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잠들때 까지 옆에 누워 있어주면 안돼?"
"난 엄마가 나 잘때 옆에 있어주는게 정말 좋아."
"그런데 정말 바쁘면, 그럼 그냥 자장가 다섯개만 불러주고 나가도 돼."
"난 괜찮아, 정말."
유난히 잠이 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아이가 어둠속에서 가만히 속삭였다. 14개월에 젖을 뗀 후부터는 늘 내 잠옷 소매를 손가락으로 만지작 거리면서 잠이 들었다. 지금은 훨씬 나아졌지만, 한두살 무렵엔 삼십분은 기본이고, 한시간 혹은 그 이상도 잠을 못드는 적이 많았다. 일단 잠이 들면, 열시간에서 열두시간까지 깨지 않고 잘 자는데, 유난히 잠이 드는 시간을 힘들어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학교에 다닐때에는, 아이를 재우러 침대에 같이 누워서도 머리로는 늘 다른 생각이었다. 아이를 토닥거리면서 자라 자라 잘 자라 하지만, 그건 나를 위한 간절한 소망이기도 했다. 아이가 빨리 잠들어 줘야 일어나서 내가 할일을 어서 시작할수 있으니까. 아이를 재우고 내려오면 이것부터 하고, 그다음엔 그거, 그 다음엔 다음거 .. 이렇게 일의 순서를 머릿속으로 만들었다. 그러다 보면 잠이 늦게 드는 아이가 어쩔때는 원망스럽다. 빨리 자라고 엄하게 얘기 하기도 하고, 기다리는 그 시간이 너무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다. 더 솔직하게는, 화도 났고, 큰 소리를 낸 적도 있었지 싶다.
생각해보면, 잠이 빨리 안드는 사람이 제일 힘들텐데, 그런 애한테 “너 빨리 안자면 엄마 그냥 나갈꺼야” “자꾸 안자면 노래 다섯개만 부르고 나간다” 라고 엄포를 놓는 매정한 엄마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바싹바싹 애가 탔다. 십분이라도 빨리 시작해야, 십분이라도 일을 빨리 마칠텐데. 마치 늦어지는 일이, 공부가, 일정이 모든게 아이가 늦게 잠드는 탓인양 안절부절 했다.
언젠가 부터 잠드는 시간이 좀 늘어진다 싶으면, 아이가 묻는다. “엄마 오늘 바빠?”
복잡한 마음으로 가득한 엄마를 옆에 두고 잠을 청하는 아이는 어쩌면 이미 느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몸은 옆에 있지만, 머리는 다른곳에 가 있다고, 그런 엄마를 더 있어달라고 하면 안되는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못된 엄마는 때때로 “응 오늘 바빠, 노래 다섯개만 하고 나갈께” 라고 말하고, 잠들지 않은, 그래서 내가 있어주길 바라는 아이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방문을 닫고 나온적도 있었다. 착한 아이는 그렇게 캄캄한 밤에 혼자 잠드는 연습을 해왔다.
오늘, 잠들때까지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 안 바빠, 노래 다섯개 하고도 잠들지 않으면, 너 잠들때까지 옆에 있어줄께, 잠들고 나면 나갈께”
캄캄해서 아이의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어둠속에서도 입이 씩 올라가며 좋아하는 얼굴이 선했다.
어쩌면 앞으로 더 자주, 아니면 매일매일, 잠들때까지 있어주지 못할 것이 분명한, 그런 일을 오늘 내려놓았다. 그 일로 지난 일주일 동안 많이 고민했다. 내가 해낼수 있는 일의 양과, 나에게 주어진 정해진 시간, 나의 책임, 나의 커리어, 이 모든것을 한꺼번에 두고 생각했다. 사실, 이런 고민은 지난 일주일의 고민이 아니라 지난 몇년간의 고민이기도 했지만, 당장 어떤 선택을 해야할 시점에서 고민에 선행되는 조건들의 우선순위는 뒤죽박죽 선후를 달리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꽤 객관적인 질의응답과 계산을 거친후에, 새로운 일의 제안을 거절했다.
분명히 가족이나 아이들 때문에 내린 결정이 아니라, 나의 능력과 시간을 기반으로 한 결정이었으니, 고민도 또 결정도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었다. 세월에 좀 비겁해졌다면 그 말이 맞다. 나를 몰아세워 힘들어 했던 경험이나 일에 과부하가 걸려 늘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순간에 직면해왔던 예전을 떠올리며, 이제는 나를 좀 위하는 결정을 하고 싶었다고 자위를 한다면 또 그말도 맞다. 어쨋든, 지난 일주일 내 안을 몰아쳤던 고민들을 그 기회를 잡지 않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결정을 내렸지만 찝찝하고 아쉬운 마음까지 문을 닫아 버리듯 닫을 수는 없었다. 잘한 결정인지, 내 미래를 위해 치명적인 결정은 아니었는지, 이로 인해 파생될지 모르는 불리한 일들을 뭐가 있을지, 대체 언제쯤이면 그 기회를 편하게 잡을수 있을지, 그 시기가 오지 않는다면 그로서 괜찮은지, 그런 생각들로 뒤숭숭했다.
그런데 오늘, 아이에게 잠들때까지 있어줄수 있다고, 걱정하지 말고 자라고 얘기하면서, 이걸로 됬다고 생각했다. 이런말을 아이에게 해줄수 있어서, 그런 상황이라서, 지금 엄마가 그렇게 바쁘지 않아서, 그래서 좋았다. 그 애를 어둠 속에서나마 씽긋 웃고, 편안하게 내 옷소매를 다시 붙들고 잠을 청하게 만들수 있어서, 그래서 감사했다. 내 결정이 나에게 꽤 많은 것들을 놓치게 하고, 많은 기회를 사라지게 할수 있겠지만, 대신 생각치도 못했던 무언가를 얻기도 한 밤이었다.
그래서 일까, 그날 밤 아이를 토닥토닥 재우며 자장가를 부르던 나는, 아이 옆에서 곤하게 함께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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