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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Jun 27. 2016

나의 서른아홉

마흔 아홉을 꿈꾸기 시작할 시간 

내 나이 열아홉살은 유난할것 없는 보통의 고3 수험생의 날들이었다. 해도해도 끝이 없는 문제집과 모의고사, 그 속에서 난 여느 고3들 처럼 지겨워하고 괴로워하고 있었으며 신경은 날카로웠다. 그렇지만 곧 끝이 날 이 수험생의 꼬리표를 떼낼 날 만을 기다렸다. 나도 곧 구두신고 화장하고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대학 캠퍼스를 밟을 그날이 온다는 희망만으로. 


그러나, 수능 결과는 좋지 않았고, 곧 수험생의 굴레에서 벗어나겠다던 나의 계획은 열아홉이 끝날무렵에 산산히 부서졌다. 난 나도 느낄겨를 없이 어느새 대학생이 아니라 재수생이 되어있었다. 내 열아홉은 그래서, 학교 대신 재수학원을 향해 힘없는 발걸음을 터덜터덜 옮겨가는 어깨가 축 처진 모습이었다. 비릿한 노량진의 냄새가 제법 익숙해 졌을때엔, 누군가 말했던 "꽃다운 스물" 한중간이었다. 


내 나이 스물아홉살엔 영원할것만 같던 사랑을 잃었고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이별을 한 것이 먼저인지 유학을 떠난것이 먼저인지 분명치 않다. 이별이 가까이 왔음을 예감했기에 유학준비를 한것 같기도 하고, 유학으로 인해서 이별이 확고해진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난 익숙하던 사랑의 감정도 잃었고 익숙하던 공간도 잃었다. 난 어느새, 나이가 찰 만큼 차서 혼자 유학을 떠난 "여자사람"이 되어버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살아가던 하루하루는 쉽지 않았다. 혼자 일어나서 아침을 챙겨먹고, 학교에 다녀오고, 도서관에 가고, 집에 돌아와서, 혼자 저녁을 해먹는 하루하루에 그럭저럭 익숙해 질 즈음에, 나는 서른을 맞이했다. 혼자 맞는 서른살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여전히 벅차 오르는 감정을 다스리려면 심호흡이 필요했지만, 그래도 난 쓸쓸함도 외로움도 받아들일 여유를 한편 찾아갔다. 안되는 영어에 안되는 리서치에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전쟁같은 일상이었지만, 비로소 처음으로 그 모든 것들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내 나이 서른아홉살엔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나 하나이던 내 삶에는 어느덧,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만들어졌다. 그 울타리가 든든하기도 했고 솔직히 몇번은 그 울타리가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 안에서 "나" 이외의 다른 존재들에 대한 책임감을 배우고 있으며,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기도 한다. 내가 열 아홉에, 혹은 스물 아홉에 상상하던 서른 아홉인가 생각해 보면, 그런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렇든 그렇지 않든, 난 내 서른 아홉을 꾸려가고, 내 마흔을 살아가고 있다. 


마흔의 내 삶이 좀 가벼웠으면 좋겠다. 

그렇게 지루하지도 그렇다고 그렇게 요란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껏 찾지 못했던 것들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기회가 찾아온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얻은 것들에 감사했으면 좋겠다.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이제 부모가 되어보니, 이제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게되는것 같다. 그것을 마흔에 알았다니 내가 늦되긴 했다. 그렇더라도, 이젠 다음 십년후의 나를 꿈꾸어볼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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