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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Dec 13. 2021

짱입니다요

학교 짱, 조폭 선생 그리고 착한 아이 

새 학년이 되었다. 첫날, 교실에 들어 가보니 낯선 얼굴 중에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나는 단박에 녀석들을 알아보았다.  지난해 학교폭력 사안 처리 때 가해 학생으로 대면한 아이들이다. 녀석들도 놀란 표정이었다. 작년에 학교폭력 담당이자 6학년 담임교사였던 내가, 올해도 6학년 담임을 맡아 하필 같은 교실에서, 저희들을 맞이할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터이다. 나도 속으로 말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이놈들아!’     


나도 6학년 담임과 학교폭력 업무를 이태 연속 맡을 줄 몰랐다. 일 년만 하면 원형 탈모가 생긴다는 기피 업무를, 독박으로 덤터기 쓴 것은 내 알량한 영웅심도 한 몫했다. 어느 날, 나는 학습권 문제로 학교장 코털을 건드렸고, 학교장은 항명에 대한 앙갚음으로 나를 6학년에 눌러 앉혔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그쯤 되면 사전에 학교를 옮기는 것이 현명했는데, 나는 오백 년 최씨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즈음 나는 아이들 사이에서 조폭 선생님으로 불리고 있었다. 매일 학교폭력 사안처리로 잔뜩 인상을 쓰고 가해자 피해자들을 불러 댔으니 그런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오뉴월 하루 볕이 무섭다고,  말썽쟁이들은 작년과 사뭇 달라 보였다. 한 녀석은 벌써 여드름이 솟고 중학생처럼 어깨가 딱 벌어졌다. 아이들과 상면하던 첫날, 나는 단단히 못을 박았다. 

“숙제를 안 해도, 일기를 안 써도 용서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남을 괴롭히는 일, 학교폭력은 용서하지 않는다. 명심해라.”

그런데 내 말끝이 끝나기 바쁘게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이들이 잘못해도 안 때린다면서요?”

“누가 그러더냐?”

“작년 6학년 형들이요.”

더 이상 채찍의 시대가 아니다. 나는 눈빛과 당근으로 지도 했다. 


작년에는 그게 통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올해는 여의치 않았다. 일주일도 안되서 녀석들은 또래 집단 우두머리를 만들었고, 조숙한 여드름쟁이 주위로 말썽쟁이들이 모였다.


초반 기싸움에 밀리지 않아야 한다. 말썽쟁이들이 이탈 경계선을 오락가락하며 간을 보았다. 나는 규칙을 잣대로 하여 제재를 가했다. 녀석들은 저희들끼리 하는 가벼운 장난인데, 선생님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반발했다. 나는 너희들은 둔감한 것이라며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섣불리 당근도 제공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적잖이 힘들었다. 어떤 날은 꿈속에서 거친 욕설로 호통을 치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었다. 말썽쟁이들이 선을 넘어서면 용서하지 않았다. 나는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훈화를 하고, 맞춤법이 단 한 자도 틀리지 않게 반성문 써라고 했다. 그리고 오후에 교실에 남겨서 상담 하고, 마지막에 진심을 담아 빡빡하게 쓴 사과 편지를 받았다. 아이들은 사소한  일탈에도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 길고 지루한 회복 과정에 혀를 내둘렀다. 나중에는 차라리 남자답게 손바닥을 맞겠다고 체벌을 바랄 정도였다. 나는 또 못이기는 척 줄을 늦추고 악동들과 당근을 나누어 주었다. 


그 와중에도 연꽃 같은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갔더니, 우리 반 아이가 고무장갑을 들고 서 있었다. 그 때는 청소 시간도 아니고, 더구나 그 아이가 화장실 청소 당번도 아니었다. 의아해서 곁눈질로 살폈다. 아이는 빨간 고무장갑을 팔꿈치까지 끌어올리느라 낑낑대고 있었다.

“지금 뭐 하냐?”

“저거 좀 치우려고요.”


정열이는 겸연쩍은 듯 소변기를 가리켰다. 그 안에는 누군가 둘둘 말아 던져놓은 화장지가 배수구를 막고 있었다. 많은 아이들과 선생님들 조차 그냥 보고 지나친 그 지저분한 것을, 굳이 자기가 치우겠다 교실 청소함에 있는 고무장갑까지 챙겨 온 것이다. 내 심장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건 선생님이 더 잘하지. 너는 물통에 물을 받아 오너라.”

나는 볼 일을 보다 말고 졸지에 화장실 청소를 하였다. 정열이 덕분에.

    

다음 날, 아침 학급 조회 시간에 정열이 선행을 아이들한테 말해 주었다. 몇몇 녀석들이 과장되게 목을 잡고 토하는 시늉을 하였다. 나는 좀 더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아이들도 뭔가를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박수는 이럴 때 치는 거다!”

아이들이 아낌없는 물개 박수를 보냈다. 우리의 주인공 정열군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 한 명이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선생님, 정열이 진짜 대단해요!”     


아이들은 내가 몰랐던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학여행 갔을 때였다. 첫날밤에 숙소에서 수학여행의 백미인 베개 싸움이 벌어졌다. 남자아이들은 베개를 휘두르며 망아지처럼 신나게 놀고 있았다. 그런데 갑자기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누가 어떻게 했는지 탁자 위에 있던 유리 물병이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모든 동작은 일시에 정지 되었고  아이들은 서로 네 탓이라며 말싸움을 시작했다. 즐겁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금방이라도 싸움판을 벌일듯 마주보고 으르렁거렸다. 그런데 그 난리법석 통에 한 아이가, 한 손에는 빗자루를 다른 손에 쓰레받기를 들고 나타났다. 정열이였다.


아이는 그 혼란한 상황을 개의치 않고 아주 평온한 얼굴로, 바닥에 흩어진 파편을 쓸었다. 고함을 지르던 아이 옆으로 정열이가 조용히 비질을 하며 다가가자, 아이가 고함을 멈추고 비켜섰다. 삿대질을 하며 울그락 불그락 하는 아이 곁으로 조심조심 정열이 빗자루가 다가가자, 흥분한 아이가 행동을 멈추고 뒤로 물러나 주었다.  

“맞아요. 그날 진짜 대박이었어요!”        


그날 같이 있었던 학교짱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정열이는 키도 작고 몸도 중간쯤이고 약간  여윈 아이였다. 특별히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고, 말수가 적은 평범한 아이였다. 하지만 우리 반 말썽쟁이 그 누구도 정열이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있는 듯 없는 하던 정열이는 아무도 알게 모르게 우리 반에 여기저기에 평화의 씨앗을 심고 있었다. 


누가 짱인가? 이 세상은 언제나 착한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무하마드 알리, 다이애나 스펜서, 챨리 채플린, 덩 샤오핑, 단테, 잉바르 캄프라드, 벤저민 프랭클린, 루소, 도산 안창호 ... 앞서 간 수많은 대가들이 얼마나 착한 사람이었는지 알아 보라. 우리는 그 선한 빛으로, 아직은 살만한 세상에서 숨쉬고 있다. 교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착한 사람이 짱이다.


* 참고 글: 브런치 매거진 '인생에 실패했던 대가들의 이야기' https://brunch.co.kr/magazine/ahura5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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