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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Jul 05. 2016

남자  

대체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해  

대체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해? 
대체 어떤 남자랑 결혼해야 해? 


당신이 유부녀(혹은 유부남이라면) 주변 싱글로 부터 이런 질문을 받은 경험이 한두번은 있었을 것이다. 


연애에 갓 실패한 사람으로부터, 오랜 연애가 좋은 결실로 이어지지 못할것 같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으로부터, 첫눈에 솔깃한 이가 생긴 사람으로 부터, 혹은 결혼이나 사람 자체에 퍽 비관적인 사람으로부터 말이다. 나도 이런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아온 걸 보면, 아마 그들은 주변 "married"들 에게 비슷한 질문을 여러번 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쩔 때에는 그런 질문을 너무 성의 없이 던진다는 기분이 들때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잠깐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럴것 까지는 없으나, 가끔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성의없이 던지는 질문이라고 해서 성의없이 대답해서는 곤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궁금해하는 어떤 남자를 이미 만났고, 꼭 해야할 필요가 있나 싶은 결혼까지 했기 때문이다. 해서, "대충만나서 결혼하면 돼", "타이밍이 중요한거지"는 등의 대답은 좀 부족하고, 그렇다고 이러저러한 디테일까지 고려한 진지한 대답은 지나치다. 그리하여 이런 질문은, 던지기엔 참 쉽지만, 대답하기엔 참 어려운 주제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싱글일때 이런 질문을 몇 번 했던것 같다. 그런데 기억나는 대답은 없는걸 보면, 그냥 던진 질문이니 만큼, 대답을 들을 준비조차 되지 않았던것 같기도 하다. 


이런 질문을 몇 번 받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하면서, 나는 내 답이 조금씩 정리되는 기분을 느꼈고, 되도록 더 명확한 대답을 준비해야 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없는 사실을 지어내어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내 머릿속에 우후죽순으로 가지고 있던 어떤 남자에 대한 고민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 나의 경험들에 대해 복기할 필요가 있었으며, 현재 살고 있는 나와 결혼한 남자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이 필요했다. 이런 모든것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견해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대답을 듣길 원한다면. 당신이 정녕 찾아 헤매할 할 사람은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 


당신과 조금 다른 사람


서로 딱 맞는 사람, 아 하면 어 하는 사람, 소울 메이트 같은 사람, 비슷한 점이 너무 많은 사람, 말하기도 전에 통하는 사람 ... 우리는 대개 운명적인 사람으로, 천생베필로 이런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뭐, 사실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고 맞지 않아 만날때마다 불편한 사람과 비교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내가 아는 몇몇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이 바로 이상적이라는 환상에 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번 만나보고는 나랑은 안맞는 사람이라며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내가 찾은 대안은, 나와 똑같은 사람인 아니라 "나와 비슷해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살펴보라는 것. 


서로 딱 맞는 사람. 우린 이런 사람들을 한두번 만나본 경험이 있다. 나의 경우, 이런 사람들과는 처음부터 100점만점으로 시작한다. 흔히, 콩깍지가 씌웠다 한다. 나랑 너무나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이라서, 이렇게 만난건 운명이 아니고서야 설명할수 없는 그런 사람이다. 내 마음을 어쩜 그렇게 잘 알아주고, 내가 원하는 것을 그렇게 미리 센스있게 알아주고, 나랑 취향은 또 얼마나 비슷하단 말인가.


그러나 나의 한계인지, 나의 잘못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시작한 사람과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수를 깍을 일만 생겼다. 아, 나랑 이건 좀 다르네. 아,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해가 지날수록 달이 지날수록 나와 다른점만 점점 늘어났다. 기대가 크니 실망도 크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다. 나의 잃어버린 반쪽이었는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아니 가끔은 비슷한 것이 독이 되기도 했다. 서로를 제대로 상처줄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상처를 다시 되받아오는것도 피할수 없었다. 100점에서 시작한 잃어버린 반쪽과의 관계는 결국, 5점씩 10점씩 마이너스할 일만 생겼다. 두 사람이 한몸이었다가, 서서히 전혀 다른 두 사람으로 분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난 후에는, 나와 이사람이 비슷한 점이 하나라도 있었나 싶다. 결국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다보니 100점은 어느새 0점으로 곤두박칠 쳤고, 대개 이러한 관계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런 경험들 이후로 내게 있어서 "나랑 딱 맞는 사람"은 내가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지금 나의 남편을 만나면서 고쳐먹은 생각이기도 하다. 오히려 "나랑 좀 다르네" 로 시작한 사람은, 시간이 흐르고 관계가 무르익으면서 "오호라 이런건 좀 통하네" "어쭈, 이젠 내 취향도 잘 맞추네"로 발전할수 있었다. "저 사람과 과연 오래 갈까" 싶을만큼 나와는 다른점이 많았던 사람과의 관계는, 시간과 함께 긍정적인 발전을 보였다. 10점에서 시작한 관계는 30점, 50점으로 상승했고, 100점 근처에 가지 못할 지언정 상대적인 만족감은 훨씬 늘어갔다. 선을 딱 긋고 양쪽 끝점에 서 있던 두 사람이,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이, 한걸음씩 좁혀서고 있었다. 


실은 나와 남편은 아직도 그 한가운데에서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서로 한 1/3 지점, 혹은 1/4 지점 정도 좁혀 서 있는것 같다. 그렇지만, 원래 주어진 것이 아니라 두 사람에 의해서 좁혀진 간격은 큰 의미를 주었다. 난 이사람과 앞으로 더더욱 좁혀나갈 거리가 설렌다. 우리가 한 가운데에서 만나게 될 날이 언제일지, 아니 아마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런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마 오직 않고 생을 마친다면, 그날까지 난 이 사람과 설레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고, 우여곡절 끝에 한점에서 만난다면 그 또한 대단한 희열을 줄것 같다.  


살면서 점점 좋아지는 사람


처음에 한눈에 이유도 없이 그냥 끌리는 사람과 평생토록 같은 마음으로 살수 있다면야 더 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나에게는 "살면서 점점 좋아지는 사람"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지난 몇년의 세월동안 이~만큼 더 좋아진 사람이기에, 나는 남은 몇십년동안 그와 내가 점점 더 가까이 서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살면 살수록 더 좋아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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