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 우리 다시 만나.
두 달도 채 안된 꼬꼬마 강아지와 산책을 나가기만 하면 말을 안듣는다며 삐져서 돌아왔던 그는 네 덕분에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어. 너를 목욕시킬때마다 욕실을 난리통으로 만들던 나는 네 덕분에 중년의 아줌마가 되었고. 너를 이 집 저 집 데리고 다니면서 키우던 그와 나는 네 덕분에 한 집에 사는 부부가 되었고, 올해로 벌써 십 사년째 함께 살고 있어.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진짜 엄마들 사이에서 강아지 키우는 것도 애 키우는 것만큼 힘들다고 투덜거려 엄마들을 기막히게 만들었던 나는 이제 진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
네가 킁킁하며 오래도록 애기가 쓰던 가제 수건 냄새를 맡으면서 기다렸던, 너보다 세살 어린 첫째는 수영을 좋아하고 엄마보다 친구가 좋은 사춘기 여자애가 되었어. 자기보다 더 큰 너를 안아보겠다고 네 집에 들어가서 놀다가 잠들어버리곤 하던 둘째는 내년이면 중학생이 돼. 개를 무서워하거나 좋아하지 않던 내 친구들 중 적어도 다섯 명은 너를 며칠 봐주고 나서는, 네 덕분에 지금은 반려견을 들여 가족이 되었어.
집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네 침대를 향해 눈길을 주면서 네 이름을 불러. 엄마 왔어! 하고. 잠자러 가기전에 자꾸 무언가 빠뜨린것 같은 기분은 아마 네 마지막 화장실을 늘 챙겼던 버릇때문인것 같아. 팬트리 한 구석에 우리 가족이 먹는 쌀 봉지 옆에 있었던 네 사료봉지, 한동안 그 자리가 너무 허전하더라. 과일 먹는 소리를 귀신같이 알아채던 너. 아무리 소리 안내고 사과를 입에서 조용히 먹어도 어디선가 기척을 내며 또각또각 걸어오는 네 덕분에 사과를 자르다가도 딸기를 씻다가도 자꾸 네 소리를, 네 모습을 찾게 돼. 긴 시간 집을 비우면, 집에서 네가 기다릴것 같아서, 쉬 마려우면 어쩌지, 배고프면 어떠지, 자꾸 있지도 않은 네 걱정을 하게 돼.
네 덕분에 검은색 스웨터에 가득 붙어 있던 네 털을 떼어버리기만 했는데, 그 털 하나도 버리는게 망설여져. 네 덕분에 일년에 한번 네 생일에 갔던 컵케익집에서 강아지 컵케익을 샀었지. 세상 달콤한 너는 생일도 발렌타인스 데이라서, 하필이면 컵케익집에 불이나는 날이었어. 네 덕분에 애완동물 상점이며 동물병원을 처음 갔어. 의사선생님에게 진찰 받는걸 너무 무서워해서 덜덜 떠는 네 앞발을 꼭 잡아주면서 괜찮아 괜찮아 말했잖아. 그렇게 연습해서, 우리 두 딸내미 병원에서도 그대로 했지 뭐야.
모두 네 덕분이야.
너에게 받은 모든 것들 덕분에,
나는 아내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고, 그리고 이제 너를 보내고 그리워 하며 자꾸 울먹이는 사람이 되었어.
그렇지만, 난 또 네 덕분에 잘 지낼거야.
너를 처음 안았을때 내 손바닥 위에서 두근두근 뛰던 네 심장박동, 보드랍고 따뜻한 온기, 목욕한 지 며칠만 지나고 나던 콤콤한 냄새, 너의 차갑고 촉촉한 까만 코, 너의 펄럭이는 귀, 너의 까만 발바닥, 동그랗고 착한 눈, 그럴리 없겠지만 미소짓는것 같던 입, 나이가 들어 치과수술을 한 후에는 진짜 스누피처럼 혀를 내밀고 있었잖아.
네가 보여줬던 무조건적인 믿음, 사랑, 그리고 다정함을 기억하면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모두 잘 지낼게.
너도 그곳에서 우리의 기도 덕분에 잘 지내길 바라.
우리 다시 만나자.
몇 주째 거실로 매트리스를 끌고 나와 그 녀석 침대 옆에서 밤에 함께 잤다.
밥도 물도 안 먹은지 사흘째 되던 일요일 새벽에, 뒤척이는 소리에 잠을 깨어서 불을 켜고
힘 없이 누워 있는 녀석의 입에 물을 조금 축여주고, 앞으로 뻗고 있는 두 발을 잡아주며
괜찮아, 무서워하지마, 괜찮아 질거야, 우리 또 만날거야 .. 말해줬다.
까맣고 푸른 눈동자는 우주를 품은 듯 깊고 잔잔했고, 그렇게 내 손을 잡고 조용히 떠났다.
올 2월에 열여섯살 생일 보낸 노견이라, 머릿속으로 수십번도 더 이런 순간을 그려보았지만,
막상 그 녀석이 떠나는 순간에 밀려드는 슬픔은 머리로 어찌 할 수 없는 그런것이었다.
그렇게 그 녀석은 우릴 떠났지만, 우리는 그 녀석이 우리와 계속 함께 하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 가족의 요즘 굿나잇 인사를 할때 "내 꿈꿔"가 아니라, "장군이 꿈꿔"라고 한다.
꿈에서라도 한번 다시 보고 만지고 싶다.
잘 가렴.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