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이 중요한 드라마 같은건 잘 안보는 편이지만, 짬이 날때 챙겨보는 한국 티비방송이 있다면 주로 육아프로그램이다. "아이가 달라졌어요" 같은. 그런 프로그램을 보면 볼수록, 그간 아이를 키우면서 얼마나 시행착오를 많이 했는지, 육아멘토가 강조하는 절대 하면 안되는 행동과 말은 또 왜이렇게 많이 한건지 씁쓸하기도 하지만, 또 현실로 돌아오면 맘처럼 되지 않는게 육아인것 같다.
지금은 개과천선했으나 우리 큰딸은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아이었다.
첫애이고 해서 그냥 애를 낳고 키우는 것이 다 힘든가보다 생각했었지만, 둘째를 낳고 키워보니 큰애가 유독 예민한 아이였다는걸 알게되었다. 수유할때부터, 낮잠자는것 부터 뭐든지 한번에 오케이인적이 없었고, 말귀를 알아듣고 의사표현을 하면서는 자기주장이 강해서 지고는 못견뎠다. 써 놓고 보니 그 나이에 그렇지 않은 애들이 어디있는가 싶기도 한데, 이제야 좀 여유가 생겨 웃으며 얘기하지만 당시에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쳤었다.
하루종일 큰아이와 씨름하고, 혼내고, 울고, 뒤돌아서면 또 말안듣고.. 그런 일상 사이사이로 둘째가 기고 서고 일어서서 걷고 했으니, 하루를 마치면 혼이 쏙 빠지는 기분이었는데 그 스트레스로 귀가 하루 종일 멍멍한 증상까지 생겼었다. 이곳에 식구라고는 남편과 단 둘이었고 어디 도움을 요청할 곳이라고는 없었으니 지쳐가는게 당연했다. 너무 예쁘고 사랑하는 아이들이지만, 단 하루만 아니 몇시간만 좀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곤했었다.
그러던 어느해 겨울, 따뜻한 나라의 바닷가로 여행을 갔다. 두살 다섯살 애들 둘을 데리고 가는 여행은 그야말로 이것이 여행인지 고행인지 모를정도였고, 집에서 부리던 말썽이 여행갔다고 해서 좋아질리가 없었다. 집이 아니니 집에서보다 두배는 더 신경을 쓰고 아이들을 챙겼더니 호텔에 도착해서는 온 몸에 기운이 다 빠졌었다.
둘째는 낮잠이 들고 남편은 잠깐 운동을 간 사이에, 큰 아이와 함께 바다가 보이는 베란다에 나와 앉았다. 둘째랑 서로 같은 장난감을 갖고 놀겠다고 싸우다가 한소리들은 큰 아이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큰애를 위로해줄 만큼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기껏 그 짐을 다 싸서 여행을 와서, 여기서도 똑같이 싸우고 혼내고 울고 하는걸 보자니 내가 지금 여기에 왜 있나 싶기도 했다.
바다를 말없이 서로 바라보다가, 큰 애에게 말을 건냈다.
아까 동생이랑 왜 싸웠냐고 했더니, 동생이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고 해서 슬펐다고 말했다. 그래 그랬겠다. 그럴때는 어떻게 해왔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자기가 양보를 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원래 빅시스터는 동생들에게 양보를 해야 하는거라고 얘기했다. 그래? 그런 거구나. 왜 그런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아마, 동생은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도와줘야되는거라고 대답했다. 말썽만 부리던 입에서 생각보다 어른스러운 대답이 나와서, 그것도 진지하게 말하는 큰애를 보니 지친 얼굴사이로 싱긋 웃음이 났다. 대단하네 우리딸, 그런것도 다 알고.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닥터, 폴리스, 택시 드라이버 중에서 뭐가 되고 싶냐고. 글쎄 잘 모르겠는데. 자기는 선생님이 되고 싶단다. 선생님? 왜 되고 싶어? 선생님은 모든걸 다 가르쳐 줄수 있고 항상 화를 안내고 나이스하니까. 아, 그렇구나. 동생이랑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고 선생님이 알려주셨단다. 아이는 킨더가든에 입학했는데 아마 선생님이 너무 좋으신모양이다.
엄마는 뭐가 되고 싶냐고 재차 묻는다.
이런 저런 대답들을 떠올리면서 무슨 얘길 할까 생각중이었는데, 펠리컨처럼 큰 새 한마리가 날아오더니 물고기 사냥을 했다. 정말 커다란 날개짓을 하면서 재빨리 바다로 돌진해 물고기를 잡아 올렸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 장면 끝에, 엄마는 새가 되고 싶어. 했다. 갑작스레 내 놓은 대답이기는 했지만, 너희들에게서 하루만 한시간만 떨어져서 훨훨 자유롭게 다니고 싶다는 속내를 진하게 드러낸 대답이었다. 아이는 몰랐겠지만 말이다.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엄마는 새가 되서 맘대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싶어. 추운나라에 가서 눈도 보고, 따뜻한 곳에 와서 수영도 하고, 한국에도 가서 할머니도 만나고 얼마나 좋아. 아이는 눈을 새에 고정한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엄마가 저 새처럼 훨훨 날아다니겠네? 응, 진짜 멋지겠지. 그치?
너는 어떤 동물이 되고 싶어? 아이는 토끼 아니면 얼룩말을 좋아한다고 할게 분명했다. 늘 좋아하는 동물을 물으면 대답하는 일이순위 동물들이었다. 대답에 뜸을 들이던 아이가,
나도 새, 새가 될래
라고 대답했다. 의외였다. 새를 좋아한다고 한적은 내 기억에 없었으니까. 그래? 너도 새가 되고 싶어? 왜 훨훨 날아다닐수 있어서?
아니, 엄마가 새가 되면, 나는 엄마 옆에서 언제나 같이 날아다닐려고,
그래서 새가 되야돼.
아. 이게 아이의 정답이었다.
십오분전에도 엄마에게 꾸지람을 듣고 기분이 상했을 아이지만, 그래도 새가 되고 싶다는 엄마 옆에서 같이 따라 날아다니고 싶은, 엄마의 사랑과 그늘이 늘 필요한 다섯살 아이. 난, 그런 아이를 옆에 두고, 잠시 그 애들을 두고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훨훨 날아가고 싶다는 철없는 투정이나 한 셈이다. 다섯살 아이보다도 훨씬 못한 답을 한거다.
이 천진난만한 다섯살은 그후 1년동안 계속 말을 안들었지만, 그때마다 난 그날의 대화를 떠올렸다. 꾸중을 하려다가, 동생편을 들어주려다가도 내 옆에서 서툰날개짓을 하면서 내 옆에 꼭 붙어있는 어린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새처럼 한번더 안아주고 한번더 얼굴을 맞대고 쓰다듬어줬다.
큰애는 이제 곧 아홉살이 된다. 가끔 오래전에 써 놓았던 메모들을 들춰보다가 아이의 문제행동, 어려움, 예민함, 반항등으로 힘들어했던 나를 발견하고는 아, 얘가 그랬었지 깨닫지만, 너무 옛날 얘기처럼 어렴풋하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개천에서 용난것 처럼 정말 말잘듣는다. 가끔 아이와 장난을 치면서 너 진짜 옛날에 너무 말안들었다 하면,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내가 그랬어? 한다.
언제부터 점점 수월한 아이로 변했는지 모르겠다. 한창 떼쓰는 시기가 지나서 그런걸수도 있고, 아이 말마따나 이제 말을 제대로 할수 있는 어린 동생덕분에 싸울일이 줄어서 일수도 있고, 아니면 학교와 사회생활의 긍정적 효과일수도 있겠다. 여전히 예민한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을 아이의 기질로 인정하고 나니 복잡했던 실타래가 조금 풀리는 기분도 한몫했다. 그냥 좀 커서 철이 든것일수도 있고, 사춘기에 또 어떤 변화를 할지 모르니 섣불리 안심할일은 아니라는 육아선배들 말도 귀담아 듣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에겐 그 바닷가를 바라보던 다섯살 아이의 야무진 입에서 나오던 대답이 늘 떠오른다. 아마도 그때부터, 그전까지는 늘 말썽꾸러기로 바라보던 내 마음이 새털처럼 포근하고 가벼워졌는지 모른다. 아마 나중엔 내 옆에서 날고 싶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더라도 난 그때를 떠올리면서 이 아이와 함께 하고 싶다.
커버사진 by frank mckenn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