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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Jul 12. 2015

야망

야망이 참 컸던 사람을 몇 알고 있다. 그 야망에 때로 좌절도 했고, 그 야망으로 결국 큰 일을 해내기도 했다. 때로는 꽤 가까운 사이 혹은 가족으로, 그 야망가들 곁에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 야망은 종종 나에게 모티베이션을 주기도 했고, 때때로 나에겐 참 부담스럽기도 했다. 야망이라는 것이, 그 만큼 성취하고 나면, 거기서 끝이 아닐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변에서 아무리 이제 이만하면 됐다, 이 정도도 참 잘한 거다 라고 해서 만족되는 경우가 적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옆에서 그 야망가를 바라보는 나 같은 사람들은 한편  조마조마하다. 그 야망에 걸맞은 성공을 하지 못할까 봐 조마조마하고, 그 야망을 이루어내고 말까 봐 조마조마하다. 그 야망이라는 것은 대개, 주변을 한번 돌아볼만한 여유가 없다. 오직 안으로만 안으로만 동기부여를 하여 야망가가 품은 야망은 오직 그들만의 것일 때가 대부분이다.  


야망이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그들의 눈에 반짝반짝 생기가 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끝없이 본인의 야망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해내고, 그들이 왜 그런 성취를 해야 하며, 그 성취의 결과가 얼마나 달콤한 가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 그 성취의 달콤함을 맛본 듯도 하다. 그런 야망가와의 대화에 보통 나는 넋이 나간다. 내가 알 수 없는 세상에 대해 과도하게 자세한 설명을 퍼붓는 탓에 내 이해도는 바닥을 치지만, 그 설명하려는 열정, 거기에 다가가기 위한 본인의 노력,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한 설득. 대단하다. 아마도 큰 집에 좋은 차에, 아니 그것도 훨씬 넘어, 나 같은 범인은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뭔가를 갖게 될 것 같다.


그렇구나. 그래. 대단하다.

그렇지만, 그들과의 대화는 나를 곧 지치게 만든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난 그 욕심과 야망이 참 없는 편이다. 처세서에서 절대 권장하지 않는 삶의 자세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때론 절실함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그 야망가의 대열에 서기 위해 치러야 할 많은 통과의례를 그저 회피하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것도 다 떠나서, 그렇게 24시간, 일주일, 한 달, 일 년 내내 나의 야망을 이루고자 하는 굳건한 의지나 자신감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아니 다 떠나서, 그저 그런 야망을 늘 품고 살기가 “피곤해서” 일수도.


인정하자, 그래. 난 야망가가 아니다.

그리고 나만큼이나 참 야망이 없는 나의 남편과 남은 세상을 사는 것이 참 다행이다. 야망이 없다는 것이 미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남편과 나는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할 만큼 큰 야망은 없지만, 그저 하루하루 작게 만족하고 사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가 큰 부자도, 위대한 사람도 못되나 보다. 오늘도, 나만큼이나 야망 없는 내 남편은, 저녁 먹고 커피 한잔 만들어서, 집 뒤켠 벤치에 앉아 선선한 바람 맞으면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호들갑이다. 우리 부부에게, 우리 가족에게 딱 맞는 사이즈의 야망은 딱 요만한가 보다. 나와 같은 사이즈의 야망을 품고 내 앞에 나타난 내 남편이 그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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