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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Jun 01. 2016

감각  

당신의 감각을 믿으세요 

지금부터 10여년 전,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마련했던 나의 중고차. 차와 함께 한겨울에 필요할법한 눈과 얼음을 벗겨내는 제설장비 두개와, 약 2인치 두께의 이 동네 지도책이 "부록"으로 함께 딸려왔다. 그때에도 네비게이션은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지는 않던 시절이었다. 자기집에 초대를 할 때에는, 주소를 알려주기 보다는, 집을 찾아오는 경로를 자세하게 풀어쓴 이메일을 보내는게 일반적이었다. 


"94번 하이웨이를 동쪽 방향으로 타고, 23번 exit에서 나오자마다 우회전, 직진하다가 세번째 신호등에서 좌회전하면, 왼쪽에서 다섯번째 빨간지붕집이 우리집이에요" 이렇게 말이다. 


안그래도 익숙치 않은 도로사정에다가 장롱면허 갓 면한 운전실력 덕분에, 낯선곳을 찾아 가야 할 때에는 잔뜩 긴장하기 마련이었다. 그런 날은 우선 지도책을 딱 펼쳐놓고, 가야할 곳이 우리집에서 대충 얼만큼 떨어져 있고 어느방향에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나서, 구글맵이나 맵퀘스트의 도움으로, 어디서 우회전을 하고, 얼만큼 가서 좌회전을 해야 하는지 기억 혹은 메모해서, 오른쪽 다리 위에 딱 얹어놓고 운전을 했다. 보통은 큰 문제없이 가지고 간 메모의 도움으로 목적지에 도착하지만, 지도를 한번 보고 전체적인 루트를 눈으로 대충이라도 확인하고 출발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운전하다가 내 메모리에 문제가 생겨도, 다리위에 얹어놓은 메모가 바람에 날아가더라도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우리집에서 서남쪽으로 약 10마일 정도에 있는 곳" 혹은 "유니버시티 에비뉴랑 레이크 로드 근처에 있는 공원주변"이라고 알고 떠나면, 길을 잃더라도 대충 목적지 근방에서 헤매기 마련이다. 길을 잃으면 다시 거기서 지도책을 펴고, 가로 세로 길 이름을 확인하고, 다시 지도에서 위치를 확인해서, 그렇게 목적지에 다다르곤 했다. 지도를 보고 찾아가는 길은 마음에 큰 안정을 주었다. 그렇게 지도와 함께 운전했던 첫 일 이년 덕분에, 나는 이 동네 굵직굵직한 길은 다 섭렵할수 있었다. 어디를 찾아간다 해도, "아 몇번 하이웨이 타고, 그 길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있겠구나" "지금은 이 하이웨이 막힐 시간이니까, 이 길 말고 다른 길 타고 가다가 어디서 우회전하면 금방 가겠구나" 라고, 머릿속에 대충 동서남북 이 도시 지도와 길들이 자리잡게 되었다. 


몇 년후, 네비게이션에 의존하고 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길을 떠나기 전에 전체적인 루트를 한번 살펴보는 수고는 하지 않는다. 재깍 재깍 요앞에서 우회전을 할지 좌회전을 할지 알려주는 친절한 그녀와 함께하는 여정에는 실패가 없다. 네비게이션 없이 어떻게 운전을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이다. 아주 가까운 길도, 내가 알던 길도, 운전석에 앉자마자 어김없이 주소를 입력한다. 이제는 사람들을 집에 초대할때 보내는 이메일에도, 구구절절 "여기서 우회전을 하세요" 라고 말할 필요도 없어졌다. 모든 것이 부드럽고 매끄럽게 그렇게 변했다. 네비게이션과 함께라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세상 모든 길을 모두 정복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 큰 착각이었다. 나는 그야말로 바보가 되었다. 여러번 갔던 식당도 다시 찾아가지 못한다. 교통상황에 따라 이번에는 이 길로, 저번에는 저 길로 안내를 받다보니, 어딘가 어디인지 통 알수가 없다. 확실히 알고 있던 동서남북도 헷갈린다. 흔들림없는 그녀의 명령대로 좌회전을 수십번 하고 나니, 여기가 동쪽인지 서쪽인지 방향감각을 완전히 잃었다. 풍경과 주변 건물, 길 이름을 살펴보지 않고, 귀만 열고 앞만 보고 하는 운전은, 내가 하는 운전이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 휴대폰 배터리가 수명을 다한다면, 난 집에도 찾아가지 못할 신세가 되었다. 기분이 묘하게 좋지 않았다. 나에게 분명히 존재했던 감각이, 내가 원활하게 사용했었던 그 감각이 "퇴화"해 버린 기분이랄까. 



나에겐 요리도 그런것 같다. 처음보는 나물을 발견하고는, 어떻게든 오늘 저녁 밥상에 이 나물을 올려야 겠다고 생각한 다음에 엄마에게 쪼르륵 전화를 건다.  


"엄마, 이 나물은 어떻게 무쳐먹는 거야?"라고 물을 때 마다, 

"응, 말캉하게 삶아낸 다음에, 갖은양념을 넣고, 맛이들때까지 조물조물 무치면돼" 라고 돌아오는 대답에 전의를 상실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니, 참기름은 얼만큼, 간장은 몇숟가락 넣냐고?" 다시 물으면, 

"나물이 얼만큼인지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그렇게 말하니, 보고 적당히 넣으면 되지" 라고 다시 돌아오고. 이렇게 돌아오는 선문답에 지쳐서, 어느날 부턴가 상냥한 인터넷 검색을 엄마대신 이용하기로 했다. 


너도 나도 요리사인 요즘, 인터넷에는 수많은 레서피가 있다. "갈비양념" 이라고 치면, 너도 나도 "갈비양념"의 탈을 쓴 레서피들이 수십, 수백개가 검색된다. 엄마처럼 "갖은 양념" 이라던지, "적당히" 라는 말을 쓰지 않고, "소금 1/2 스푼, 설탕 40그램, 끓어서 기포가 생기기 시작한 후 4분 30초후에 약불로 줄이기"와 같은 객관적인 언어로 나에게 요리를 인도한다. 1번부터 8번까지 따라서 이럭저럭 해보면, 그게 그 요리사가 말한 그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먹을만한 수준으로 마감한다. 뭐 생각보다 맛이 별로라고 해도, 이렇게 많은 댓글이 "최고에요" "맛있어요" 하는걸 보니 "맛있어야만" 할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건, 다음번에 갈비양념을 할라치면, 나는 다시 그 레서피를 찾아 헤매야만 했다. 요리를 할때마다 그 레서피를 들여다 봐야 가능했다. 대충 눈과 손, 그리고 입맛으로 익숙해진 요리는, 다음에도 대충 비스무리하게 흉내를 낼수 있었는데, 인터넷 레서피에 전격 의존한 요리는 다음에 혼자 할수가 없었다. 재료 하나만 빠져도 그 맛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아 패닉이고, 설탕이 1 티스푼이었는지 2 티스푼이었는지 헷갈릴 땐 안달이 났다. 다시금, 내 감각 하나가 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네비게이션 그녀에 이어, 끊임없이 인터넷 레서피의 노예로 살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니. 


이렇게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요즘은 "에라이 망할려면 망해라" 하는 심정으로 모험을 즐긴다. 대충 들어가는 재료와 굵직 굵직한 순서정도를 눈으로 훑은 다음에, 양념 하나씩 넣으면서 맛을 보고, 간을 보고, 그렇게 음식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현재 성공확률은 반반정도? 그래도 백년대계로 이렇게 시작하면, 나중엔 혼자 넣을수 있는 "갖은 양념"이 많은 질 것이고, "적당히 말캉하게" 나물을 삶아 내는 "감각"이 돌아올 것이라고 위로한다. 그러니 이 과정동안 괴로워도 좀 참아주렴, 남편. 


운전대도 새로운 마음으로 잡는다. 시간약속에 딱 맞춰야 하는 일이야 제외하고라도,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장소를 갈때에는, 인터넷에서 지도를 크게 해서 보고, 아 저 호수의 남쪽 끝에서 더 동쪽으로 가면 되는구나, 이렇게 보고 길을 찾기 시작했다. 이렇게 운전을 하면, 가는 길가에 모퉁이 있는 작은 antique shop도 보이고, 새로 생긴 책방도 보인다, 재미있는 이름의 길들도 하나씩 꼽아가며 갈수 있고, 호수 모양도 가늠하면서 길을 따라 운전할 여유도 생긴다. 그리고 물론, 다음에 그곳에 또 간다고 해도 "어 이쯤 어딘데", "저 주유소를 끼고 분명히 오른쪽으로 돌았는데" 하며 길을 찾아가는 "감각"이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 믿는다. 


가끔씩은, 우리는 너무 친절한 그들과 쿨하게 인사를 고하고, 스스로의 감각을 믿어볼 필요가 있다. 한두번 길을 헤매고, 맵고 짠 나물무침을 만들다 보면, 내 감각이 자리를 찾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생각보다 내 감각이 꽤나 쓸만하다는 걸 어느순간 발견하게 되면, 아마 생각지도 못한 희열을 얻게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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