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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Dec 10. 2020

아흔아홉개의 글

지난 봄부터 세상은 계속 어수선하고 달라진 일상에 적응하느라 분주했다. 학교와 일터를 향하던 가족 모두가 집에 들어앉아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게 되었다. 나에게 집은 가족들과 함께 일때는 일터였고, 가족들이 집밖에 있을때에는 쉼터였는데, 온 가족이 24시간 집에 있다보니 나는 퇴근이 없는 일터에 갇혀있는 기분이었다. 뉴스를 접하면 답답하고 불안한 소식들이었지만, 온 가족이 함께 집에 있는건 그리 나쁜일만은 아니었다. 우린 서로가 하루종일 무슨일을 하며 지내는지 자세히 들여다볼수 있었고 서로의 수고로움과 어려움을 이해할수 있었다. 그렇더라도, 집안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가 올 한해가 훌쩍 다 지나가버릴것만 같아서 마음이 급했다. 


아마, 그때쯤 100일동안 글쓰기 프로젝트를 만난것 같다. 9월 1일부터 시작해서 12월 9일까지 100일동안 매일 글을 쓰는 챌린지였다. 무언가 하나라도 시작을 하고 끝을 맺어서, 무작정 흘러가는 2020년을 붙잡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100명 모집에 250여명이 신청했음을 알게되었다. 100일동안 글을 완주한 사람에게 출판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했지만, 거기까지는 내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나 혼자와 100일동안의 약속을 지켜보는것, 그것만 할수 있더라도 이 아쉬운 마음이 덜할것 같았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가끔 둘러봤다. 모두들 사정과 상황이 다르더라도, 자신과의 약속을 하고 싶어서 무언가 붙잡은 이들이었다. 고등학생부터 60대에 이르는 사람들까지, 직업이 글쓰는 사람부터 애기엄마,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었지만, 우린 모두 "나 자신" 하나만 믿고 그곳에 모여든것 같았다.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끔 브런치에서나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 속에서 매일 조금이라도 써나가는 일을 지속해간다는 듣고는 한번쯤 해보고 싶었다. 대단한 소설이나 칼럼을 쓰는 것도 아니고, 일기장에 쓰는 글처럼 일상에 대한 글을 매일매일 쓰는것이라면 할수 있을것 같았기 때문이다. 코로나세상으로 인해서 삶은 더욱 단조로워졌지만, 그저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것과 글을 쓸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밤 11시 59분까지 마감이라면 하루일과를 마치고 앉아서 끝낼텐데, 내가 사는 곳과 시차가 있다보니 마감시간은 언제나 정신없는 아침식사시간을 걸치고 있었다. 다른 방법을 찾을수가 없어서 결국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로 했다. 한시간 혹은 두시간씩 일찍 일어나서 아침준비전까지 글 하나를 올리는 일을 계속해왔다. 9월 1일에는 아직 해가 길어서 6시에 일어나도 어둡지 않았는데, 마지막 글을 올리는 12월 8일에 아침 6시는 한밤중처럼 깜깜했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날도 꽤 있었고, 가끔은 덩달아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나에게로 오는 아이들 때문에 그 시간마저 흩어져버리는 날도 꽤 있었지만, 시간이 되면 되는 대로 안되면 좀 줄여서 꾸역꾸역 해냈다. 


갖고 있던 메모장에 있던 백 여개의 노트와 쓸거리들은 생각만큼 쓸모가 없었다. 소중한 보물인것 마냥 메모한장, 노트하나를 버리지 않고 기록해둔 일들이 조금 머쓱해졌다. 역시 그때 그때 써내지 못한 글은 메모장에 남겨둬봐야 자물쇠를 채운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머리로는 그때의 일을 기억해서 써내려간다 하더라도 그때의 감정은 제대로 스며들지 못하고 겉돌았다. 쌓여가는 메모들을 보고, 내가 안써서 그렇지 쓰기만 하면 할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무모한 자만심은 기번기회에 쏙 들어갔다. 나는 쓰기만 하면 쓸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미건조한 기록은 할수 있더라도, 글감을 자주 들여다보거나 끌어안고 생각을 하고 또 하기엔, 여유나 정성이 모자랐다. 


써내려간 글을 한눈에 쭉 살펴보니, 지난 100일동안 내가 자주 올린 단어들이 있다. "위로", "다정함", "감사함", "미안함", "그리움", 그리고 "단단함" 등이다. 어쩌면 내 삶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던 화두였겠지만, 지난 일년동안 더더욱 자주 내가 찾았던 말들이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하고 싶었고 받고 싶었으며, 내가 남에게 혹은 남이 나에게 좀더 다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사함과 미안함은 종종 가까운 사람들에게 마구 뒤섞여있었으며, 이제부터는 내가 조금 더 단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초고를 다시한번 읽어보지도 못하고 마감시간 몇분 남겨두고 전송한 일이 많아서, 다시 읽어보려니 서툴고 투박한 표현과 앞뒤가 호응되지 않는 비문이 너무 많아 부끄러웠다. 매일 써내야 한다는 근면성에 초점을 두다 보니 글의 완성도는 터무니없이 별로였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써낸 초고가 아니었다면 그 글들이 100개의 메모로 잠자고 있었을테니, 이걸로 충분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썼던 글을 차분히 앉아서 하나씩 다시 만져야 할것 같으니, 앞으로 100일은 더 쓸거리가 생긴 셈이다. 


지난 100일은 여러모로 "나"라는 사람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난 하고 싶은 일이 여전히 있으며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사람이었다. 꾸준히 할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차곡 차곡 쌓이는 하루하루가 결국 나를 만들게 될거라는 믿음이 큰 사람이었다. 최근에 몇가지 일들도 자신감도 떨어지고 의욕도 잃었지만, 100일간의 작은 성취를 해냈다는 건 나에게 적당히 기분좋은 초콜렛같은 일이었다. 이제 그 성취를 딛고, 다시 또 일어나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11월초, 미국은 써머타임이 끝나서 한시간 더 뒤로 돌아간다. 덕분에 12시간 시차가 13시간으로 늘어나서 마감시간이 아침 10시가 아닌 아침 9시로 바껴버린걸 헷갈려서, 100일중의 하루 인증을 실패했다. 아흔아홉개의 글로 마무리하려니 내심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에 글 두개를 함께 올려서 백개를 채울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흔아홉개로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완벽하지 않았더라도 잘해보려고 꾸준히 애써 왔던 나를 그대로 인정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모든게 다 완벽하지 않으면 안하는게 더 낫다고 나를 몰아세우고 싶지 않았다. 백개 하기로 한 일을 아흔아홉개 했다면, 그게 제대로 안하게 아니라 아주 많이 제대로 해낸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앞으로 단단하게 살고 싶다면, 내 자신에게 따뜻하고 다정해야 한다는 생각도 글을 쓰면서 얻었으니, 여러모로 득이 많았던 지난 100일이었다.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고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 고단한 몸을 책상앞에 앉히고 뭐라고 써보려던 날들이었지만, 오늘은 이 작은 성취를 가족과 함께 축하하고 싶어서 맛있는 저녁을 샀다. 


이제서야 다시 쓸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서야 다시 해볼수 있겠다고,

이제서야 다시 시작할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컨셉진100일글쓰기

커버이미지 Photo by Andrew Nee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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