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진부하지만 우리 부부는 다소 절실하게 어떻게 하면 좋은 부부가 될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가만히 있다고 엄마가 되는것이 아니듯이, 좋은 부모가 되는 것도 손놓고 있어도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각자 문제라고 여기는 것들이 무엇인지 어떤 방향을 꿈꾸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실천 방안들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남들이 들으면 좀 우습겠지만 오랫동안 심각하게 나누었다.
자칫 지금 좋은 부모가 아니라는 것이 서로의 문제를 지적하다가 끝날것 같아서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었으나 우리는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좋은 제안에는 동의하는 등 예전보다는 많이 성숙한 부모가 된 것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과의 관계,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부모, 라는 것에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으면, 어느순간엔 늦어버리는게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부모라는게 참 무거운 지게이다. 아직 나 하나도 제대로 한 인간으로 성인으로 바르게 살아가고 있는게 맞는지 수많은 의심과 고민이 드는데 누군가의 그것도 두 아이의 부모라니, 두 아이의 미래를 함께 촛불을 들고 나갈 엄마아빠라니, 두 아이가 힘들어할때 길을 함께 찾아보고 두 아이가 좌절할때 기도해줘야 하는 길잡이라니.
아이가 두살이 되면 두살이라 어렵고, 다섯살이 되면 다섯살이라 또 어렵다. 큰 아이는 처음이니까 어렵고, 둘째는 큰애와 함께 키우려니 또 어렵다. 나이를 한살씩 먹어가면 조금 쉬어지겠거니 했지만, 어려움의 종류가 달라지는 것 뿐이지 그 무게는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기는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아이들에게 얼마나 집중하는지, 두 아이들에게 공평한 관심을 주는지, 소홀한 점은 없는지, 미처 알아주지 못한 감정은 없었는지. 자칫 잘못하면 서로의 문제를 지적하다가 대화를 마칠 것 같아 조심스러운 마음도 들었으나, 서로의 눈으로 바라본 부모의 모습은 꽤 정확하고 객관적이었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손 놓고 있어도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때 맞춰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것만큼 단순한 일도 아니었다. 어느덧 부모와 아이라는 관계보다도, 사람과 사람이라는 관계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서로 감정을 존중하고 다치지 않게, 의지하고 믿음을 주는 관계가 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모양과 색이 가지각색인 도토리만큼이나 두 아이들은 같은 듯 달랐다.
아이들을 두고 많은 고민과 의논, 좋은 길잡이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 그리고 순간순간 맛보는 좌절감, 아마 이 모든것들이 돌고 도는 가운데, 아이들이 크고, 우리도 크겠지.
복잡한 표정으로 잠든 아이들 이불을 챙겨주고 나오는 남편의 모습, 나도 딱 저런 모습이겠지 싶어서 오늘은 좀 짠했다. 그래도 다행인건, 다섯살이면 다섯살이라 여덟살이면 여덟살이라 소중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열살이 되고, 스무살이 되어도, 아마 우린 아이들이 그 나이를 지나고 있기 때문에 그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겠지.
그래도 다행인건, 그이와 내가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절실하게 갖고 그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 키우면서 자칫 잘못하면 서로에게 날카로워지고 상처를 주기 쉬운데, 서로 그에 대한 이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