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따라 긴 방죽 끝자락 외딴집에
일개미 같은 어머니입니다. 굽은 소나무 같은 동생이 떠나자 당신의 일상은 텃밭으로 옮겨 갔습니다. 맑은 하늘 구름에 앉아 어머니 집을 내려다봅니다. 눈 아래 아득한 들판 끝 외딴집에서 허리 굽은 점 하나가 나옵니다. 그 점을 따라 눈길을 그어봅니다. 앞마당과 뒤란과 텃밭 주위에 당신의 자국이 실 곡선으로 가득합니다.
부엌강아지 같은 어머니입니다. 온갖 낡은 것들이 당신 곁에 머물다 갑니다. 인천 이모가 보낸 빛바랜 쑥색 잠바를 입고 내가 신던 늘어진 양말과 낡은 운동화를 신고 텃밭으로 갑니다. 잊기 위해 텃밭을 가십니다. 하루 종일 바람과 흙과 땀에 절은 당신 모습이 부뚜막에서 나오는 부엌강아지 같습니다.
목단꽃 같은 어머니입니다. 동생을 하늘로 떠나보낸 뒤부터 당신은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돌보아 줄 수 없는 세상이기에 하느님에게 새벽기도로 부탁드립니다. 엄마는 기도 끝에는 매일 이렇게 끝맺습니다. “불쌍하고 가여운 인생입니다. 늘 당신 곁에 두게 하시고 다음 생애는 좋은 부모 만나 행복하게 살게 해주시 옵소서”
일요일은 예수님께 감사드리러 가는 날입니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단장을 하십니다. 오늘은 물빛 원피스를 다려 입어셨습니다. 여학생 신발 같은 작은 검은색 구두도 반짝반짝 닦아 두었습니다. 누님이 사서 보내 준 새 머플러도 하였습니다. 부엌강아지 대신 목단꽃처럼 우아한 엄마가 있습니다. 과연 ‘순천 미인’이십니다. 예배당에 들어서면 예수님께서 활짝 웃으며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서 여사님, 참 곱습니다. 데이트 신청해도 되겠습니까? ”
꽃단장을 마친 어머니가 손가방에 돋보기와 성경책과 안약을 챙겨 넣었습니다. 그리고 현관을 나서기 전에 거실장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화분들 앞에 쪼그려 앉습니다. 어머니 눈길이 작은 꽃 하나하나를 어루만집니다. 푸른 줄기 사이, 싱싱한 잎 사이로, 작은 꽃들이 아기처럼 눈을 맞춥니다.
“교회 갔다 올게. 집 잘 보고 있거라. 얼릉 댕기 와서 할매가 많이 많이 쳐다봐 주께.”
예전에 우리가 힘들었던 시절, 엄마가 어느 집 마당에 잘 가꾸어 놓은 화단 앞에서 꽃들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한참 동안 화단 곁은 떠나지 못하고 아이처럼 넋을 놓고 있었습니다. 내가 다가가서 이제 갈 시간이 되었다고 재촉하자, 꽃한테 눈을 빼앗긴 당신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내 속에서 나온 자식도 미울 때가 있는디, 꽃은 어째서 볼 때마다 예쁘다냐.”
일요일 오후가 되었습니다. 지금쯤 교회차를 타고 돌아 온 어머니가 파란색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설 것입니다. 그리고 화분 밑에 감추어 둔 열쇠를 꺼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고, 오래된 가방에서 돋보기와 성경책과 안약을 꺼내 제자리에 놓을 때입니다. 그 시간을 맞추어 전화를 드렸습니다.
"내 집에 옹께 참 좋네. 세상에 어디가 내 집만큼 편허것능가. 내 걱정 말게."
그래놓고는 한껏 들떠 꽃들의 안부를 전해 주었습니다.
"아 글쎄, 저번 장날 사놓은 쪼깐한 화분이, 나가 없는 사이 손톱만 한 꽃을 피웠더라 말이시. 그래 갖고 이짝 저짝에서 할매 나 좀 보소. 할매 나부텀 먼저 봐주소. 함시로 서로 저 쳐다봐달라고 난리가 아니네."
엄마 목소리가 은초롱처럼 맑았다.
이제 당신은 혼자 늦은 점심을 드시고 거실에 작은 꽃들과 함께 ‘전국 노래자랑’을 보실 겁니다. 하천 따라 긴 방죽 끝자락 외딴집, 오늘 밤도 우리 엄마 꿈속에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곱디 고운 순천미인을 위해 꽃망울 펑펑 터뜨려 주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