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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Jul 12. 2015

대화

여보세요, 당신 잘 지내요? 

일상생활에 필요한 말들, 예컨대 저녁은 뭘 먹을까, 지유 좀 도와줘요, 쓰레기 좀 비워줘요 와 같은 류의 말들 이외에, 일상생활과 관계없는 “대화”라는 것을 한지 꽤 오래되었음이 분명하다. 내가 말하는 “대화”는 보통, 대개 1분 이내에 해결이 되어야 하거나,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소리를 높여야 할 일들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순간 “다음 기회에”로 제쳐졌다. 보통은 저녁을 먹고 치우고, 아이들 둘을 씻기고 재우고까지 하면, "대화"를 하려는 의지는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안드로메다로 사라져버린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흐르니, 나랑 같이 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청소하고 티비보고, 그리고 심지어 이야기까지 하는 남편이, 요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도리가 없다. 뭐, 대충 나만큼 삶이 고단하려니 정도로 생각할 뿐.


지난밤에 아이들을 재우고 지쳐서 일찌감치 침대에 누웠는데, 남편이 방에 들어오는 소리에 잠이 깨버렸다. 그래서 함께 누워 오래간만에 “대화”를 시도했다. 요즘 어떻게 사는지, 잘 지내는지, 학교일은 어떤지, 몸 안 좋은 건 어떤지, 뭐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하고 싶은 건 없는지, 서운 한 건 없는지, 어려운 일은 없는지, 우리에게 뭐가 제일 필요한지로 확장되었다. 그렇다, 점점 일상생활에 불필요한 비실용적인 "대화" 스러운 대화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비현실적이고 비일상적인 말이 쌓일수록, 아주 오랫동안 갈증 났던 무언가가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그다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거나, 중요한 이야기가 있던 것도 아닌데, 어찌 보면 “오늘 밥 뭐 먹을까”같은 질의응답보다도 더 쓸데없는 말들일수 있는데도 그랬다.


지난밤은 그래서, 내 옆에서 함께 누워 자는 내 남편이 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불을 끈 채로, 얼굴을 마주하지도 않은 채로, 각자 누워서 깜깜한 천장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애들이 잠에서 깰까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이 얘기 저 얘기 비현실적이기 그지없는 “대화”를 한 시간가량 하고 난 다음에야, 그래 내가 이런 사람하고 살고 있었지 싶었다. 


쉽지 않지만 자주자주 우린 비실용적인  “대화”라는 걸 해야 한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얘기만 하다 보면, 나중엔 정말 “대화”하는 법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랑 같이 이 정신없는 생활을  함께하는 이가 잘 지내는지, 힘들진 않은지, 서운하진 않은지 알 수 있는 기회를 영영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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