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서는 멕시코 건축의 하늘 부각에 대해 살펴보았다. 멕시코 건축 시리즈의 마지막 포스팅은 멕시코 도시의 경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사실 도시경관은 한 명의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 대개는 그 어떠한 설계도 없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기에 건축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다소 의심스럽다.
하지만 도리어 이러한 특성 때문에 진정으로 그 나라다운 도시경관이 형성된다. 도시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멕시코에는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공유되는 도시경관이 존재한다. 이는 분명 '멕시코적인' 것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영화 <코코>의 한 장면
코코에서 주인공 미구엘이 망자들의 세계로 향하는 다리를 건널 때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처음 이 영화를 볼 땐 그저 으리으리한 세계를 강조하는 연출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멕시코에 온 뒤 이 장면을 보니 지극히 멕시코적인 도시경관을 표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코>의 배경이 된, 멕시코의 과나후아토
멕시코의 도시는 대개 고산지대나 분지지대에 위치하여 있다. 따라서 지형이 평평하지 않은데, 멕시코의 도시들은 대개 인구가 밀집되어 있으므로 이 험한 지형에 다닥다닥 붙어 산다. 엄청난 수준의 밀집도와 험한 지형이 합쳐져 독특한 경관을 만드는 것인데, 거주민들의 입장에선 이러한 경관을 의도한 것은 아니고 그저 삶을 살기 위해 집을 지었을 뿐이었겠으나 외지인의 입장에선 엄청난 규모의 경관에 입이 떡 벌어진다.
멕시코 몬테레이. 'Cerro de la silla(산봉우리 이름)'에서 내려다본 모습
산을 언급한 김에 멕시코 건축이 산이라는 거대한 자연적 구조물과 어우러지는 전통적인 방식을 짚고 넘어가려 한다.
테오티후아칸, 달의 피라미드
위의 사진은 멕시코 테오티후아칸에 위치한 '달의 피라미드'이다. 가까운 거리에 '태양의 피라미드'도 있다. 이 건축물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전까지의 아메리칸 피라미드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피라미드가 언제, 누구에 의해, 무엇을 위해 세워졌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피라미드 건축이 흥미로운 부분은 뒤의 거대한 산과 어우러지는 방식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위 사진에서 배후의 산은 피라미드를 잘 감싸안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두 피라미드가 마치 쌍둥이처럼 나란히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두 피라미드를 연결하는 도로의 동선과 피라미드를 바라보는 각도는 엄밀하게 계획된 것이다. 산과 피라미드를 병렬적으로 시야에 들어오게 함으로써 건축을 자연의 연속으로 여긴 고대 멕시코인들의 가치관이 잘 묻어나는 건축물이다. 그리고 앞선 포스팅에서 잘 살펴보았듯 후대 멕시코인들은 이러한 멕시코의 전통적인 자연친화적 건축방식을 잘 계승하였다.
다시 멕시코의 도시경관으로 돌아와서, 위에서는 과나후아토 사진만 가져왔으나 다른 도시들도 비슷한 형태의 경관을 보인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남다른 규모를 자랑했던 멕시코시티의 경관이었다. 다만 적절히 촬영한 사진이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어쨌든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러한 형태의 도시 경관이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험난한 지형이 옹기종기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양새가 마치 부산의 감천문화마을같은 느낌도 있다.
부산시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참 수두룩빽빽하다. 이와 같은 단독주택의 향연이 멕시코에서는 훨씬 큰 규모로 도시마다 비일비재하게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멕시코의 인구가 1억 5천만이고 대도시는 몇 개 없으니 충분히 그럴만하다. 보통 감천문화마을을 '부산의 산토리니'라고 표현하고는 하는데, 나는 이러한 표현에 반대한다. 산토리니는 어지러움이 없이 깔끔한 형태의 경관을 보인다.
그리스 산토리니
따라서 언뜻 생각하면 산토리니가 더 상위의 경관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산토리니는 다소 인위적이다.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나 할까? 생동감이 부족하다. 물론 이는 취향 차이이고 절대적인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거주민들의 역동성이 맞부딪히는 멕시코의 도시경관이 더 좋다. 따라서 나는 바다를 접하고 있는 점만 제외하면 경관적으로는 다양한 색채가 뒤섞여 사람 냄새를 풍기는 감천문화마을이 비유돼야 할 대상은, 산토리니가 아닌 멕시코의 도시들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