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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Nov 02. 2020

대낮에 소파에서 낮잠을 자는 일

유학시절 혼자 살던 작은 스튜디오에는 오렌지색 소파가 하나 있었다.


전에 함께 살던 룸메이트가 두고 이사를 가서 어쩌다가 내가 짊어지고 이사를 다녔다. 아주 좋은 소파는 아니었지만, 앉으면 나름대로 편안했고 크기도 널찍해서 살림살이가 변변치 않았던 유학생활엔 고마운 물건이었다. 


어느 추웠던 날 친구가 집에 잠깐 들렀는데, 현관에서 신발과 외투를 벗자마자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더니 “아이구 좋다!” 하면서 쿠션을 끌어다가 머리에 받히고 담요를 목까지 끌어 덮으며 소파에 벌러덩 드러 누었다. 그 친구는 누워서 나는 그 앞에 앉아서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이야기들을 주고 받다가, 그 친구는 졸음이 온다면서 소파에서 잠시 낮잠을 자고 돌아갔다. 


그 친구가 돌아가고 나서 가만히 그 소파를 바라보다가, 난 한번도 이 소파에 그 친구처럼 누워본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혼자사는 아무도 없는 집인데도, 난 주말에도 주중에도 소파에 아무렇게나 누워서 시간을 보낸적도 잠이 든적도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소파에 누워있을 만큼의 마음의 여유가 단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어쩌다가 소파에 앉아 있으면, 빨리 끝내야 하는 과제가 떠올라서 책상으로 가거나, 밥먹고 치우지 않은 밥상이 떠올라서 식탁으로 가거나, 그것도 아니면 저만치에 떨어져 있는 과자 부스러기를 보고나서 몸을 일으켜 청소기를 돌렸다. 커피를 한잔 만들어서 소파에 앉아도 내 머리속과 눈앞에 산재해있는 할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어서 커피를 입안에 털어 넣고 그새 소파에서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그럴때 항상 나와 소파의 관계를 마무리 짓던 말이 바로 "내가 이럴때가 아니지"였다. 


나는 왜 그 소파에 단한번도 늘어지게 아무런 걱정없이 잠깐이라도 늦장을 부려보지 못한걸까. 왜 한순간도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걱정이 되었던 것일까. 잔소리 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사생활을 간섭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당장 더 해야할 일들이 있지도 않은데, 그 소파에 앉아서 티비를 켜면 마음이 불편하고, 그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 다른 일들이 머릿속을 채우고, 결국 “내가 이럴때가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 


한순간도 뭘 하지 않고 손놓고 있는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 부지런한것과는 다른 일종의 강박이었던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열등감의 다른 표현이었던것 같기도 하다. 무언가 계속 해야할 일이 없으면 내 자리를 지키지 못할것 같은 불안감, 편안하게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을 보내면 도태될것 같은 느낌, 대학원생으로서의 내 처지와 상황은 편안한 소파와는 어울리지 않는 어쩌면 대척점에 있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학생 신분을 벗어난지 오래되었다. 

예전 그 오렌지색 소파는 몇번의 이사중에 처분한지 오래되었고, 지금은 그때보다 더 푹신하고 더 커다란 소파를 갖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지금도 여전히 아무도 없는 대낮에 소파에 벌러덩 누워서 긴 시간을 보내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가끔 일부러, 손에 책 한권 들지 않고 터벅터벅 소파로 걸어가서 손에 잡히는 쿠션을 아무렇게나 머리뒤에 받치고 드러눕는다. 그 친구처럼 "아이구 좋다" 소리도 가끔 내어본다. 누워서는 되도록 오늘 해야할 일이나, 이번주에 해야할 일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눈을 바닥으로 돌려 굴러다니는 먼지나 머리카락도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천장을 바라보거나 멀리 창문으로 눈을 돌려서 아주 옛날 일이나 혹은 아주 나중의 일을 찬찬히 떠올려 보려고 한다. 그것도 아니면 좋았던 바닷가나 예쁜짓을 하던 아이들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가끔은 스스륵 눈이 감겨오려고 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때면 기분이 좋아졌다. 


꽤 오랜시간동안 소파에 누워 편안함과 여유를 느낄수 없게 만들었던 정체 불명의 그 감정들이 조금씩이지만 해소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오렌지색 소파에서 안절부절 하지 못했던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나에게로 향하던 위태롭던 감정들을 완화시키는 노력을 스스로 해나가는 중이다. 


소파에서 달고 개운하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는 일, 

그날 내 집에 찾아온 친구에게는, 내 아이들에게는, 그리고 내 남편에게는 너무도 쉬울지 모르는 일, 

그것이 아마 내가 해내고 싶은 첫번째 목표가 될것 같다.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면 달콤쌉싸름한 추억이 한데 엉켜있다. 그때가 좋았기도 하고 또 힘들기도 했다. 한 두가지의 기억이나 추억으로 끌어낼수 없던 시절이어서 그 시간을 걸어나오던 나의 감정들 또한 복잡했다. 나의 부족함과 열등감을 내 눈으로 바라보기는 안타까운 일이었고, 모든 시간을 스스로 다독거리며 걸어나오려니 나는 늘 힘에 부쳤다. 


오늘은 소파에 앉아서, 아니 누워서, 그 때의 나를 떠올리며 따뜻하게 다독여야 겠다. 

그러다가 조각볕을 받으며 짧지만, 기분좋은 낮잠도 자고 싶다. 

[마침]





Cover image: Photo by Inside Weath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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