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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Sep 21. 2020

비가 건네는 위로

우산위로 투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걸은지 오래이다. 



나는 실로 모든 종류의 비를 다 좋아한다. 

차창으로 떨어지는 비를 보며 버스를 타는 것도

내쪽으로 들이닥치는 비를 와이퍼로 이쪽 저쪽 움직여가며 운전을 하는 것도

시동을 끈 차 속에서 잠시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벗삼아 눈을 감는 것도

창을 조금 열어놓고 소나기를 구경하는 것도

다 좋아한다.




그저 내리는 비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무슨 재미가 있냐고 해도, 
나에게는 비 내리는 걸을 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다. 



우산을 들고 비내리는 거리를 걷는건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일이다.

가끔은 떨어지는 비를 맞는 그냥 맞는 것도 좋아한다.

하루 종일 들고 다니기 싫다는 핑계로 일기예보를 보고도 아침에 우산을 챙기지 않지만

어쩌면 그 핑계로 비를 맞을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한다.


하교 후 차마 걸어갈 수 없이 큰 비를 앞에 두고 어쩔바를 모르던 나를 

저 멀리서 마중나오던 엄마의 우산도 좋아한다.

엄마와 우산속을 걸어가며 나누었던 얘기들은 

그 어떤 얘기들보다 좋았다.



연인과 함께 쓰는 우산은 때로 너무 좁거나 또 때로 너무 넓다고 느껴졌다.

아마도 나와 그 사람의 마음의 거리가 때때로 줄다리기 하듯 

길어졌다 짧아졌기 때문인것 같다. 

우산 속에서 나누는 얘기는 대개 작게 속삭이기 마련인데,

빗소리보다 커서 우산 밖으로 세어 나갈까봐 그렇다.

해서, 우산 속에서의 대화는 늘 조용히 나누는 비밀처럼 감미롭다. 


엠티갔던 시골 냄새를 한순간에 불러다 주는 한여름의 비도 좋아하고

한번 내릴때 마다 창밖에 연두색 물감을 듬뿍 찍어내는 것 같은 봄비도 좋다.

비와 함께 떨어지는 낙엽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는 가을비도 

그리고 가끔이지만, 차 한잔 들고 바라보는 겨울비도 

나에겐 다 좋다. 


사람 많은 곳에서 맞는 비,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맞는 비도 좋아하고,

사람 드문 곳에서 만나는 혼자 맞는 비도 좋아한다. 


언제 내리는 비든, 얼마나 많이 혹은 조금 내리는 비든,

나는 늘 비를 만나면 나에게서 나가는 소리도 감정도 줄인다.

마치 컬러사진을 보다가 흑백 사진을 보는것 처럼 

복잡하고 끓어오르던 마음은 차분해지고 

내가 아닌듯 과한 감정표현은 자제된다.


비로소 비를 보면서,

내 것이 아닌 감정에 휩쓸려 지나쳐버렸던

본질을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비 앞에서 서서,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얻은 상처로 부글대던 마음도 가라앉혔고,

내 맘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차오르던 기대도 버렸다.

그리고 여러번, 

어쩔수 없었던 상황조차 내 탓으로 돌리면서 가라앉아가던 내 자신을 

곧바로 바라볼수 있었다.


비는, 

때로는 뿌연 안개처럼 가느다란 물방울로 다독이면서 

사람들의 시선에 휘둘리지 말고

본연의 “나”를 바라보도록 

늘 곁에서 도왔다.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에 마음이 답답할때, 

신경쓰고 싶지 않은 일들에 지쳐갈때,

나도 모르게 창 밖을 바라보며 서서 

운전중에 차창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며 

“오늘 비가 내릴려나?” 하며

비 올것을 걱정하는양 했지만

사실 나는 간절히 비를 기다리고 있었던 때가 

더 많았던것 같다. 


오늘 오후, 

한눈에 가득 담을수 있는 하늘과 청량한 공기사이로 

쏴 하고 내리는 비가 내렸다. 


미국, 도심 외곽에서 꽤 오랜시간을 살면서

비가 올때 우산을 꺼내 펴든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이 곳 사람들은 비가 오면 그냥 맞던가 

모자가 있는 레인코트를 입고 뛴다. 

그것도 아니면 대체로 차를 이용해서 다녀야 하니 

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가는 짧은 거리는

우산없이 다니는게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새 이곳사람들 처럼 후드티셔츠의 모자를 앞으로 끌어당겨서

빠른 걸음으로 빗속을 뛰는게 이젠 더 익숙해질만도 하다


그런데 오늘은 비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문득, 

오래전 광화문에 있는 어느 건물 높은 층에서 일을 할때

무심결에 돌렸던 창밖의 풍경을 떠올렸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창문 아래로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하나 둘 셋 - “짠!” 하고 우산을 펴던일. 

쏴 하고 내리는 소리에 맞춰서 수십개의 색색의 우산들이 한순간에 만들어내던 

동글동글 예쁘던 풍경.

그 모습을 보고 왜인지 안심이 되던 마음. 


그 사람들 모두 우산을 들고 비를 맞으면서 

각자 위로를 받는 중일거라 생각했다. 

우산 하나씩 마다 

비가 다독여주는 고민들이 있었을거라 생각했다. 


오늘은 그래서 

서울의 비가 

조금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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