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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Dec 15. 2020

이럴거면 사오지도 마

생각해보면 첫번째 선물부터 내가 뭔가 좀 짚고 넘어갔어야 했다. 연애를 12월 말부터 시작했는데 어쩌다보니 내 생일이 3월초라 사귄지 2개월만에 선물을 하게 생겼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부끄럽게 내민 선물은 어느 백화점에나 있는 대중적인 화장품 브랜드의 향수였다. 2개월된 연인사이라 너무 큰 의미를 담기도 그렇다고 너무 약소하기도 힘들었을테니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여느 화장품브랜드 프로모션이 그렇듯이 얼마이상 구입시 화장품 휴대용 파우치와 각종 샘플셋트, 그것까지 한꺼번에 쇼핑백에 넣어서 주었는데, 향수만 주고 나머지를 어디다가 버리기도 그랬을테니, 좋은 마음으로 받았다. “와 이거 내가 정말 좋아하는 향수브랜드인데!” 라면서 받았지만 실은 뻥이었다. 그 브랜드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 향은 더더욱 안좋아하며, 같이 딸려온 화장품 파우치는 완전 꽝이었다. 


결혼하고 첫번째 맞는 생일날이었다. 생일 당일이 되어서야 퇴근 후 부랴부랴 쇼핑몰에 갔을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날따라 일은 늦게 끝났고 쇼핑몰은 곧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도착해서 약 30분만에 선물을 골라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수고가 많았을 것이다. 집에 와서 차마 쇼핑백을 내 앞에 내놓지를 못하고 오늘 바빴으며 쇼핑몰에 마땅히 살게 없었다는둥 서론이 길었다. 물론 선물이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정성이 문제이지만, 정성조차 느껴지지 않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가. 그 청소년들이 친구들끼리 우정반지 만들고 하는 가게에서, Love 혹은 Forever 이런 글귀가 앞뒤로 적힌 목걸이를 사왔다. 안타깝게도 하나도 맘에 들지 않았으며, 내가 하기에는 너무 유치해보이는 디자인이었다. 거기에 어느 쇼핑몰이나 입구에 있을법한 핸드솝가게에서 골라온 핸드솝과 핸드로션 셋트도 추가되었으나 점수는 만회하지 못한채 더욱 깍였다. 평소에 아는 사람에게 선물하기도 꺼려지는 저렴이 브랜드였으며, 한겨울에 체리블러썸 향 세트로 사오다니 세일이 아니라면 참 안목이 없는 선택이었다. 오는길에 수퍼에 들러서 꽃도 사왔다. 평소에 단색 꽃 한묶음씩을 사는 나를 보았을텐데, 알록 달록 심지어 파란색으로 물들인 정체모를 꽃다발에 가격표를 그냥 붙여 가져왔으니, 완전 빵점. 


아이를 낳고 돌아온 첫 생일이었다. 여자들이 아이낳고 나면 우울해지기도 하고, 얼굴이나 몸매나 여기저기 예전같지 않으니 속상하기도 하다. 이번에는 며칠전부터 여유를 부리면서 기대하라고 하기에 내심, 여성성을 강조할수 있는 특단의 선물인가보다 싶어서 정말 기대를 했다. 혹시 금은보화? 아니면 뾰족구두나 비싼 가방? 그럴리는 없겠지만, 정말 없었다. 아이랑 씨름하느라 수유하느라 전화받기 어려울까봐 블루투스 이어피스를 사왔다. 벌써 9년전이니 그땐 요즘처럼 예쁜 블루투스 이어폰이 있을때가 아니라, 크고 투박한 검은색 USB스틱같은 걸 한쪽 귀에 끼도록 되어있었는데, 난 그걸 귀에 끼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었다. 전화 못받는 내가 답답한 사람(본인)이 필요한 선물이었다. 나에게 정말 꼭 맞춤이 선물이라면서 의기양양 하기까지 했고, 시험해보라고 전화를 대여섯번 걸고 테스트를 하기도 했는데, 결국에는 화가나서 소리를 꽥 질렀다. 


“이럴꺼면 다음부터는 선물 하지도 마!” 


이러면 다음해에는 어김없이 선물을 안하는 말잘듣는 남편이다. 

그래서 다시 소리를 꽥 지른다. 


“그런다고 진짜 안하냐? 아무거나 하면 되지 그걸 못해?” 


그러면 다음해에는 또 아무 선물이나 한다. 예컨데 아마존 뷰티 카테고리 리뷰 1, 2, 3위제품, 음 아즈텍 인디언 힐링 클레이 (팩), 머드팩, 치아 화이트닝용 차콜 파우더 이런걸 주르륵 주문해서 준다. 


그러면 다시 “이럴꺼면 하지도 마”와 “그런다고 진짜 안하냐”를 격년으로 오가게 된다. 


선물뿐 만이 아니다. 얼마전 카드와 편지 박스를 정리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생일, 크리스마스, 결혼기념일 등등에 나에게 준 카드 열댓개를 읽다보니, 인트로가 토시하나 안틀리고 다 똑같다. 어디 인트로 뿐인가. 문장 한두개 들어가고 안들어가고의 차이이지 내용은 약 90%의 일치율을 보이고 있다. 마치 한자리에 앉아서 같은 내용을 볼펜색깔만 바꿔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쓴것 같지만, 놀랍게도 날짜는 2013년 2015년 2011년 2019년으로 모두 다르다.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으로 시작되는 심하게 한결같은 카드는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것인가. 


출장을 자주 다니는데 당연히 출장가서 선물 같은거 사오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한번은 교토에 출장을 가서 전화를 하다가, 내가 선물 하나 골라오라고 했더니 순순히 알겠다고 한다. 자기가 어제 악세서리 가게에서 예쁜걸 봤다면서.집에와서 꺼내 놓은것은, 오리가미 모양의 귀걸이였다. 그러니까 종이접기 학 모양의 귀걸이인데 내 나이에 하기엔 너무 발랄했지만 이국적인 맛이 있으니까 기념으로 하나 갖고 있을만 하다고 생각했다. 드문일이지만 이 선물은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었다. 2년후에 다시 교토에 출장이 있었고,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은 뭐 하나 샀다면서 봉투를 꺼내놓았다. 기함초풍! 색깔만 다른 똑같은 종이학 귀걸이가 들어있었다. 순간적으로 표정관리가 안되며 이거 뭐 유머인가? 싶어서 아무말 없이 2년전에 사다준 귀걸이를 들고 나오니, 남편이 더 기함초풍을 한다. “내가 똑같은걸 2년전에 사왔었단 말이야? 어쩐지 이게 사고 싶더라니.” … 아니 이거 실화냐? 또 마무리는 소리 꽥 “이럴거면 선물 하지도 마!” 


난 이남자와 살면서 언제나 내 맘에 드는 정성과 사랑이 깃든 선물과, 오랫동안 고민하고 심사숙고하며 한자한자 나를 생각하며 정성을 들인 카드, 그리고 한가지 색깔의 꽃다발을 받을수 있을까. 아마 앞으로도 급조한 선물과, 복사했다고 해도 믿을만한 똑같은 내용의 카드, 그리고 정신사나운 믹스 플라워 부케를 받게 될것 같다. 그리고 교토갈때마다 종이학 귀걸이를 적어도 두번은 더 사올것 같으니, 이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댁의 남편 선물은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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