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원 Aug 18. 2022

자연에 인간을 품다: 멕시코 건축(3)

멕시코 건축이 하늘을 부각하는 방식

앞선 두 포스팅에서는 멕시코 건축의 색감과 자연친화성에 대해 살펴봤다. 이 포스팅에서는 이들이 하늘을 강조하는 방식에 대해 살펴보겠다.


멕시코에 도착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기이할 정도로 하늘이 광활하다는 것이다. 주변 변화에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확연히 체감할 수 있는 변화다. 고층빌딩에 둘러싸인 우리나라 도시들과 달라서 그렇다기엔, 우리 시골보다도 훨씬 드넓다. 온종일 흐린 유럽의 하늘과 달리 날이 맑아서 그렇다기엔, 유럽의 맑은 날보다도 훨씬 청량하다. 아마 대부분의 멕시코 도시들이 고산지대에 위치한 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왜 유독 멕시코 하늘이 그렇게 광활한지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정확하게 규명해내진 못하고 있다.


어쨌든 자명한 것은 멕시코의 하늘이 아주 드넓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를 잘 활용한 멕시코의 건축 두 가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수도 멕시코시티에 위치한 '국립 인류학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굉장히 거대한 규모의 인류학과 민속학 박물관이고, 세계에서도 손꼽는 수준을 자랑한다. 이 박물관의 외관 역시 분수와 정원이 합쳐져 웅장한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멕시코의 인류학 박물관답게 서구적인 건축형태는 아니다. 여기서 서구적인 건축 베르사유 궁전이나 콜로세움 등을 떠올려보면 쉬운데, 건축물 외부에서 바라봤을 때 마치 건축물 모형을 바라보는 것처럼 한눈에 담기는 형상이 있는 형태를 말한다. 이렇게 명료한 형상은 instaworthy 할지는 모르겠으나 내부 사용자를 최적으로 배려한 건축은 아니다.


반면 동양을 비롯한 여러 비서구권의 건축은 외부에서 바라본 형상보다도, 그 안에 있는 사용자들이 바라보는 시야에 더 초점을 둔다. 위의 국립 인류학 박물관 사진도 건축물 전체를 담은 사진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담는 것이 불가능하다. 'ㄷ' 자 형태의 한옥을 한 컷에 전체 양상이 드러나도록 사진에 담기는 쉽지 않은 것처럼 이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외부적 시선을 고려한 명료하고도 정형화된 형태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박물관 이용객들의 동선 편의성과 후술할 하늘 표현 등을 위해 보다 복잡한 형태가 되었다. 이는 '인류학 박물관'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이용객들이 임상적인 전시를 볼 수 있도록 최적화한 구조이다. 또 'ㄷ'자로 둘러싼 전시실들 사이 가운데 공간에 자연스레 정원과 마당공간 등을 마련함으로써 박물관 전체를 하나의 큰 놀이터로 조성하고 있다.


국립 인류학 박물관 홈페이지에 방문해 보면 전체적인 건축물에 대한 그림은 찾아볼 수 없고, 박물관의 2D 지형도만이 있을 뿐이다. 그만큼 이 박물관의 전체적인 형상보단 관람 자체와 이용객에게 인상적인 전시를 선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홈페이지의 사진들은 몇 장의 2D 지형도를 제외하곤 죄다 인류학 전시 유물들에 대한 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홈페이지: Museo Nacional de Antropología (inah.gob.mx) )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박물관이 하늘을 표현해내는 방식을 보자.

이 사진은 메인 전시실 출구(동시에 입구)로부터 나오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사람들을 배제하고 천정에 포커스 하면

이런 형상이다. 이 포인트에서 언뜻 보면 두 벽은 사실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걸음을 더 내딛으면 이 둘은 서로 다른 벽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두 벽은 애초부터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박물관 내부의 시선에는 그 각도를 잘 조정하여, 이 두 벽이 마치 붙어있는 것처럼 표현한다. 이를 통해 전시실 내부로 햇빛이 침투하여 전시 분위기를 방해하는 것을 방지한다.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하여야 관람객이 유물들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단지 전시를 보러 들어가는 관람객을 위한 배려가 아니다. 동시에 전시를 끝마치고 나가는 관람객을 위한 공간 조성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 건축물은 입구와 출구가 같다. 출구를 향하는 관람객의 동선은 어두운 전시실을 떠나 밝은 하늘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때 먼 맞은편에 있는 저 거대한 천정 때문에 처음에는 하늘이 가려졌다가, 갑자기 확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하늘의 등장은 더욱 극적이고 인상적이다. 결국 반대편의 거대한 천정 덕분이다. 어두운 실내공간과 밝고 푸른 하늘이 대조되어 광활한 멕시코 하늘은 보다 더 활기를 얻는다. 이를 간접체험하려면 위의 사진들을 다시 순서대로 살펴보길 권한다. 나는 저 거대한 천정을 어떻게 하나의 기둥만으로 지탱하고 있는지 현대 건축공학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다음은 두 번째 포스팅에서 강조했던 멕시코의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의 작품이다.

멕시코 몬테레이에 위치한 'Faro de Comercio'. 지면에서 올려다본 구도


건축물의 이름인 Faro de Comercio에서, Comercio는 상업을 의미하고 Faro는 번역기를 돌려보니 '등대'라고 나오는데 그냥 거대한 구조물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이 건축물이 굉장히 난데없이 도심 한복판에 등장하는 거대한 구조물이기 때문에, 바라보는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다. 지면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건축물의 높이가 너무 높아서 고개를 하늘높이 들어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다. 따라서 주변 호텔에 부탁드려 고지대에 도달하고 나서야, 제대로된 구도를 얻을 수 있었다.


고층 건물에 올라가서 촬영한 'Faro de Comercio'


이 건축물은 긴 빨간색 큐브를 통해 멕시코의 하늘과 지상 조경의 아름다움을 환기시키려 한 듯하다.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건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또 이 구조물을 중심으로 성당을 비롯한 지상의 건축물들과 그 너머의 산(몬테레이는 분지지대에 위치한 도시이다), 광활한 하늘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다만 이 구조물의 색이 빨간색인지라 다른 경관들의 이목을 앗아간다는 큰 단점이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의 멕시코 하늘 표현인지라 큰 기대를 하였는데 다소 실망스러웠다.


내가 이렇게나 바라간의 하늘 표현 구조물에 기대했던 이유는 하늘 표현이 탁월한 루이스 칸의 '솔크 연구소' 건축에 루이스 바라간의 영향이 지대했기 때문이다. 솔크 연구소는 유명한 한국의 건축가 유현준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Salk Institute'. San Diego, California.


솔크 연구소의 건축적 함의에 대해 살펴보려면 유현준 교수의 유튜브 채널 영상을 추천한다.

(129) 경이로운 건축이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영상 : 유현준 선정 100대 건축물 EP1. 루이스 칸의 Salk institute 1부 - YouTube


유현준 교수가 위 영상에서 설명한 솔크 연구소의 가장 핵심적인 건축적 포인트는 중앙을 비워 놨다는 것이다. 처음에 언급했던 서구적 건축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형태이다. 서구적인 건축에서 중앙부는 주인공이 배치되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자리인 중앙을 비우는 순간 이용객의 시선은 그 너머의 진짜 주인공, 바다와 하늘로 넘어간다. 이것이 바로 건축가가 의도한 바이다.


그리고 바로 이 아이디어가 루이스 바라간으로부터 온 것이다. 건축가인 루이스 칸은 원래 가운데에 분수대라는 주인공을 배치하려 했다. 하지만 루이스 바라간은 그에게 아름다운 하늘과 광활한 대서양이 이미 있는데 뭐하러 굳이 인조적인 분수를 만드냐고 물었다. 멕시코 건축가다운 탁월한 조언이었다고 생각한다.



When [Barragan] entered the space he went to the concrete walls and touched them and expressed his love for them, and then said as he looked across the space and towards the sea, ‘I would not put a tree or a blade of grass in this space. This should be a plaza of stone, not a garden.’ I looked at Dr. Salk and he at me and we both felt this was deeply right. Feeling our approval, [Barragan] added joyously, ‘If you make this a plaza, you will gain a façade—a façade to the sky.


바라간이 공간으로 들어갔을 때 콘크리트 벽을 만지며 그들에 대한 자신의 애착을 표출하고, 그 후 너머의 공간에 위치한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이 공간에 나무나 잔디를 넣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은 돌로 된 광장이어야 하지 정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솔크 박사와 저는 둘 다 그 말이 진정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라간은 기쁨에 찬 목소리로 "당신이 이곳을 광장으로 만든다면, 하늘을 입면(파사드)으로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Patricia O'leary, <Consequential Encounters: Luis Barragán’s Influence  on Louis Kahn>

ACSA.AM.98.66.pdf (acsa-arch.org) 



번역의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 다이얼로그에서 루이스 바라간의 태도는 자명하다. 바라간은 공간을 인위적인 구조물을 배치하는 정원과, 아무것도 배치하지 않은 채 자연 그자체를 부각하는 광장으로 구분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멕시코 건축은 꽃과 나무들을 배치하여 하늘을 비롯한 자연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의 바라간은 정원을 부정한다. 이는 바라간이 자연을 부정하는 건축가여서가 아니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자연 수호자이다. 왜냐하면 그는 웅장한 스케일의 자연 앞에선, 건축은 그 어떠한 형태의 장식도 필요하지 않으며, 그저 심플한 액자 정도의 틀만 제공하면 충분하다고 본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얼마나 자연에 경의를 표하는 건축가인지 알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작가의 이전글 자연에 인간을 품다: 멕시코 건축(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