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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창 Apr 20. 2020

청년기업가 에디슨12화-방랑의 끝

에디슨은 방랑생활 동안 발명구상, 전공 독서 등을 하며 미래의 위해 준비

11화에서 이어집니다(ttps://brunch.co.kr/@ipnomics/17_



발명 구상


    그는 어린 시절부터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메모나 그림 등 기록을 남기는 습관이 있었다. 에디슨은 전신기사로서 4년여 동안의 방랑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직접 발명을 하였다. 에디슨이 떠돌이 전신기사 시절의 전신기는 고장이 잦았다. 전신기사들은 전신을 주고받는 시간보다 전신기 수리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 전신기가 고장이 나면 전신기사들이 자신의 월급으로 부속품을 사서 고쳐야만 했다. 에디슨이 방랑하는 시기에 남긴 발명에 관한 기록중에는 1867년 신시내티에 머무는 동안 남긴 기록이 있다. 그가 남긴 노트에는 전신기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이들 내용 중 하나는 리피터(Repeater)이다. 리피터는 입력으로 들어온 약한 신호를 배터리를 이용하여 신호를 보강한 이후에 다음 회로에 전달하는 장치이다. 에디슨이 관심을 가진 또 하나의 중요한 기술은 이중 송신 시스템(Double transmission system)이다. 이 기술은 하나의 전신 선로로 동시에 두 개의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이다. 이 기술이 실용화되면 추가적인 전신 선로를 가설하지 않고도 전신 메시지를 두 배로 송신 또는 수신할 수 있는 기술이다. 장거리 전신 선로 가설을 위해서는 토지 수용, 전신 주 설치 등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전신기업은 이러한 기술 개발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1850년대 이후부터 이중 전신 시스템의 실용화를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전신 발명가들은 이중 송신 시스템이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1865년에 이르러서 모시스 파머(Morses Farmer)가 보스턴과 포틀랜드, 그리고 매인(Maine) 주에서 이 시스템을 실험하였다. 에디슨은 자신이 발명한 이중 송신 시스템을 원고로 작성하여 1867년 12월 ‘텔레그라프(Telegraph)’에 제출하였다. 이 원고는 편집장 폽(Franklin Pope)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에디슨의 첫 번째 논문이 되었다. 폽은 에디슨의 원고를 1868년 1월 11일 자 발간 호에서 짧게 소개하면서 아주 훌륭하다고 격찬하였다. 그러나 폽이 2월에 편집장을 그만두고 애쉴리(James Ashley)가 편집장을 물려받으면서 에디슨의 논문은 4월이 되어서 발간되었다. 폽과 애쉴리, 이 두 사람은 에디슨의 첫 번째 창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학 서적 탐독     


 에디슨이 전공 서적과 발명에만 몰두한 것은 아니다. 그는 문학에도 깊은 관심이 있었다. 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은 1866년 루스빌(Louisville)에서 절정에 달했다. 그곳의 경매시장에서 미국 최초의 문학 잡지인 노스 아메리칸 리뷰(North American Review)의 과월호 20권을 샀다. 에디슨은 이후에도 빠듯한 야간 전신기사의 월급을 쪼개어 이 잡지를 사서 읽었다. 이런 일은 당시의 다른 동료들에게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는 전문적인 발명가가 된 이후에도 이 잡지의 애독자였다. 에디슨은 때때로 자신의 소감을 잡지사에 보냈으며 잡지사는 에디슨에게 답신을 보내기도 했다. 에디슨은 그의 방랑 생활 내내 이 무겁고 철 지난 문학 잡지를 소중히 보관하며 가지고 다녔다. 에디슨이 방랑 시절 읽은 이 문학 잡지는 훗날 그가 기업가로 완전한 자리를 잡았을 때 그의 도서관에 자리를 잡게 된다. 에디슨이 실험과 공부만 한 것도 아니었다. 때로는 친구들과 극장에 가서 연극을 보기도 했다. 신시내티에서 에디슨을 만난 아담스는 에디슨이 연극 중에서도 특히 비극, 그중에서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4대 비극 작품 중 하나인 오셀로(The Tragedy of Othello, the Moor of Venice)를 유난히 좋아했다. ‘질투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아내를 죽인 오셀로, 마침내 죄책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이야기’, 에디슨은 이 연극을 보면서 훗날 영사기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그가 느낀 것을 다른 사람이 같이 느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방랑 생활의 끝    


 4년여의 방랑 생활을 마치고 에디슨은 1867년 가을에 포트 휴런의 집으로 돌아갔다. 가족 곁으로 돌아왔지만, 그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그의 누이는 4년 전에 죽고 말았다. 형은 서른일곱 살이었지만 사업에 자질이 없었다. 어머니 낸시 여사는 슬픔과 근심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병세는 점점 나빠졌다. 아버지 새뮤얼은 아내의 병세를 감당할 수 없어 좀처럼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에디슨은 집을 떠나고 싶었다. 떠돌이 전신기사 생활을 하며 만난 친구에게 구원 요청을 했다. 신시내티에서 만난 아담스가 보스턴으로 빨리 오라고 했다.


참고

4차 산업혁명 시대 에디슨 다시 보기.(https://brunch.co.kr/@ipnomics/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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