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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Sep 01. 2020

어떤 안부

“살좀쪄라 가스나야”


스무번쯤, 아니 곱하기 2를 해서 마흔번은 족히 들었던 말이었다. 

내 얼굴만 보면, 아니 얼굴을 보지않고 전화나 이메일로도 늘 나에게 “살”좀 찌라고 호통쳤다. 

살찌는 사람도 마음먹고 찌는 것이 아니겠지만, 

살이 안찌는 사람도 마음먹고 일부러 안찌는건 아니라는걸 모르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아니 이십년 이상을 친구로 지낸 사이니 나라는 아이는 늘 이모양이라는걸 모를리가 없다. 

저녁을 한다고 주방에서 서성 거리다가 호들갑스러운 알림과 함께 도착한 메세지를 슬쩍 보고는, 

입은 살짝 웃음을 머금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이십년도 전에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다가, 

함께 동해바다로 어디로 여행을 하다가, 

커피 한잔 혹은 술잔을 기울이면서 수없이 했던 그 말은, 

저녁을 하는 무방비상태의 나에게 바로 와서 꽂혔다.  

까랑까랑한 목소리에, 

이럴때만 나오는 사투리 억양까지 함께 배달되어 온것 같았다. 


“살좀쪄라 가스나야”


그 짧은 여덟글자 속에서, 

나의 몸건강을 걱정하고, 

나의 마음건강을 걱정하고, 

내 가족을 걱정하고 그리고 그리워하는 마음까지 

모두 한꺼번에 느껴져서 그랬던것 같다. 


당장 답장을 하지 못할만큼 바쁜건 아니었지만, 그냥 하지 않았다. 

전화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창문 밖을 한 이 삼분 바라보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였더니 촉촉했던 눈가가 다 말랐다. 

나는 다시 금세 단단해져서, 소매를 걷어 올리고 저녁준비를 계속했다. 

아마, 난 다시 또 당분간은 살이 찌지는 않을것 같고, 

넌 나에게 또 말할거고, 

그리고 난 그말을 아껴 들으며 고마워하겠지. 

그저 그 정도의 안부에, 걱정에, 그리움에 조금 굶주려 있었던것 같다. 

그래서 그 수십번 들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았던 그 말이 이렇게 마음을 크게 휘저었던것일까. 


그리고 사실, “살좀 쪄라 가스나야” 앞에, 

“자려고 누었는데 갑자기 네 생각이 나더라”가 있어서, 

그래서 좀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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