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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Sep 11. 2020

용기와 포기

혜민스님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은 오랫동안 읽히지 못한채 책상 한편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많이 유명한 분이시라니 뉴스나 방송에서 몇번 모습을 뵌 적이 있었지만, 

한자리에 앉아서 방송을 본적은 없어서 

정작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어떤 목소리를 가진 분이신지는 기억이 나지도 않았다. 

곱고 부드러운 외모와 차분한 말투, 그리고 공부를 많은 하신 엘리트스님이 사람들에게 해주시는 말씀은, 

“할수 있습니다 여러분,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룰수 있어요, 포기하지 마세요” 같은 

희망의 메세지이겠거니 짐작하며 책장을 만지작 만지작 할뿐 넘길 욕심까지는 내질 않았던것 같다. 


며칠전 우연히 넘긴 첫장에는 아니나 다를까 “용기”라는 시가 소개되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런 종류의 글이 분명했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생각, 최선과 노력을 전하는 메세지, 

우리는 누구나 원하는 바를 이룰수 있다는 꿈과 용기를 주는 그런 글 말이다. 

꿈과 현실의 괴리는 꽤 크며, 

긍정적이기만 한 마인드는 치명적일수도 있으며, 

열심과 노력으로도 극복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다소 시니컬한 생각이 가슴 한켠에 있는 

사상불순한 나에게는 꽤나 탐탁치 않은 글일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소개한 시에서 “용기”는 다른 종류의 “용기”였다. 

못하는걸 못한다고 할수 있는 용기, 

믿었던 것을 내려놓을수 있는 용기, 

해오던 것을 그만둘수 있는 용기 말이다. 


무턱대로 꿈을 이루려면 “용기”를 내고, 

미인을 얻으려면 “용기”를 내고, 

금메달을 따려면 “용기”를 내라는 소리일 것으로 짐작했던 나는, 

그제서야 책으로 몸을 돌려 읽어내려갔고, 

스님의 인생여정을 짧게 써내려간 글에서 몇년 전의 나를 떠올렸다. 

오랫동안 해왔던 일에서 끝내 그렇다할 결실을 맺지 못하면서, 

그 길을 포기할 용기도 내지 못해서 힘들었던 기억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미국으로 박사과정 유학을 떠나왔다. 

“해오던 공부를 계속해서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간단한 나의 목표였으나, 

해오던 공부도 잘 못했고, 학위를 줄 지도교수님은 줄줄이 학교를 떠났고, 

시간을 늘어지고 한국으로 돌아올 길도 점점 멀어졌다. 

수업을 듣고 학점을 받고, 때가 되어 시험을 통과하는 일들은 그럭저럭 해냈지만, 

나의 연구 성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 질거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해내야 할 일들은 많아졌고,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은 앞서 나가서 자존심이 상했다. 

점점 위축되고 일이 진도를 못내는데, 

그건 다 내가 나약해서라고 치부해버리고 더욱 혹독하게 나를 몰아세웠다. 

어느 시점에 와서는, 내가 모든걸 다 망쳐버린 기분이 들어서 힘들었다. 

때로는 내 문제를 자꾸만 주변문제로 돌려서 문제를 피하려했고, 

때로는 내가 제어할수 없는 일까지 내탓으로 돌리면서 나를 괴롭혔다. 

그 와중에 내 안에 깊은 우울이 생겼다는 것은 알아채지도 못했다. 

자주 웃지 않았고, 잘 읽을수 없었으며, 표정을 잃어갔다. 

가족에게 위로받고 싶었지만, 

멀리서 혼자 지내는 딸이 늘 마음에 걸리실 부모님께, 

투정을 부릴만큼 어린 나이는 아니었다. 

점점 뜸하게 연락을 했고, 짧게 목소리를 듣고 말아야 했다. 


착한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용기”를 내라고 했다. 

지금까지 잘해왔으니까 잘할수 있을거라고 말했다. 

다 잘될거라고 등을 토닥여줬다. 

졸업논문을 몇년째 못쓰고 시간을 끌고 있는 나는, 

“용기” 만으로 금세 논문을 쓰고 졸업을 할수는 없었기에 속이 상했다. 

지금까지 잘해온것만으로는, 지금 겪고 있는 슬럼프를 뛰어넘을수 없었다. 

막다른 길에 도착했는데, 

지금까지 고생하면서 걸어온 먼 길때문에 돌아서지도 못하고, 

더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던 어느밤, 꽤 오랜만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묻는 말에 짧게 대답을 했고, 간단한 안부를 묻고 끊으려던 참이었다. 

엄마가 갑자기 

“너무 힘들면, 그만해도 괜찮아. 그러면 네가 제일 속상하겠지만, 

살다보면 그만두고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할때도 있어. 

난 네가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까우니 어떻게라도 끝을 내라고, 

화이팅! 용기를 내라고 강하게 말했으면, 

차라리 내 마음이 편했을것 같았다. 

정 반대의 “용기”를 내라는 엄마의 말에 잠시 할말을 잃었다.


“용기”와 “포기”는 반대말이 아니었다. 

“포기”는 어쩌면 다른 종류의 “용기”였다. 

내 인생의 오랜시간동안 고대해오던 일을 “포기”하는것은, 

어쩌면 남은 오랜 시간을 가치있게 살기 위한 “용기”였고, 

할수 없는 일을 계속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하겠다고 무조건 “용기”를 내는건, 

내가 하고 싶고 할수 있는 일을 찾길 “포기”였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잘 “포기” 했을까?

 

나는 그리고 나서 2년후에 학위를 받고 졸업을 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학위를 마친게 아니라 "포기"를 하고 학위를 마쳤다. 

그 학위에 실었던 그동안 나의 열정과 기대를 깨.끗.히. “포기”한 결과였다. 

난 할수 있는 것만, 졸업 요건을 딱 맞추어 졸업을 했고, 

좋은 연구자가 되고싶던 꿈도 훌륭한 선생님 되고 싶던 꿈도 “포기”했다. 

기껏 받은 학위를 써먹을데가 없는 것은 아쉬웠으나, 

그 학위를 써먹겠다고 "용기" 혹은 "포기"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났더니, 나는 그제서야 읽을수도 쓸수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 “용기”와 “포기”는, 서로의 옷을 바꿔가며 다른 듯 같은 교훈을 주어 나를 다잡았다. 

“용기”가 필요할 때만 각오를 다지고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것은 아니다. 

“포기”가 필요할 때 어쩌면 더욱더 머리를 맑게 하고 마음을 다잡아야 할지도 모른다



덕분에, 혜민스님 책은 반나절동안 다 읽어버렸다. 





덧. Photo by Marl Cleveng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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