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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Sep 02. 2020

하루를 잘 살아가기

하루를 잘 살아가기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으름에 혹은 피로감에 버려진 하루들이 쌓여서 

걸어나오지 못할 깊은 늪을 만들까봐 조바심을 내면 낼 수록, 

나의 하루는 그냥 사라져 없어져버리는 기분이었다. 


온종일 집에 있는다지만, 의자에 몸을 기대고 큰숨을 한번 쉬는 시간 조차 귀했다. 

내 손에 미처 잡히지도 않는 하루가 지나갔다. 

그 하루 내내 나는 무엇으로 분주했을까.  

빵을 잘라 토스터에 넣거나, 커피를 만들거나, 

다 비워낸 자리를 행주로 닦아 내거나, 빨래를 개어 넣거나, 

그도 아니면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대답을 해주면서 화분에 물을 주고, 

찻물이 끓는 동안 설거지를 하기도 했다. 


하루는 시작되고, 담아내야 할 것을 딱 마치 담아 이어졌고 또 끝이 났다. 

하루를, 매일을 살아내지만, 

나는 늘 무언가를 놓치고 만것 기분에 휩싸였다. 



읽는 책도 나와 비슷했다. 


이곳 저곳에 읽던 책들이 늘어져 있다. 

예전의 나는 책 한권을 들면 그 책을 다 끝낸 다음에야 다음 책으로 넘어가곤 했는데, 

한 곳에서 오랫동안 무언가에 집중할 시간을 만들기 어려워진 후 부터였을까, 

손에 닿는 곳에 여기저기 책을 두고 그 책들을 섞어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길이 닿는 여러 자리에 책을 두고, 책 표지라도 곁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한장도 잃지 못하게 될것을 불안해 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다고 시간에 맞춰 꼭 읽어야 할 책이 있는것도 아니었으면서, 

그저 괜한 조바심이었다. 


침대 머리맡 가까이 있는 책은 가장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주방 한쪽에 모로 세워놓은 얇은 수필집 같은 것들은 잘 읽혔다. 

저녁은 뭐할까 생각하다가, 설거지를 막 끝내고 물기젖은 손을 털어내며, 

그렇지 않으면 장봐온 물건들을 냉장고에 채워넣다가, 

멍하니 책을 꺼내어 한두 페이지 읽곤했다.


이 책을 읽다가 다음 책을 읽는다 해도 예전만큼 정신없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아마 예전만큼 오롯이 집중하며 에너지를 쏟아 읽지 않기 때문인것 같다. 

예전같으면 메모를 해두고 꺼내어 보고 아껴뒀던 인상적인 문장들은, 

채 5분도 안되어 간식을 달라고 손을 잡아 끄는 아이 덕분에 잊혀졌고,

다음에 꼭 다시 펼쳐보겠다고 접어둔 책장은 결국 다시는 찾지 못했다. 

갑자기 꺼내든 책들은 앞뒤 맥락이 기억 나지 않아 읽었던 페이지를 되돌아가서 다시 읽는데, 

적어도 두세번은 읽었을법한 페이지임에도 새로 읽은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루의 나에게서 놓치고 만 것을 책 속에서라도 붙들고 싶었던 것일까.

무언가 하고 있는 흉내를 내고 싶었던 것일까. 

그게 무슨 이유였든, 내가 놓쳐버린건 나에게서든 책에서든 그저 사라져버렸다. 


그렇더라도


내일은 또 하루가 어김없이 시작될테고 

공허하든 가득찼든 난 또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이어가고 끝낼것이다.

열심, 최선 이라는 단어가 주는 막막함을 걸어온 길에서 제법 느꼈음에도, 

그저 내 하루에 좀더 정성을 들여, 잘 살아내고 싶다는 마음이 여직 남아있으니

그래도 다행이라고 나를 다독였다. 


나는 또 하루를 잘 살아보려고 할테고,

그게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라는걸 그 하루의 끝에서 알게 될테지만 말이다. 





덧. Photo bt Debby Hud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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