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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Nov 09. 2020

사진첩 2,984장 사진중에  

“네 사진도 좀 보내봐, 애들 사진만 보내지 말고. 애들도 보고 싶지만, 네가  보고 싶어” 


주말동안 찍었던 아이들 사진을 잔뜩 보내고 있는데 엄마로부터 도착한 문자였다. 

멀리사는 외손녀들 사진을 받아보면 가뭄의 단비처럼 보고싶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해소할수 있어 좋다고 말하던 아이들의 외할머니였다. 내가 보내주는 사진들을 한장 한장 오랫동안 보면서 아이들 얼굴을 손가락으로 만져보기도 하고, 사진첩에 저장해두고 보고싶을때마다 아껴서 꺼내본다는 외할머니였다. 외손녀들이라면 끔직이 귀해하던 외할머니지만, 가끔은 손녀들 사진 속에서 딸의 모습이 보고싶은 모양이다. 아니, 내 딸이 “더” 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내 아이들의 할머니가 이전에 내 엄마였다. 


엄마의 문자를 받고 내 전화기의 사진첩을 후다닥 살펴봤다. 


사진첩에는 2,984장의 사진이 있었는데, 대개 인물사진과 풍경사진이 반반정도 되는것 같다. 인물 사진은 예상대로 대부분 아이들 사진이었다. 애들을 따로 따로 찍은 사진, 두 아이를 함께 찍은 사진, 그냥 예뻐서 찍은 사진, 놀러가서 찍은 사진, 귀여워서 찍은 사진, 웃겨서 찍은 사진, 많이 커서 찍은 사진, 우는 사진, 처음 자전거를 타는 사진 … 사실 아무 특별한 일이 아니더라도 아이들 사진을 찍을 이유는 넘쳐났다. 


드물긴 하지만 남편 사진도 꽤 있다. 물론 반려견 사진의 수가 남편 사진보다 많다는 것을 고백한다. 사진을 찍는 걸 알리고 포즈를 요구한 후 촬영한 사진도 있고, 때로는 그냥 뒤에서 아니면 멀리 앞에서 걷다가 찍어준 사진도 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남이 찍어준 내 사진은 단 한장도 없었다! 


어릴때처럼 셀카를 수시로 찍을 만큼의 열정과 자신감이 사라진지 오래이고, 가끔 사진을 찍을 일이 있더라도 머뭇거리거나, 혹은 찍힌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없애기도 했다. 사진기 화질이 날로 좋아지니 어느새 자리잡은 주름과 칙칙한 피부색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게다가 요즘은 집밖에 나갈수가 없으니, 옷도 맨날 같고 화장기는 커녕 미용실이 가지 못한지도 오래라, “어이구, 사진은 무슨 사진” 이라는 마음이 크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이건 좀 심하잖아. 왜 찍었는지 모를, 영수증 사진이나 책상다리 한쪽 사진은 지워지지 않고 남겨져 있는데, 내 사진이 하나도 없다니 말이다. 





쏜살같이 남편 전화기의 사진첩을 열어봤다. 


내 사진첩의 10분의 1 정도의 사진이 있었다. 원래도 사진을 찍히는 것이나 찍는것 둘다 못하는 사람이지만, 찍는걸 더더욱 못하는 사람이다. 연애시절 함께 여행을 갔다가 사진 찍어놓을걸 보고 기겁했었다.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순간을 포착하는 순발력도 없고,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어 카메라모드로 세탕하는데도 느릿느릿한데다가, 그의 전화기마저도 그를 닮아 매우 느리다. 


이런 수고로움을 다 겪어내어 사진좀 찍어보라는 나의 성화에 사진을 찍는다 한들, 나는 대개 한쪽눈만 감고 있거나, 목 바로 아랫부분에서 댕강 머리만 나와 있다던가, 상반신과 하반신 비율이 기묘한 사진에 찍혀있다. 나무 옆에서 찍은 내 얼굴은 반만 나와 있는데 나무는 가느다란 가지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찍혀있기도 했다. 찍은 사진을 확인해보면 늘 아휴~ 한숨이 쉬어진다. 단순히, 기술이나 순발력 혹은 예술적 센스의 부족 정도로 이해를 하려다가도, 이건 100% "성의 부족"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남편 사진첩에는 아이들 사진이 제법 있었다. 그리고 씨를 뿌려서 애지중지 가꾸던 화초 사진이 가득있었고, 새로 생긴 취미(bird watching)때문에 각종 새 사진들이 많았다. 그래,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사진을 찍고 싶어지지. 눈앞에서 사라지는게 아쉬워서 기록하고 싶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해서 남겨두고 싶지. 그러니까, 남편의 사진첩에 아이들, 화초, 새 사진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아니 그렇지만, 이렇게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고, 아끼는, 절세미녀 (나) 사진은 남겨두고 싶지 않단 말인가? 란 생각이 들어 이내 기분이 나빠졌다. 왜 내 사진은 없는거야. 내 사진을 가끔 찍어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남편이라는 생각을 하면 어딘가 섭섭해지기까지 한다. 정말 그런거냐고 물어보니, '나 사진 못찍잖아'. 란 말로 방어하는데 이거 영 기분이 개운하지는 않다.





얼마전 시어머님이 보낸 문자가 떠올랐다. 


시부모님께도 다를바 없이 아이들 사진을 주로 보내드리는데, 내가 예전에 사진공유SNS 피드에 올렸던 아주 웃긴 남편사진을 인화해서 시댁 냉장고에 붙여뒀다며 사진을 보내오셨다. 아니 잘찍힌 사진도 아니고, 이렇게 웃긴 사진을 인화까지 하셨을까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문득 오늘 '아, 어머니도 아들 사진이 보고 싶으셨던 거구나' 까지 생각이 미쳤다. 


눈에 넣어도 안아플 손녀들 사진을 보면 좋으시다가도 그 아이들 뒤에 있을 아들 모습이 보고싶으셨겠단 생각을 했다. 좀 제대로된 사진을 피드에 올렸을껄 그렇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 사진은 남편 놀리느라 일부러 고른 웃긴 사진이었는데. 다음에는 애들사진과 함께 제대로 된 아들 사진도 종종 보내드려야 겠다고도 생각했다. 


엄마 문자에서, 사진첩에서, 남편 사진첩에서, 어머니의 문자까지 이르러서의 결론은, 남편에게 "내 사진 자주 많이 찍어줘 나도 당신 사진 많이 찍어줄게" 였다. 뭐 이러나 저러나 사진이 큰 열정이 없는 남편은 미직지근한 동의를 했고, 나는 시범삼아 한번 찍어보라며 내 전화기를 건냈다. 


저기 걸어가는 저 여인 (바로 나!)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서, 이 아름다운 모습을 두고두고 보고 싶다는 심정으로, 이 아름다운 순간을 남기지 않고는 후회가 되겠다는 애절한 마음으로, 그렇게 사진을 좀 찍어보라고. 이번에는 잘 해보겠다는 남편을 못미더워하며 사진을 찍으라며 앞으로 걸어갔다. 오늘은 엄마한테 내 사진 한장 보낼수 있길 바래본다.




커버이미지 Photo by Steve Danie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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