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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Jan 17. 2020

한 사람을 만났다

우리 다시 만나게 될까요 

한 사람을 만났다.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쓴, 체구가 자그마한 사람이었는데, 부드러운 인상 만큼이나 목소리도 낮고 차분했다. 생각해보면 언젠가 가볍게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나눈적은 있었지만,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시간을 헤아려 보면 한 6년만에야 연락이 다시 닿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제서야 서로의 나이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함께 알고 있다는 것 또한 알았다. 


그래서 일까. 한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즐겁고 편안했다.


누군가를 새로 만난다는 것은 나에게 참 오랜만에 있는 일이다. 

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다보면, 늘 오는 사람이 있고 떠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 종종 새로 만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대개는 학교나 성당에서, 내가 의도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종종 의외의 장소에서 누군가를 새로 만나게 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준비나 예측이 되지 않는 우연한 만남들이다. 물론, 이런 만남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사람과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연락을 먼저 취해야 했다. 누군가를, 그것도 원래 얼굴만 알던 사람을,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이제 와서 한번 보자고 연락을 한다는 것은 꽤 어색했다. 그다지 무거운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렇게 귀찮은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며칠을 두고 망설였다. 

결국 마음을 먹고 만나자는 연락을 해뒀는데, 답장을 기다리기까지 우습지만 좀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만나기로 한 장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다소 떨리기까지 했으니, 나답지 않아 낯설었다. 

내가 최근에, 누군가를 정말 오랜만에 "새로" 만난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소개팅도 아닌데, 남자도 아닌데, 나와 이해관계에 있거나, 나를 평가하는 사람도 아니라, 그저 한번 얼굴 보는 자리인데 말이다.


어쨋든, 한시간 남짓의 시간동안 그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소 긴장이 풀어지고 이야기를 서로 더해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적당한 대화를 나누었다. 다음에 또 보자는 얘길 남기며 인사를 나누고 서로 자리를 떠났다. 한번 보고, 한 시간 남짓의 대화를 하고, 그 사람의 지나온 삶을 알수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알수는 없다. 물론, 한번 잠깐 만났어도, 나와 앞으로 좋은 인연이 될것 같은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감정에 무작정 들뜨는 나이는 예전에 지났음을 몸으로 느낀다. 그럼에도 누군가와 대화를 내누고 서로의 정돈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나에게 언제나 영감을 주는 일이며, 나를 다소 살아있다고 느끼는 일임은 분명하다. 


좋았던 한 시간. 


나와 앞으로 인연이 더 닿지 않는다 해도, 오늘 나누었던 한시간 남짓의 대화 만으로 충분히 좋았기에, 그래서 좋았다. 앞으로 정말 가까운 사람이 될것 같다느니, 정말 좋은 사람이라느니, 그 만큼의 앞을 내다보지 않아도 좋았기에, 그래서 좋았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그에 크게 매달리거나 관계 정립에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그래서 좋았다


좋으면 좋은것만 보려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보지 않을수 있는 마음, 사람에 대한 마음이 제법 단순해졌다. 그 사람들 만나고 와서 좋았던건, 어쩌면 요즘 내가 가진 사람에 대한 혹은 관계에 대한 생각이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수도 있다. 

때로는, 아닌것 같은 인연을 끌고 나가느라 머리가 복잡하기도 했고, 내가 쏟는 마음만큼 돌아오지 않는것 같아 버둥대기도 했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내 의도와는 달리 해석되어 오해를 만들기도 했고, 상처를 준적은 왜 없었을까. 그뿐이 아니다. 나와 잘 맞다고 생각하고 나면, 꼭 나와는 크게 다른 면을 발견해서 놀란적도 많았고, 사이에 있는 다른 사람들 덕분에, 좁히기 어려운 거리로 물러서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늘 사람에 애정이 많은 이었음을 고백한다. 


허나 이제, 

구태여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이 매정하고 이기적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마음이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건성으로 만나는 마음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저 만났던 시간 만으로, 그 대화들 만으로, 오고가던 눈빛과, 이야기 끝마다 웃던 눈과 미소 만으로, 서로 앞에두고 만지작 거렸던 따뜻한 커피잔 만으로, 거리감을 주려는게 아니라 예의를 지키는 태도 만으로, 그것 만으로 따스하고 풍성한 기분을 느낄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음에 볼 사람인지 보지 않게될 사람인지에 대한 판단이야, 늘 오판의 가능성을 반은 가지고 간다. 

여러번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고 해도, 그 오판의 가능성을 줄어들수 없다는 것도 세월을 통해 배웠다. 

관계는 나로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한쪽에서 열번을 고민해도 그 고민의 넓이와 깊이는 그다지 해결되지 않는 다는것 또한 인정한다. 

그저 좋으면 좋았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는것. 아마 그 간의 삶의 경험을 통해 잘 배워온 탓이려니 생각한다. 


내가 나이를 조금 (혹은 많이) 먹었다는 것.

이럴때는 그 사실이 이다지도 든든하고 날 안심시킨다. 


2020년 1월 17일 


<Photo by Mike Kenneall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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