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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Oct 30. 2021

밴댕이 선생

부디 오셔서 우리들 이야기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홉 살 개구쟁이가 있습니다. 지난 스승의 날, 그 아이 엄마가 전화를 주셨습니다. 철없는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한 번도 찾아보지 못해 미안하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안부를 주고받는 몇 마디 말에도 힘들어하셨습니다. 아주 많이 앓고 계시고 있음을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아픈 엄마는 철부지 아들 생각에 목이 메인 듯 겨우 말을 이었습니다.      


그날 숙제를  안 해온 아이들을 교탁 앞으로 불러내었습니다. 아이들 속에 아픈 엄마의 아들 개구쟁이도 있습니다. 나는 잠시 그 아이 엄마 목소리를 떠올리지만, 눈을 부릅뜨고 나무랐습니다. 꼬마는 풀 죽어 고개를 숙이지만, 그것도 잠시 제 자리로 들어가는 동안 까불 까불 춤을 추며 들어갑니다. 세상모르고 사는 그 모습이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마음 한편이 아립니다.     


개구쟁이는 아픈 엄마와 벌써 오래전부터 떨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언뜻언뜻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꾸역꾸역 참고 있는 듯합니다. 어린 마음에 얹힌 돌 한 덩이 하나는 제 스스로 어찌할 수 없고, 그 누구도 들어내어 줄 수 없는 것이라서, 차라리 한쪽 눈을 감고 지내는 듯합니다. 그래서 아이는 학교에 오면 하나도 슬프지 않은 것처럼, 슬픔이 없었던 시절처럼 마냥 웃고 떠들고 장난치며 지내나 봅니다.

      

이번에는 짝꿍끼리 잘 놀다가 한바탕 싸움이 붙었습니다.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했습니다. 둘 다 똑같이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씩씩거리는 녀석 둘 중 하나가 역시 그 개구쟁이입니다. 나는 한순간 다시 그 아이 엄마의 목소리를 떠올리지만, 마음을 다지고 회초리를 듭니다. 위험한 행동과 폭력은 꼭 고쳐야 할 행동입니다. 두 녀석 다 눈물을 그렁그렁 하며 화해를 합니다. 개구쟁이 눈물에 마음이 더 무겁습니다. 내 마음이 밴댕이 속처럼 좁고 어둡습니다.      


아이가 사고를 치고 나는 벌을 주고, 다시 아이가 돌아서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 까불 때마다 나는 혼동에 빠집니다. 돌아서며 헤헤거리는 그 아이는 분명 나에게 무엇을 말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좁고 어리석은 내 마음은, 그 활발함 속에 숨어 있는 무엇을 어떻게 보듬어 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싶지만, 손을 놓는 순간 아이는 더 외로워질 것 같습니다. 가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개구쟁이를 안으면, 아이는 겨우 겨우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릴까 두렵습니다.      


속상하지 않을 만큼 혼 내고, 슬픔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다독거려 주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그 슬픔마저 없애 주지는 못합니다. 부디, 아이 엄마가 속히 쾌유하시길 소망합니다. 얼른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서, 나들이 오시듯 우리 교실에 오시기 바랍니다. 오셔서 아이가 날마다 앉아 있던 낮은 걸상에 앉아, 밴댕이같은 선생의 넋두리를 웃으며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날까지 꼭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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