 우리가족만 알고 있는 비밀이 생겨났다. 현관문옆에 있는 옷장문과 주차장으로 나가는 문, 이 세개의 문을 한꺼번에 열려면 어떤 순서로 열어야 하는지 알아서 착착 열고 있는 아이들은 보면, 너희도 이 집에 오래 길들여졌구나 생각한다. 처음처럼 흠 하나 없고 벽에 손자국없는 완벽한 집은 아니지만, 사는 사람의 날숨과 체온과 손길로 색은 편안하게 바래고 윤기는 적당히 잃어갔다. 집에 대한 우리 가족의 애정은 더 커졌고, 불완전한 집의 모든것을 사랑했다. 사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완벽했다. 


<오베> 책에서 소냐가 말하는 부분에 동의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집을 사랑하는 것은 비슷하다. 새로 집을 샀을때 새로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때는 모든게 다 감사하고 꿈같다고 느끼지만 살다보면 그렇지 않다. 해를 지나면서 예상치 못한 곳을 수리하게 되기도 하고 태풍이 강했던 여름날에는 지붕을 고쳐야 했던것 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가는 일도 그랬다. 늘 처음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이해할수 없는 부분이 불쑥 불거져나오기도 했고, 서로의 예민한 부분을 거슬리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창문이 완전히 다 열리지 않는다고 카펫트 끝자락이 조금 찢어졌다고 집을 버리겠다고 마음먹지 않는것처럼, 이해할수 없는 부분을 용인하는 인내심을 조금더 기르거나 예민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는 법을 배워나갔다. 아침마다 주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감사하다고 느끼거나, 하루를 마치고 불을 끄기전에 눈으로 집 이쪽끝에서 저쪽끝까지 한번 훑고는 너도 오늘 수고했다고 인사를 건네는것 처럼,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말을 습관적으로 하고 감사한다는 마음을 자주 전하려고 했다. 어느날은 유난히 마음에 들지 않던 벽 색깔이 다른 날은 따뜻하게 느껴지던것처럼, 어느날은 그렇게 보기 싫던 한쪽 어깨를 약간 기울이고 걷는 그의 뒷모습이, 다른날은 제법 멋있다고 느끼기도 했다. 


집도, 집에서 함께하는 사람들도, 살다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불완전한” 부분이 보이기 마련이지만, 함께 하면서 그 부분은 더 빛나게 되었다. 그것이 완전하고 완벽해져서가 아니라, 그 불완전한 모습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아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랜시간동안 애정을 쏟는 모든 것은 결국 나에게 가장 완벽한 것이 되어간다는 것을 집을 통해, 함께하는 사람을 통해 알게 된다. 





커버이미지 Photo by Lasse Dierck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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