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살며 쓰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이제이 Mar 12. 2016

마지막

벌써 이십년도 더 된일이지만, 나는 할머님의 임종을 기억한다. 몸이 아프셨지만 정신은 또렷하게, 장성한 자식과 손주들을 앞에 두고 또박또박 유언을 남기셨다. 육체적인 병을 안고 계셨지만, 정신은 맑으셨던 탓이다. 그렇기에 본인의 마지막도 스스로 준비했고, 당신을 떠나보낼 가족들도 위로하셨다. 평소에 감정을 드러내시길 그렇게도 쑥쓰러워 하시던 분이셨지만, 그 마지막에는 그간 하지 못했던 사랑과 미안함, 고마움을 표현하셨다. 그리고 할머니 가까이에는 백년해로 하셨지만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는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그래서 참 오래된 일이지만 그날을 떠올리면,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시며 눈물을 흘리시던 할아버지가 모습도 떠오른다. 그날은 참 슬펐지만, 허무하거나 허탈하진 않았다.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다 하신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눈물과 함께 편안히 잠드셨을거라 생각했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요즘 주변에는 많은 어르신들이 육체의 병에 앞서 정신의 병을 안고 계신건 사실인것 같다. 여러가지 방식으로 오는 치매, 혹은 알츠하이머라는 병은, 살아 계신동안에도 힘겹지만, 더 가슴아픈건 사랑했던 이가 떠나는 마지막도 기억하지 못하고, 떠다는 이 본인의 마지막도 정리하지 못한다는 일이다. 내 시 할머님께서도 몇년째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신다. 그래서 80년간 함께 하셨던 할아버지가 어느날 아침에 돌아가셨는데도 알지 못하셨다.


얼마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입관식 관련 신문기사를 보다가, 부인인 손명순여사가 관속에 누워계신 고인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서 자세히 바라보고 있는 사진을 보았다. 70년 가까이 함께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가다가 떠나는 남편의 마지막 얼굴을 바라보는 손 여사의 눈빛은, 슬픔으로 얼룩져 있긴 했지만 아이의 그것처럼 유난히 반짝였다고 느꼈다. 주름 하나 놓칠세라 백발 한올을 놓칠세라 뚤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진을 오랫동안 보고 있던 나는 문득 한가지 바램이 생겼다.


나와 함께 평생을 살았던 사람의 마지막 얼굴을 온전히 기억하고 싶다는 바램.

내가 먼저 떠나든 그가 먼저 떠나든,

또렷한 정신으로 마지막 눈빛, 콧망울, 입술, 표정, 숨소리, 하나하나 기억하고 또 기억하고 싶다는 바램.

조금은 떨려 쉰 소리가 나겠지만, 잘 가라고 잘 있으라고 얘기하고 싶다는 바램.


내맘대로 할수 있는일이 아닌걸 잘 알기 때문에, 이순간 더더욱 절실하게 바라는 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