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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Oct 26. 2021

겨울 배추

자식은 오장육부에서 올라오는 그 무엇

하필이면 올 들어 제일 추운 날 시골에 갔다. 아픈 동생은 꿈꾸듯 우리를 기다리고, 엄마는 배추 캘 채비를 하고 계셨다. 김장은 끝났지만, 엄마의 배추들은 작년처럼 또 주인을 찾아가지 못하고 황량한 밭에서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들판 끝에서 배추밭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매서웠다. ‘올해는 제발 우리 먹을 만큼만 심자’고 했는데, 엄마와 아픈 동생은 기어코 천 포기가 넘는 배추를 심었다. 엄마는 빌린 밭을 놀릴 수 없다는 이유로, 아픈 동생은 배추 팔아 내 차를 바꿔준다는 계산으로 그랬다.     


더운 여름부터 엄마와 동생은 밭두렁을 휘청휘청 걸으며 물통을 날랐다. 그렇게 키운 배추는 김장철이 지날 때까지 한 포기도 팔지 못했다. 엄마는 여기저기 보낼 김장을 욕심껏 하였다. 그리고 김장용 양념이 다 떨어지자 며칠씩 백김치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밭에 남은 배추는 여전히 줄지 않았다. 한파가 닥친다고 했다. 밤새 배추가 꽁꽁 얼기 전에 아직 속이 안 벌어진 놈들이라도 골라 거두어야 했다.      


엄마와 내가 배추 밑동을 칼로 잘라 캐서 주면, 아내와 아들딸이 시든 잎을 솎아내었다. 엄마는 망연히 보고만 있는 동생한테 “이놈아 와서 거들어라”며 짐짓 빈말을 하셨다. 누나와 나는 못 들은 척 배추 밑동만 잘랐고, 아내가 “도련님 추운데 집에 들어가 계세요”라고 했다. 어쩔 줄 모르는 동생은 선뜻 집으로 가지 못하고 우리가 일하는 내내 서성이고 있었다.     


처음 배추밭을 쳐다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해저물녘까지 일하니 그나마 속 찬 배추를 반쯤 거두어 안심이 되었다. ‘게으른 눈아, 걱정 말아라. 부지런한 손이 있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엄마가 아주 오래전, 당신 혼자서 허위허위 다섯 남매를 거둘 대부터 하신 말씀이다. 언뜻 보기엔 막막하고 힘들어 보이는 일이지만 두 팔 걷고 나서면 시나브로 끝낼 수 있다는 말씀이다.      


춥고 힘든 일과를 마치고 때늦은 저녁상에 둘러앉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주말 예능프로그램이 한껏 신이 나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예능프로그램은 ‘우리가 이렇게 즐거우니 시청자 여러분도 즐겁게 사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무심하게 텔레비전 화면 속 잔치를 보고 있는데 엄마가 구운 조기 새끼와 막걸리를 들여오셨다. 

“애비는 안즉도 춥는 갑다. 저 뺨 좀 봐라. 시퍼렇다. 에이고.”      


엄마는 막걸리를 홀짝거리는 나를 보며 혀를 차셨다. 나는 정말 추운 것이 싫다. 어릴 적, 아이들과 같이 눈싸움을 해도 손을 호호 불며 제일 먼저 집으로 왔고, 얼음지치기나 연날리기 같은 것은 구경하는 것조차 버거워 시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지만 나는 시치미를 떼고 엄마에게 흰소리를 했다.

“대체 아들 놀리는 엄마가 어디 있소? 참, 이상한 엄마도 다 있네.” 

     

그날 밤이었다. 방에 불이 꺼지고 아이들 콧소리가 잦아들자 아내가 말했다.

“어머니도 참 심하시더라.”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어 돌아누웠다. 아내가 비로소 감춰두었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내는 엄마가 하신 말씀 “애비는 안즉도 춥는갑다”는 말이 못내 서운 했었다. 아내는 다들 똑같이 찬바람 맞으며 일했는데, 어떻게 초등학생인 손자보다 다 큰 어른인 아들 추운 것만 안타까워하시냐는 것이다.     

나는 세상모르게 콜콜 자고 있는 아들에게 좀 미안해서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칠순 어머니는 중년의 아들이 안타까웠고, 젊은 엄마는 열두 살 어린 아들이 안쓰러웠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모두 밥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할 때 나는 은근슬쩍 그 이야기를 꺼냈다. 

“어무니, 나 어젯밤에 서희 에미한테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소.”      

그렇게 운을 떼니 눈치 빠른 아내가 눈이 동그래져 내 쪽을 보더니 이내 슬쩍 웃었다. 생선뼈를 발라 손자들 밥그릇에 놓으시던 엄마도 아내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나는 남의 일처럼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어느 집 배추밭에서 삼대가 함께 배추를 캐는데요. 그 집 할매가 열두 살짜리 손자보다 중년이 된 아들 추운 것만 걱정 하더라대요.”      


아내가 “아이구, 참나” 하며 키득거렸고 이내 감을 잡으신 엄마가 잠시 ‘내가 그랬었나?’ 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엄마는 약간 겸연쩍게 웃으시더니 대답해 주었다.

“살아봐라. 옛말에 한 다리가 삼천리라 그랬다.” 

“그래도 손자가 훨씬 귀엽지 않아요. 어머니?”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솔직 담백한 문답이 이어졌다. 

“아무렴. 우리 손자들 귀엽고말고. 예쁘고 사랑스럽지.” 

“그럼 대체 아들과 손자의 느낌은 어떻게 달라요?” 

“손자는 눈에 확 들어오는 귀여운 사랑스러움이지만 아들은 오장육부에서 올라오는 그 뭐시냐 그런 것이 있단다. 자네도 살아보게.”  

    

두 어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동안에도, 늙은 내 어머니가 오장육부에서 올라오는 그 무엇으로 부둥켜안고 사는 아픈 동생은 ‘대체 이 맛있는 생선 안 묵고 뭔 말씀을 하시나?’는 듯 우리를 일별하고 열심히 수저질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가끔 목을 빼고 아들 밥그릇이 비어있지 않는지 국그릇이 식지 않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또 무엇을 가지러 가시려는지 방문을 열고 부엌으로 가셨다. 나는 엄마 뒷모습을 보다 마당에 쌓아놓은 배추를 보았다. 엄마는 당신 탓이 아닌데도 아직 거두지 못한 배추를 내내 애달파하실 것 같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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