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의 외출
# 큰아이 22개월
매주 토요일 오전 시간에 아이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시간을 보내기로 한지 첫 날이다. 셋이서 함께 다니면 늘 엄마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엄마는 늘 지치고 아빠는 서운할 때가 많다. 엄마와 아이의 본능적인 유대라는 것이 가져오는 그 무언가 일수도 있겠지만, 전적으로 아빠만을 의지한 채 지낸 시간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가족 없이 육아를 전적으로 우리 둘이서 전담해야 했기 때문에, 비교적 엄마와 아빠의 책임과 역할은 균형을 갖는 편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엄마에 대한 집착은 두 돌 아이에게 당연한 일이다.
그래, “아빠 어디가” 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라고 한다. 여기 저기서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단 한 번도 앉아서 끝까지 그 프로그램을 본 적은 없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가져오는 감동, 또는 한편으로 인위적인 모습이 뒤섞여 있는 그런 프로그램은 나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인 포맷은 아니지만, 그 의도만큼은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나 한국에서처럼 바쁜 아빠들에게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또 한 차원 다른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아빠와 아이는 오늘 처음으로, 세 시간 반 동안의 외출을 하고 돌아왔다. 점심까지 먹고 온다는 것을, 기껏해야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고 올 것 같아, 집에 와서 함께 먹자고 했지만, 사실은 집에 혼자 있자니 마음이 뒤숭숭해서였다.
Gym에 가서 수영을 하고, 우체국에 다녀왔다고 하면 간단하게 느껴지지만, 나는 알고 있다. 락커룸에 들어가서 떼를 쓰고, 옷을 벗지 않겠다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기다리며, 수 십 분에 걸쳐서 수영복을 갈아입혀 데리고 들어가고, 거기서도 물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아이를 또 기다려주고, 씻기고 나와 옷을 입히고.... 아마 말은 다 하지 않지만 남편의 세시간은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속도 터지고 화도 났을 것이다. 하지만, 개선장군마냥 부녀는 당당하게 외출을 마치고 집에 들어섰다. 집을 나선 이후로부터 좌불안석이라 일이 손에 안 잡혀하던 나의 걱정을 말끔히 해소해주듯, "여보 다녀왔어" 하는 목소리 마저 우렁차다.
점심을 함께 먹는데, 아이가 쉬지 않고 나에게 무언가 계속 이야길 한다. 아빠 , 어푸어푸, 물, 바지, 신발, 어쩌고 어쩌고 하는 것으로 봐서, 아마 나에게 아빠랑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엄마가 없었던 아빠와만의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이다. 남편에게 "많이 힘들었지" 물으니, 금세 "응 너무 힘들었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런데 뒤이어, "근데 너무 좋았어" 한다. 아이랑 더 많이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나 (에게... 세 시간 반으로? ^^). 그리고, 다음주 토요일에도 뭘 할지 설렌다고. 힘들지만 은근 중독성 있는 뿌듯함이 있다고. 그렇게, 아이도 아빠도 잔뜩 흥분한 상태로 우리는 함께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여러 가지 종류의 즐거움을 느낀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에, 한 가지씩 배워가는 모습도 나에겐 기쁨이지만, 난 우리가 한 가족이 되어가는 모습을 언뜻언뜻 보게 될 때 떠 큰 감동을 느낀다. 어쩌면 아이가 변하는 모습보다도, 아이를 통해 변해가는 우리의 모습이 더 새롭다. 엄마 아빠라는 역할에 어느덧 적응해서 조금씩 조금씩 이 역할들에 편안해하는 남편과 나의 모습은 예상치도 못했던 즐거움이다. 귀찮은 거 끔찍이도 싫어하는 남편이 자발적으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겠다고 자청하거나, 아래층 위층을 전속력으로 오르락 내리락거리던 장군이(멍멍이)가 아이가 넘어질까 속도를 줄여 살짝 피해 뛰는걸 보면 또 그렇다. 이젠 우리가 가족이라고 불리는 게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시간이 된 모양이다.
이 글은 제 개인 블로그에 2013년 11월 9일에 올렸던 글 '부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