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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Nov 13. 2020

그 집에게 미안함을 전하며

오래전 좋은 인연을 함께 했던 사람이 아끼는 곳이 있다며 어딘가 데려가주었다. 경복궁 뒤, 삼청동 초입으로 올라가 삼청공원쪽으로 고개를 넘어 성북동으로 내려가는 길 어디쯤이었다. 길에서 조금 들어간 곳에 자리한 높지 않은 담으로 둘러싸인 한 옥 한채였다. 담에는 옛 문인의 고택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4월 어느날 오후였다. 


대문을 삐걱하고 밀고 몇걸음 들어서면 손질이 잘된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눈을 들어 왼쪽을 바라보면 튓마루와 문창살이 있는 집이 한채 앉아 있었다. 툇마루 아래 댓돌에 신발을 벗고 올라서면 몇 칸으로 나뉘어진 방이 있었는데, 방마다 낮고 반질반질한 찻상과 고운색의 방석이 놓여 있었다. 마침 그날은 평일이었고 늦은 오후 시간이라 우리 말고는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그 신비로운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은 여러 사람들과 비좁은 자리에 앉아서 후다닥 점심식사를 마쳤던 날이었다. 윗사람과 동료 등 여러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할때는 속도에 뒤쳐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밥숟가락을 움직이곤 했었다. 점심을 먹고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던 나를 이끌어준 보석같은 곳이었다. 방 하나에 올라서서 그제서야 편안한 숨을 한번 쉬었다. 


격자창살, 서까래, 세월을 담아 삐걱지만 윤이 나는 마룻마닥. 한옥에 살아본 적도 아는 것도 하나 없는 나였지만, 이 곳은 누군가의 정성으로 매만져온 곳임은 짐작할수 있었다. 너른 방을 두 사람이 차지 하고 조심스레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니 마당의 우물가, 나무, 고운 색의 꽃과 푸른잎이 햇살을 밭아 반짝였다. 몇가지 고를 것이 없는 메뉴판을 받아들고 차 한잔 씩을 주문했다. 차와 함께 먹음직한 유과가 한두개 곁들여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음악도 없었다. 그저 새와 바람소리가 들려왔고, 따뜻한 찻잔을 손에 감싸고 아무말 없이 바라보는 바깥풍경은 그것만으로 완벽했다. 차지 않은 바람이 반가웠고 조용조용 나누던 대화는 다정했다. 무엇보다 아끼는 그 곳에 나를 데려와준 사람에게 고마웠다는 마음을 전하니, 내가 좋아할것 같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차가 그 길 어귀로 들어설때부터, 대문을 넘어설때부터, 댓돌에 신발을 벗을때부터 그곳이 좋았다. 


그 이후로도 그 사람과 나는 자주 그곳에 들러 차를 마셨다. 복잡한 세상을 떠나는 몇시간의 소풍같은 시간처럼, 나에겐 비밀스럽고 신비한 곳이었다. 그 동네 토박이었던 그는 동네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었다. 오랜시간 한자리를 지키고 살아오신 동네 어르신처럼 이곳은 어디었고 저곳은 어디었다는 옛날 얘기도 가끔 들려줬다. 나보다 고작 서너살 많았던 사람이었지만, 스무살 중반의 나이엔 산처럼 커보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가끔 조심스럽게 친구나 지인에게 그곳을 혹시 아는지 슬쩍 운을 떼어보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세상에 그 집을 아는 사람이 몇 안되는데, 그 중의 두사람이 나와 그 사람인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로 자주, 계절마다 그 곳을 찾아 차를 마셨다. 




늘 둘이서 함께 갔던 곳이었지만, 그 사람과의 인연은 계속되지 않았다. 난 그 곳이 그리웠지만 혼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난 인연도 마음에 빚처럼 남아있었고, 나만 알고 있는 그 곳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이기적인 마음도 있었다. 언제나 오랫동안 나만 간직하고 싶었다.


시간이 흐른 어느날, 오랜만에 한 친구를 만나 밥을 먹었다. 직장에서 집에서 복잡한 일들로 심난해 하던 그 친구는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차를 마시고 싶다고 얘기했다. 머뭇거리던 나는 큰맘먹고 친구를 그 곳에 데려갔다. 내가 아끼는 친구이니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나 혼자 오랫동안 가지 못했던 곳에 친구와 함께라면 용기를 낼수 있을것 같았다. 그리고 그 언젠가 그 곳에 데려갔던 사람이 얘기하듯, 내 친구라면 이 곳을 좋아할것 같기도 했다. 역시, 나를 닮은 친구도 그 곳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종종 지인을 만나면 그곳에 데려갔다. 저녁에는 사람이 좀더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늘 넉넉하고 여유있는 곳이었다. 


해외생활을 할때에도 가끔 그집 생각이 났다. 해마다 이번 여름에 한국에 들어가면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짧은 일정으로 한국에 들어가면 집에서 멀리 있는 그 곳에 들를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여름, 정말 오랫만에 한국에 들어갔다. 한국을 떠난지 6년 만이었고, 내가 졸졸따라 그 집을 드나들며 차를 마신지 십년이 조금 안된 즈음이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먹고는, 길을 한참 돌아 가야 하는데에도 나는 오늘 꼭 그 집에 가겠다고 고집했다. 네비게이션에 찍어봐야 나오지 않을거라고 왜 생각했던걸까. 그저 기억에 의존해서 더듬더듬 길을 찾아 그 집 어귀에 들어섰다. 


담앞에 차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는 것을 봤을때만 해도 그 차가 모두 그 집에 온 손님들의 것이라곤 짐작하지 못했다. 예전보다 담너머 불빛이 강해졌다고 느꼈지만 저녁이라 그렇다고 생각했다. 대문을 조심히 넘어서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음악과 조명, 정원이 비좁게 느껴질만큼 걸어다니던 카메라를 들고 걸어다니던 많은 사람들, 마당 곳곳에 설치된 철제 테이블과 의자, 집 왼편에 새로 지은 통유리로 둘러싸인 건물, 사람이 가득 들어찬 정자와 툇마루, 여름모기를 쫓겠다고 설치된 투박한 기계들까지. 한 눈에도 서너명은 더 되어보이는 일하는 사람들은 본채로 별채로 주문을 받고 차를 내느라 바빴고, 모두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지 테이블마다 이야기소리와 웃음소리가 흘러넘쳤다. 그곳에 서서 멍한 표정을 짓던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던것 같다. 그곳을 눈으로 바라보면서 안타까움과 씁쓸한 마음을 복잡한 표정으로 보였던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던것 같다. 함께 찾은 친구들은, 와 여기 괜찮다며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둘러보고, 그 중 한명은 이미 와본적이 있는 유명한 곳이라고 덧붙였다. 아.. 그렇구나. 변하지 않은건, 집 뒤쪽으로 돌아서 들어갈수 있었던 화장실 뿐이었다. 




이게 다 내 잘못이다.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 나때문에 여기는 손님이 늘어났고, 나때문에 여기는 장사가 잘되고, 나때문에 여기는 이제 신비롭고 비밀같은 곳이 아니었다. 인연이 끝나고서는 찾지 않았어야 했는데 지난 시간을 그 집으로 불어오는 바람으로나마 느끼려던 내 이기심때문에, 나와 닮은 친구들이 좋아할거라는 오지랍때문에 사람들에게 이 곳을 소개했다. 그 친구들은 또 그들을 닮은 친구를 연인을 가족을 데려왔을거고, 그 친구들과 연인들은 또 그들의 ... 여튼, 다 내 잘못이다. 거기서 찍었던 사진 몇장을 싸X월드에 올리고 친절히 어디라고 알렸던적이 있으니, 다시 생각해도 다 내 잘못이다. 그 집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나의 신비롭던 4월 어느날 늦은 오후에 느꼈던 신비로움이 퇴색되었음을 애도한다. 다 내 탓임을 겸허히 인정한다. 무엇을 반성해야 할지는 아직도 좀 종잡을수가 없다. 기억에 있던것은 사람이든 장소이든 그대로 남겨둬야 했다는 진리를 다시금 되새겨야 할지, 아무리 좋았던 곳이라도 혼자만 알고 있어야 했다고 반성해야 할지 말이다. 



덧 1. 미안한 마음을 늘 가슴 한곳에 두고 가끔씩 그 집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 이석원님의 산문집 <언제나 들어도 좋은말> 을 넘기다가 이제 그 죄책감을 덜어내기로 했다. 아니, 죄책감을 나눠지기로 했다. 그이의 책을 몇장 넘기면, 그 집에 대한 이야기가 이름과 함께 등장한다. 그는 나보다 훨씬 유명한 사람인데다가 블로그 구독자도 많고 책도 많이 팔렸을테니, 어쩌면 이건 이제 내 탓이라기보다 그의 탓이다. 그 곳을 좋아하는 사람이다보니, 나도 그사람의 글을 좋아하나보다. 이러나 저러나 속상하기는 매 한가지다. 


덧 2. 내가 그 집에 처음 드나든게 그러니까 (놀라지 마시라) 20년가까이 되어간다. 강산이 두번 바뀔 시간에 그 집이 그정도 바뀐것은 다른 곳에 비하면 더디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아니, 그 터에 본채와 대문, 그리고 담을 여전히 보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할 일이다.  


덧 3. 이미 많이 알려진 곳이고 이 글을 통해 쉽게 짐작할수 있으며, 이석원님의 책에서 확인할수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그 집의 이름을 썼다가 지웠다가를 몇번 했다.  


 

커버이미지 Photo by Yeo Khe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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