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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Sep 03. 2020

잘한 "결정"  

큰 결정을 내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서로를 다잡아 주는 일이다. 

결정은 어떤 식으로든 하나로 날수 밖에 없고, 

선택하지 않은 대안은 늘 우리의 뒤통수를 당긴다. 

그것이 더 좋을지 이것이 더 좋을지는, 

애석하지만 아무리 지금 생각해도 알수가 없다. 

우리는 하나의 결정을 하고나면, 

그 선택의 길에서 걸어나가서 어떤 쪽으로든 방향을 틀어야 하니까. 


그 선택을 오롯이 혼자 한다고 생각하면 외롭다. 

외로움은 의외로 그렇게 나쁜것만은 아닌데, 

선택을 해야할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 선택이 나중에 좋게되든 후회스럽든, 

그 결정을 내린 사람도 나이고, 

그 결정에 의해 영향을 받을 사람도 오직 나이기 때문이다. 


둘이 함께 해야하는 선택은 그래서 조금 덜 외롭지만, 사실 더 어렵다. 

그 결정으로 인해서 책임을 서로 나누어야 하고 

결정에 따른 영향도 함께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정확히 같은 생각을 할수는 없으니, 

대개 조금은 양보하고 조금은 이해하고 또 조금은 고집을 부려서

하나의 선택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많이 미안해질수도, 

상대방을 보며 죄책감을 느낄수도,

어쩌면 원망을 할수도 있다. 


둘이 하는 결정은 그래서 더 어렵다. 

부부와 같이 서로를 아끼는 사이에는 더 그렇다. 

서로를 아끼는 사이라고 늘 완벽히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늘 완벽히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서로를 아끼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내 생각을 좀 더 고집해서 내가 바라는 결정을 하게 되어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것이, 

상대가 느끼게 될 씁쓸함을 모른척 할수 없기때문에 그렇다. 

반대로, 상대방의 목소리가 더 커진 결정이 난다면, 

나에게 남는 허탈함은 결국 나의 몫이다. 

그 허탈함을 보상받거나 위로받으려 했다가는 상실감만 커질 뿐이니까. 


해서, 우리는 서로를 다잡아 주는 일을 계속 해야 한다. 

서로를 아끼는 고마운 마음도 어루만져 주고, 

나에게 내는 욕심도 이해해주고,

그대가 내는 욕심도 바라봐 줘야한다. 

두 사람이 완전히 동의하는 선택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 선택에 남는 책임을 서로 나누어주는 것은 가능하니까. 

당신이 주저할 땐, 내가 앞서고, 내가 어려워할땐, 당신이 앞서고, 

이렇게 서로 끌어주고 당겨주면서 어찌되었든 한걸음 앞으로 나서야 한다.  


이만큼 살다보니, 

내 인생을 어마어마하게 뒤집은 잘한 결정도, 잘못한 결정도 없는것 같다.

아니 사실은 그런 결정들이란 인생에 별로 없는 것일수도 있다. 

그게 어떤 결정이든, 

우린 함께 그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이 “잘한 결정”이 되도록 열심히 살것이며, 

그러다보면 그렇게 걸어온 우리의 시간이 우리가 내린 "좋은 결정"이 되어 있을테니까. 


불안함은 어쩌면 당연하다. 

혼자하는 결정이라 둘이하는 결정이라 그 불안함의 차이가 있는것 같지는 않다. 

불안함이 없는 결정이라면, 

아마도 그 결정에 대한 우리의 진지함이 부족했기 때문일수도 있다. 

불안함과 의심으로 인해, 

우리의 결정과 결정에 따른 준비는 더욱 단단해질테고, 

그렇게 내린 결정은 우리의 결정이기에,

서로를 믿고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다보면,

그럼 우리는 어느새 그 "결정"과 잘 지내고 있을테니까.



#3일차

덧. Photo by Everton Vila on Up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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