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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Dec 18. 2021

영희 이모

그 새벽녘, 영희 이모가 만들어 준 주먹밥 하나

어린 시절, 엄마 손 잡고 외갓집에 가는 길은 참 멀었다. 두메산골 외갓집에는 외증조할머니부터 여섯 살 꼬맹이 이모까지, 모두 열두 명의 식솔이 와글와글 살고 있었다. 그중에서 영미 이모와 영희 이모는 참 대조적이었다. 영미 이모는 산골 소녀답지 않게 얼굴이 예쁘장하고 손도 빨라 시키는 일을 척척 잘했다. 영희 이모는 수더분하게 생기고 실수가 많고 동작도 굼뜬 탓에, 식구들한테 자주 지청구를 들었다. 


순딩이 영희 이모는 무려 다섯 살 아래인 영옥이 이모한테도 말싸움에서 밀렸다. 나는 영희 이모가 가족들한테 지청구를 듣고 부엌에서 혼자 울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래서일까, 영희 이모의 두 눈은 늘 밤새 울고 난  아이처럼 부어 있었다. 나는 영희 이모가 밉게 생겨서 식구들에게 타박을 맞는다고 생각했다.


어슴푸레한 새벽에 깨어 부엌으로 갔다. 외갓집 식구들 아무도 모르게, 내가 영희 이모 편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영희 이모는 언제나 혼자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매캐한 연기가 새어 나오는 부엌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면, 영희 이모가 아궁이 앞에 콩쥐처럼 앉아 불을 지피고 있었다. 아궁이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이모 얼굴을 비추고, 이모는 그 불빛보다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해 주었다.

“아이고, 우리 조카 왔네. 추운디 멀라고 나왔어.” 


이모는 부뚜막 앞에 나를 앉히고, 내 두 손을 모아 쥐고 호호 입김을 불어 주었다. 그리고 아궁이 불에 고구마를 구워 주었다. 나는 얌전한 고양이처럼 앉아서, 노란 속살로 가득 찬 군고구마를 야금야금 먹었다. 낮에는 이모 옆에 있을 수가 없었다. 이모들은 할머니와 날마다 밭에 가서 일을 하고 어두울 무렵 돌아왔다. 나는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틈이 날 때마다 이모 옆에서 맴돌았다.   


방학이 끝나가고 외갓집을 떠나는 날이 되었다. 그날 새벽에도 나는 마른 솔가지 툭툭 타는 아궁이 앞에서 영희 이모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가마솥에서 뜨거운 김이 뿜어 나오고 뜸이 들고 있었다. 이모가 솥뚜껑을 열고 한 솥 가득 있는 보리밥 한쪽에, 따로 모여 있는 쌀밥을 주걱으로 펐다. 그리고는 그 뜨거운 쌀밥을 맨손으로 굴려 주먹밥 하나를 빚어내더니 참기름을 얇게 발라서 내게 주었다.

"얼른 묵어라. 맛있게 묵어라."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큰일 날 일이었다. 흰쌀밥은 오로지 외증조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위한 것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희 이모 등 뒤에 숨어 주먹밥을 먹었다. 그 후 우리 집이 멀리 이사를 하는 바람에 방학이 되어도 외갓집을 가지 못 했다.


내가 영희 이모를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지난 내 결혼식장에서였다. 이모는 평탄치 않은 자신의 삶이 민망한 듯, 있는 듯 없는 듯 다녀가셨다. 친척과 함께 찍은 결혼사진 속에 촌스럽게 서 있는 이모가 쓸쓸해 보여 마음이 아팠다.


다시 이십 년이 지난 후였다. 영희 이모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엄마와 함께 찾아갔다. 과년한 나이가 되어서 촌부의 재처로 들어간 집이었다. 영희 이모는 병석에서 힘들게 몸을 일으켜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옛날 외갓집 부엌에서 그랬던 것처럼, 따스한 아랫목으로 나를 끌어 앉혔다. 


영희 이모는 중늙은이가 된 나를, 아홉 살짜리 조카를 보는 듯 웃었다. 나도 그 시절로 돌아가 부엌데기 열네 살짜리 영희 이모의 거친 손을 꼭 잡았다. 타박타박 타박네 같은 우리 영희 이모는 다다음 해 자연으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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