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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원 Aug 22. 2022

가상현실(VR)을 바라보는 현대사회의 공포심

메타 2022 슈퍼볼 광고의 실패를 중심으로

우리는 야구나 축구를 즐기는 국가인지라, 미국인들이 미식축구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 문화적 차이를 여실히 느낀다. 나 역시도 미식축구 룰조차 제대로 모르는 한국인인지라 미식축구와 다른 스포츠들 간의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미식축구가 보편적이지는 않을지언정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스포츠 시장이라는 것이다.

2020년 전 세계 프로 스포츠 리그 수익을 나타내는 자료. 한화 20조 원가량의 수익을 거둔 미식축구리그(National Football League)가  선두를 달린다


따라서 매년 초 NFL의 결승전이라고 할 수 있는 슈퍼볼 시즌이 되면 미국 전역이 들썩인다. 한편 미식축구에 크게 관심이 없는 우리로서는 위 그래프가 보여주는 등의 그 어마어마한 경제적 규모에나 이목이 쏠린다. 따라서 매년 슈퍼볼 광고 비용을 두고 국내에산 꽤 떠들썩한데, 2022년 슈퍼볼 광고의 가격은 30초를 기준으로 77억 6천만원이었다고 한다. 1초당 2억 6천만원짜리 초고가의 광고인 셈인데, 이를 지불한 기업들 명단엔 라쿠텐, 닛산, 도요타처럼 우리가 잘 아는 일본 기업들도 있었다.


한편 내가 이번 포스팅에서 논하고자 하는 기업은 내로라하는 회사들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메타'의 슈퍼볼 광고이다. 이번 광고는 그들이 2021년 10월 '페이스북'에서 '메타'로 사명을 변경한 이후 4개월 만에 선보이는 대규모 광고이기 때문에 이목이 쏠리기 충분했다. 그들의 사명 변경은 단순한 간판 교체의 의미가 아니라 기업의 비전이나 노선 전환을 예고하는 것인데, 이들이 과연 천문학적인 액수를 지불하고 얻어낸 그 짧디 짧은 광고 시간에 그러한 전환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작년 10월 사명을 변경한 메타. SNS 분야에서 메타버스 분야로의 지평 확장을 선언한 것이다. 이 도약을 알리기 위해 그들은 1분짜리 슈퍼볼 광고에 155억을 지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광고는 처참하게 실패했고 155억은 증발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포스팅에서는 그들의 광고가 가진 서사와 연출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오늘날의 메타버스 시장이 직면에 과제에 대해 논할 것이다. 광고가 길지 않으니 원하는 사람은 직접 보고 평가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38) Old Friends. New Fun (Full Length) | Official Big Game Ad - YouTube

(슈퍼볼 광고로 쓰인 것은 이 전체 영상 일부를 삭제해 1분짜리로 압축 편집한 것이다)



광고 초반부엔 인형들이 뮤직바에서 흥겹게 밴드 공연을 하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내 음악이 꺼지고 침체된 가게 상황을 보여준다. 코로나 시국으로 경기가 좋지 않은 오늘날의 시대상과도 맞물리는 모습이다.


결국 그들이 공연했던 Questy's 는 폐업하고 주인공 인형은 실직자가 된다.


따라서 다른 단기적인 일자리를 전전하며 연명하던 주인공 인형은 결국 쓰레기장에 향하는 지경에 이른다. 사실 이러한 형태의 서사는 매우 보편적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가 결국 누추한 신세로 전락하는 것은 <비긴 어게인>의 댄 멀리건이나 <버드맨>의 리건 톰슨 등에게서 볼 수 있고,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이었다 한들 경제침체의 여파로 하류인생으로 전락하는 디스토피아적 형상은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토드 윌리엄스에게서도 드러난다.


2038년의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악역 토드(좌측)는 AI 안드로이드에게 일자리를 뺏겨 주정뱅이가 된 실직자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 서사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이다. 주인공이 아니라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토드처럼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채 악역으로 흑화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주인공이라면 이 위기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므로 외부의 기회를 움켜쥐든 스스로 무언가를 창출해내든 해야 한다. 메타 광고의 인형 주인공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위기를 탈출하는지 보자.


한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쓰레기장에서 구출된 주인공. 그는 한 과학 박물관에 전시되게 된다.


그러다 한 관람객이 자신이 체험하고 있던 '오큘러스 퀘스트 2'라는 VR기기를 주인공에게 씌워주고 퇴장한다. 따라서 주인공은 처음으로 가상현실 공간에 진입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VR 착용과 동시에 신비로운 음악이 깔리고 주인공은 가상공간을 흥미롭게 탐험하게 된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기뻐하는데,


바로 그가 발견한 곳이 과거 그가 공연했던 Questy's 였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순리대로인데, 주인공이 과거 밴드 공연을 같이 했던 친구 인형들을 만나 초반부에 나왔던 공연 음악을 이어서 연주한다는 결말이다.


주인공 인형이 처한 위기 탈출의 열쇠가 메타가 마련한 VR 속으로 들어가 행복감을 되찾는 것일거란 극복 서사는 시청자들로선 쉽게 예상 가능한 것이다. 예상 가능하기 때문에 크게 실망할 것도 없다. 애초에 1분짜리 광고에서 기막힌 반전이나 복잡한 구성을 취하는 것도 시청자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광고가 VR 안에서의 행복감을 표현하는 방식인데, 이 부분에서 메타의 선택이 정말 끔찍하다.



영화에서 주인공 인형들의 행복감이 가장 극에 달한 순간, 그들을 촬영하는 구도는 VR 안이 아닌 VR 바깥이다. 주인공들이 신난 이유가 VR 안에서의 경험이 바깥세상은 제공해주지 못했던 행복감을 VR 세계가 제공해주기 때문이지, VR 바깥의 현실이 개선되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메타는 망각한 것으로 보인다. 메타가 그들의 행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VR 세계 속에서 행복해하는 그들을 묘사했어야 한다.


하지만 광고에서처럼 바깥세상의 구도에서 촬영하는 순간, 그들은 그저 고립된 루저들로만 보일 뿐이다. 현실세계에서의 실패는 더욱 부각되고, 가상세계에서만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도박중독자나 알코올중독, 마약중독자와 같이 현실도피적 행위로만 여겨진다. 심지어 이 동물들조차 자신들이 VR 기기를 쓰고 춤추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회의감에 사로잡혀 부끄러워할 것이다.


아마 메타가 이러한 촬영구도를 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자신들이 마련한 가상공간을 통해 현실세계에서까지 행복감을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들의 VR 기기를 광고에 직접적으로 노출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의도야 어떻게 됐든 그들의 연출은 정말 수준이하였고, 시청자들의 반응이 이를 증명한다.


메타 슈퍼볼 광고를 시청한 시청자들의 혹평. 세 번째 댓글의 'fresh air and sun', 'feel happy to alive' 등의 수사적 표현이 인상깊다.


메타의 슈퍼볼 광고를 본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메타의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라고 말한다. 이 광고에서 주인공 인형들이 가상세계 안에서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그들은 더 초라해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상세계는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가상세계에서 얼마나 행복한 세계를 보내든 VR기기를 끈 순간 우리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바로 이 점이 문제점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새로운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만약 VR에 진입한 우리가 현실로 돌아와지 않아도 된다면 어떨까? 현실세계야 어떻게 되건, 가상세계에서 행복하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생계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현실에서는 기본적인 의식주만 해결하고, 가상세계 속에서 각종 쾌락을 느끼며 행복한 '가상적' 삶을 구가한다면? '가상적' 삶이라고 한들 그것이 현실과 구분할 수 없는 정도의 기술력까지 발전한다면 그때도 문제가 있을까? 애초에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어떻게 나뉘는가?


이러한 질문을 듣는 이들은 아마 터무니없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 대부분을 노동에 힘쏟기 때문에 이러한 공상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하지만 인류가 끊임없이 발전한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 과거 농경사회보다 오늘날의 물리적 노동 강도가 대폭 감소한 것처럼, 미래사회에는 로봇의 노동을 통해 인간이 더 이상 노동하지 않는 세상이 도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회가 도래하면 인간이 하는 것은 오직 소비뿐이다. 그러한 사회는 더 이상 인간이 현실세계에 귀속될 필요가 없고, 가상세계에서 즐거움만을 구가하는 것이다.


JTBC 예능 '알쓸신잡'에서 KAIST 정재승 교수는 노동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미래사회의 인류가 자본주의 체제에 기여하는 유일한 방법은 기본소득을 소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노동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세계가 마냥 행복하기만 하진 않을 것이다. 가상세계 안에서도 아마 새로운 위계질서와, 그로 인한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안에서 또 새로운 불행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그러한 가상세계가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는 속단할 수 없다. 아마 현실은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그 중간의 무언가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과는 별개로 중요한 점은, 어쨌건 이런 형태의 변화가 필연적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생각을 망상으로 치부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는 가상 인터넷 세계에 귀속된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하루종일 핸드폰을 들고 다니며 현실에서 그 어떠한 공간도 점유하지 않는 SNS와 유튜브 세계에 푹 빠져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유저들이 플레이하는 게임들도 결국 인터넷 공간 안으로 현실세계의 인물들이 들어간 것이다.


만약 당신이 더 이상 노동하지 않는 미래사회를 디스토피아로만 치부한다면, 이렇게 한번 상상해 보라. 1900년대 초중반에 기차 좌석에 앉아있던 인물이 타임워프를 통해 오늘날의 지하철로 넘어왔다고 생각해보자. 그는 아마 놀랄 것이다. 왜냐하면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다들 퀭한 얼굴을 하고 서로 대화조차 일절 하지 않으며 한 손에 조그마한 네모상자를 들고 그것만 뚫어져라 쳐다보느라 정신팔려있기 때문이다. 그에겐 이만한 디스토피아가 따로 없다. 하지만 그가 우리의 일상을 디스토피아로 여긴다고 하여 현실세계에서의 우리의 삶이 정말 우울하고 불행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도 아니다.


정리하면, 우리는 이미 현실세계에서 한 발을 떼고 인터넷 세계에 어느 정도 몸담고 있으며, 특정한 미래에는 우리가 현실세계에서 두 발을 모두 떼고 인터넷의 다음 단계인 VR 세계로 넘어가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발을 다 떼는 그 공간이 VR이 아닌 또 다른 플랫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비슷한 무언가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 세대가 우리 아버지 세대보다 인터넷에 친숙한 것처럼, 우리 아들들은 우리보다 VR 공간에 친숙할 것이고 그들은 아마 현실세계에서 VR세계로의 전환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예정된 미래다.


어쨌든 그러한 사회가 도래할 것이 분명한데, VR 사회를 앞둔 우리의 태도는 조금 더 개방적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십수년 전 사회에 충격을 안겼던 <매트릭스> 시리즈의 그 유명한 '빨간 약, 파란 약'의 문제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매트릭스>에서 시온의 리더 모피어스는 주인공 네오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하면, 빨간 약을 먹으면 이상한 세계에 남아 진실을 파헤치지만 파란 약을 먹으면 모든 것을 잊고 편안한 가상세계로 되돌아간다. 극의 서사 상 주인공으로서 진실을 외면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기에, 주인공 네오가 빨간 약을 먹는 결단은 매우 자명하다. 하지만 만약 이 질문이 네오라고 하는 주인공의 영웅담이 아닌, 실제 당신에게 주어졌다면? 당신은 빨간 약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아무래도 빨간 약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많은 이들은 불편할지언정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보다 옳은 행동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메타의 슈퍼볼 광고를 시청하고 있는 우리들의 태도와도 일치한다. 가상세계에서 아무리 행복하다 한들 그것은 '가짜'에 불과하고, 현실세계보다 하위에 있다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우리가 더 이상 현실세계 노동을 통한 생계유지로부터 압박받지 않고 기본소득을 통해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삶 모두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VR 세상에서의 삶이 지속 가능(Sustainable)하다면? 이는 마치 파란 약을 먹은 네오가 매트릭스 안에서 모든 의심을 잊은 채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과 같다. 보통 가상세계에 대한 우리들의 공포심은 우리가 도박, 술, 마약 등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가상세계에서의 쾌락이 현실세계의 상황을 시궁창으로 만드는 대가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VR 세상에서의 삶이 지속 가능하다면 이러한 불안은 제거된다.


결국 지속가능성의 문제가 해결되면 문제는 순수한 질문 그 자체, '불행한 현실 vs 행복한 가상현실'로 바뀐다. 당신은 이 상황에서도 불행한 현실을 고집할 이유를 남기고 있는가? 네오의 경우 매트릭스 안에서의 삶이 지극히 평범할 뿐이었기 때문에 빨간 약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반면 VR 세계는 현실세계의 여러 제약들을 극복한 행복한 세계이다. 심지어 네오조차도 매트릭스 안에서 행복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더라면 파란 약을 먹었을 공산이 커 보인다.


또 비슷한 아이디어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2018년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도 등장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불운한 현실세계를 뒤로 한채 VR 속에서 각종 모험을 하고, 모험을 성공으로 마친 주인공이 내린 결정은 일주일에 이틀은 VR 세상을 닫는다. 이러한 결말은 아무래도 VR 세상이 우리의 진짜 현실을 앗아갈 것이라는 현 시대의 공포심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VR 세상을 매력적으로 그려내면서도 결말부에 가서는 현실세계의 중요성을 역설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논의가 있기 아주 오래전부터 미국의 철학자 로버트 노직이 관련된 문제제기를 했다는 것이다. 1974년 노직은 자신의 저서 <무정부,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Anarchy, State and Eutopia>에서 '경험 기계(experience machine)' 사고 실험을 제시한다. 그가 말하는 경험 기계는 사용자가 그 경험 기계를 한번 착용하고 나면 자신이 기계를 착용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되며, 그 안은 현실과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높은 질의 행복한 경험들로 충만하다. 만약 당신이 경험 기계 안으로 들어가기를 선택하면 그 이후에는 결코 바깥으로 나올 수 없다. 당신은 경험 기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살 것인가? 아니면 그냥 현실에 남을 것인가?


이 질문을 둘러싼 여러 철학적 쟁점들은 더 논의해볼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논의들은 차치하기로 하자. 어쨌든 우리의 가까운 미래는 더 이상 이러한 질문들이 공상에 그치지만은 않을 것이다. '경험 기계'는 VR 기기의 형상을 하고 오늘날의 우리에게 매섭게 다가온다. 실제 현실에서의 삶에 적응한 우리로서는 새로운 시대의 물결이 위협적으로만 보이지만, 조금만 사고를 바꾸면 이는 어쩌면 기회일 수 있다.


이미 오늘날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사실 이 모든 것이 '통 속의 뇌'에 불과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한다. 사실관계는 아무도 모른다. 더 나아가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신>에서처럼, 이 모든 지구에서의 활동이 전부 시뮬레이션일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가 외면하고픈 '불편한 진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통속의 뇌'라던가 '지구 시뮬레이션'이 설령 사실일지라도, 우리가 그것들에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삶이 통속의 뇌건 시뮬레이션에 불과하건 우리가 알 게 뭔가? 현실이 그렇다 할지라도 실제 우리의 삶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통상적인 생각에서 알 수 있듯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용기가 이미 내장되어 있다. 내가 VR 세상의 도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글을 마치려 하는데, 이 포스팅에서 내가 논의했던 모든 내용들은 현실세계에선 너무나 급진적일뿐더러 미래사회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해석한 측면이 있다. 현실세계가 주류인 오늘날에서 가상현실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따라서 이를 포착하지 못한 채 가상현실의 경험을 긍정적으로 포장하며 VR 산업으로의 노선 전환을 선언한 메타는 큰 장벽에 가로막혔다. 대중들이 메타의 슈퍼볼 광고에 불편한 반응을 보인 것처럼 말이다. 오큘러스 퀘스트가 나름 고가의 기기이고, 아직 VR 기기를 이용하는 자보다는 이용하지 않는 자가 주류이기 때문에 메타로서는 이 시장 구도를 변혁해야만 하는 과제에 당면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VR 기기 판매에 성공을 거둬 VR 이용자가 주류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면, VR 시대로의 이행은 매우 급속도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은 어떤 형태로든 지금까지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현대인인 우리는 Pre-Post Modern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미래사회에 대한 고민을 단순히 '망상'으로 치부하기보단 철저한 고민을 통해 미래기술로부터 파생될 위험성을 대비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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