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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Nov 09. 2021

개밥 동냥

해산한 어미 개 황순이를 위하여

순천 아래 장 어물전 속으로 꼬부랑 할머니가 들어가신다. 뒷짐 지고 앞서가는 엄마 꽁무니에 빨간 플라스틱 바게스가 달랑달랑 따라간다. 그 뒤를 내가 따라간다. 나는 노란 알루미늄 바게스를 들고 엄마 뒤를 따라간다. 

     

우리 엄마는 어물전 자판에 놓인 등 푸른 고등어와 빛나는 갈치 그리고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듯한 잉어를 일별하고 생선가게 주인에게 묻는다. 

“괴기 대가리 모아 둔 거 없소?”

“뭐 헐라고요?” 

“개밥 헐라고 그러요.”     


주인은 생선 부산물을 노란 바게스 가득 담아주었다. 엄마는 사례로 말린 가오리 5천 원어치를 샀다. 빨간 바게스에 담은 가오리는 내 몫이다. 오늘 엄마는 장을 따라온 큰아들을 위해 가오리를 쪄서 양념을 발라 주시리라. 벌써 군침이 돈다. 오늘도 우리 집 황순이 덕에 막걸리 반주 한잔 하겠다.      


황순이는 어느 여름날 우리 집에 왔다. 집 앞을 지나던 개장수가 물 한 잔 얻어 마시고 주고 간 강아지다. 족보도 혈통도 없지만 아무거나 주는 대로 잘 먹고 순하디 순한 개였다. 황순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어미 황순이가 제 새끼를 낳아 기르는 정성은 사람 못지않았다. 나는 엄마한테 순한 어미 개 황순이가 해산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늦은 밤이나 새벽녘, 긴 산고 끝에 첫 강아지가 태어나면 황순이는 제 입으로 새끼의 탯줄을 물어 끊고 강아지 몸에 묻은 이물을 정성스레 핥아 닦아주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시 산통이 오고 또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면 같은 방법으로 탯줄 끊고 깨끗이 핥아 닦아준다. 많게는 예닐곱 번 가까이 반복되는 고통을 모두 감내하고 마지막 힘까지 다 쏟아버려도, 지친 채 제 새끼들을 품는 어미 개 황순이.      


엄마는 황순이가 해산할 때마다 그 옆을 지켰다. 긴 해산이 끝나면 헌 옷가지를 더 도톰히 깔아 어미와 새끼를 따습게 해 주고, 으깬 고구마에 데운 우유를 부어 지쳐 쓰러진 황순이 입 가까이 가져다주었다. 엄마는 황순이가 알아듣는 것처럼 말했다. 

“그래, 우리 황순이, 고생 많이 했다.  장허다, 장해.”      


 황순이가 나이가 들면서 새끼를 낳는 일보다 기르는 일이 더 힘들어졌다고 한다. 새끼들에게 먹일 어미젖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철없는 하룻강아지들은 줄기차게 제 어미 가슴을 파고들어 나오지 않는 마른 젖을 빨아댔으니, 어미젖이 헐어 피부가 벗겨지는 지경이 되었다. 그래도 황순이는 몸을 비켜 돌아누울 뿐, 품을 파고드는 뿌리치지 않았다. 엄마는 황순이를 어린 강아지와 떼어 놓고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며 중얼거리셨다. 

“네가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짐승이 아닌갑다.”       


황순이가 해산하고, 내가 시골집에 가는 날이면 엄마는 어김없이 바게스 두 개를 내 차 짐칸에 싣는다. 하나는 어물전에서 얻은 다양한 생선이나 고기 부산물을 담을 동냥 바게스이고, 다른 하나는 고등어, 족발, 모기약, 두부 등을 담을 빨간 플라스틱 바게스다.  


엄마를 따라 개밥 동냥을 가면 마음이 따스하면서도 아리다. 황순이가 모처럼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생각하니 따스하고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당신도 그러셨다. 아버지가 가시고 허위허위 다섯 자식을 품고 살아온 우리 엄마의 모진 세월도 그러셨다. 아무 기댈 곳 없었던 혹독한 그 시절, 짐승처럼 말 못 하는 어떤 한이 호미처럼 굽은 당신 허리에 맺혀 있는 것 같아서, 미련한 아들은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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