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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Jun 01. 2016

내가 엄마고 엄마는 나야

요즘 네살인 큰애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바로 엄마놀이. 물론, 그 놀이의 주인공인 엄마는 항상 본인이다. 

자기가 ‘엄마’ 역할을 선점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다른 역할을 떠넘긴다. 


“내가 엄마고 엄마가 나야, 알았지?” 


이렇게 얼떨결에 결정된 역할 놀이에 나는 순식간에 그애의 딸이 된다. 

그러면 이 녀석 천역덕스럽게 나를 보고 자기 이름을 부른다. 


난 딸애가 엄마 역할을 할때마다 조금 긴장된다. 


그애가 흉내내는 엄마 모습은 아마도 혹은 분명히 내 모습일 가능성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oo 야~” 라고 부르는 목소리 톤이나, 내가 부탁할때 “~좀 해줄래?” 라고 하는 말투를 기가막히게 따라 한다. 


어쩔때는, 아주 앙칼진 목소리로 “엄마가 그러지 말랬지? 자꾸 이러면 혼난다” 하면서 혼쭐을 낸다.
그러면 일부러 딸애가 나한테 그러듯이 주절주절 변명을 해본다. 

그래도 어림없다. 아마 그애가 바라보는 엄마는 가끔은 무서운, 융통성 없는 엄마인것 같다.


엄마놀이의 최대 방해꾼, 둘째가 난동을 피우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큰애를 향해 “엄마, 나 애기 때문에 귀찮아 죽겠어요” 라며 일부러 한번 떠본다. 

그랬더니, “얘는 베이비니까 그렇지, 너는 언니잖아” 라면서 내 대답을 토시하나 안틀리게 따라 말한다. 

막상 그 대답을 들으니, 위로가 되기는 커녕 섭섭하다. 딸애도 아마 순간순간 나에게 많이 서운했겠지.


엄마놀이는 대개 끝이 없다. 저녁도 해야하고 둘째 기저귀도 갈아야 하는데, 

내가 놀이에서 빠져나와 현실세계로 잠시 돌아가 “엄마 기저귀좀 갖다줄래?” 하면, 

이녀석 딴청을 피우면서 “내가 엄만데..” 한다. 

결국 이런 실랑이를 몇차례 더 하다가, 내가 “나 이제 안할꺼야, 엄마놀이 그만해!” 하면, 

엄마놀이는 일방적으로 파국을 맞곤 한다. 


그러나, 엄마놀이는 꽤나 괜찮은 놀이다. 


딸애를 통해 내 모습을 거울처럼 들여다 볼수도 있고, 

은연중에 엄마나 아빠나 동생을 향한 그애의 본심도 엿볼수 있다. 

부끄럽고 미안한 적이 많지만, 나를 돌아볼 좋은 기회를 주는것 같기도 하다. 


요새 눈만 뜨면, 하루에도 몇번씩 “이제 내가 엄마고, 엄마가 나야, 알았지?” 라고 말하는 이녀석, 

혹시 엄마노릇 잘하라고 잔꾀부리는건 아니겠지. ㅎㅎ


애들 덕분에 한걸음씩 어른에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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